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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Jun 01. 2024

귀티 나는 아이는 다르다

"선생님 오늘 피곤해 보이시네요~?"

"어?! 아... 그래 걱정 고마워~ 무슨 책 필요하다고 했더라?"

H는 필요한 책이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다가 문득 봄바람 같은 미소로 내 안부도 함께 물었다. 눈썰미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볼 여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말끝을 흐리는 법 없이 화법이 단단하고 단정하다.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은 학교 전교생 중 일부분이다. 그 소수의 학생들 중에서도 특히 H처럼 귀티 나는 아이들은 아주 가끔 발견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도서관에 매일 오는 학생도 물론 예쁘고 기특하지만 H에게는 특별한 티가 난다.


귀티는 부티랑 다르다. 어린아이들의 행색만 보고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유한지 그 정도를 판단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기도 어렵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경제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빛난다. 예쁘고 잘생긴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표정이 밝다. 대화 속에 비치는 생각이 유연하고 긍정적인 말버릇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 저 망했어요. 다음시간에 수행평가 한다는 걸 방금 알았어요~ 아흑..."

"어제는 줄넘기 못해서 망했다고 하더니... 너는 매일 망해서 어쩌니..."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H는 이렇게 말한다.

"미리 알았으면 스트레스 엄청 받았을 텐데 방금 알았으니 고통이 짧게 끝나는 거잖아.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어~."


맥락상 좋은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막상 입을 열면 단점이나 불만부터 나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H처럼 부정적 상황에서도 긍정을 먼저 찾아내 입에 올리는 아이가 있다. 그런 말버릇을 가진 아이들은 대체로 인상이 밝고 말투가 단단하다.


말투는 생각과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과 사이가 좋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자신의 취향이나 강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감정이 쉽게 널뛰지 않는다. 자연스레 양보와 배려가 쉽고, 주변인들과 잘 타협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인성이 남다르다.


도서관에 두 개 밖에 없는 꼬마의자에 서로 앉겠다고 아웅 대는 친구들 옆에서 제일 먼저 왔던 H는 되려 양보를 했다. 의자의 크기는 자신에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큰 의자에 앉는다. 대신 오늘의 그림책은 자기가 고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꼬마의자에 앉은 친구 옆에서 화가 펄펄 뛰던 친구는 머쓱한 얼굴로 의자에 가 앉았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여유가 있다. 상황을 넓게 보고, 남 말을 들을 줄 아는 여유가 있다. 덕분에 상황파악을 잘하고 사소한 기쁨과 아름다움 앞에서도 깨알같이 감탄을 즐긴다.


우와~ 예쁘다! 진짜 재미있어요!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거예요! 저 오늘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이 친구 진짜 그림 잘 그려요! 우리 엄마 멋지죠?! 감탄사가 일상에 액세서리 같은 아이들이다. 수업시간, 약속시간도 언제나 먼저 챙긴다. 허겁지겁 달려오거나 지각하는 법이 없다. 이런 여유가 있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다. 그러니 소중한 자신의 시간도 태도도 잘 가꾼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단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습관이 배어있다. 집에서 엄마가 아무리 곱게 머리를 빗겨주고 예쁜 옷을 입혀 보내도 학교에서 금세 엉망진창인 된 채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아직 어리고 미숙한 녀석들의 머리띠를 넘겨주고, 바지를 털어주고, 밥풀을 떼어 내주는 것은 흔 한 일이다. 그러나 귀티 나는 아이들은 언제나 당당하게 곧은 자세로 자신을 돌본다. 말린 어깨, 구부정한 등, 기울어진 거북목, 눈을 가린 앞머리, 달달 떠는 다리. 이런 것들과 거리가 멀다. 귀티 나는 아이들은 무의식 적으로 자신을 단정하게 가꾼다. 겉옷을 벗으면 꼭 어딘가에 걸거나 접어서 챙겨두고, 자신의 실내화를 가지런히 놓는다. 손이 더러워 지는걸 두려워 하진 않지만 더러워진 손은 씻은 다음에 논다. 지금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필요한 순간 잘 해낼 아이다.


그렇다. 이런 아이 흔치 않다. 귀해서 귀티가 나는가보다. H 같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궁금하다. 벌써 이리 훌륭한데, 커서 어떤 사람 될는지. 끈적이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심히 스크롤하고 있는 아들 옆에서 또 무척이나 궁금하다. 귀티 나는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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