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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Jun 03. 2024

원래 그런 거야

오늘도 좀 늦은 퇴근을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랑노래를 무심히 들으며 자동차 핸들을 천천히 돌렸다. 익숙한 퇴근길을 달리며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켰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정도로 마음이 느슨해질 때쯤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갑자기 라디오의 흥겨운 음악과 구급차 사이렌이 듀엣으로 고막을 두드렸다.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등이 즐비한 가운데 소방관과 구급요원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입을 굳게 다문 그들의 얼굴에서 누군가의 불행이 엿보였다. 구급요원의 손에 들린 밧줄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들. 다들 야무지게 쓰고 있는 주황색 헬멧. 바삐 걷는 듯 뛰는 발걸음. 눈앞의 모든 상황이 일관되게 '어떤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천천히 그곳을 스쳐 지났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나는 철저히 남이다. 그저 피곤하고 배가 고프며, 음악감상에 잠시 젖을 정도의 여유를 가진 남.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는 여전히 팝송이 울려 퍼진다. 아직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주차를 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난다. 실제로 만난다기보다 스친다. 카카오 단톡방에서 스치고, 직장에서 스치고, 길거리에서 스치고, 아파트에서 스친다. 그들 모두는 각기 다른 감정과 사건을 동시에 겪으며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모두와 이야기 나누고, 다 알지만 어쩌면 전혀 모른다. 지금 아파트 입구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이 무엇인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인간의 고립은 완성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나는 여전히 배가 좀 고프고, 조금 피곤하고, 듣다 만 팝송의 후렴구가 우뇌 한구석을 맴도는 정도의 상태로 거울에 기대었다. 누군가의 불행을 엿본 것이 끝내 주황색 잔상으로 남았다. 조금은 불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그곳에 남겨두고 왔어야 했는데 집에 너무 빨리 도착해 버렸다. 젠장.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남들도 나처럼 음악을 들으며 스쳐 지나가겠지... 원래 그런 거겠지? 이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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