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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Nov 12. 2024

장강명 - AI시대 창의성은 인간만의 것인가?

 지난주에 장강명 작가님의 인문학 강연에 다녀왔다. 막연히 동경하던 작가님인데 강연을 듣고 나니 완전히 동경하는 작가님이 되었다. 귀한 강연을 열심히 메모하며 들었지만 장장 3시간짜리 강연이었기에 도저히 다 복기할 재주는 없다. 감탄하며 넋 놓고 듣다가 메모를 놓친 부분이 많아 아쉽다.  (개인적 해석과 망각이 섞였음을 이해바람) 그래도 잊기에 아까운 명강의였으므로 기억나는 만큼만 일부분, 이해한 만큼만 기록해 보려 한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발명해 왔다. 지금까지의 발명은 최근과 같이 인간을 이토록 두렵게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인간보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생각해 보자. 자동차가 발명되었다고 달리기 잘하는 인간이 자동차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달리기는 치타도 잘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치타나 자동차에게 달리는 법을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자동차를 이용할 뿐이다. 달리기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고유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AI는 다르다. AI에게 인간이 배움을 구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 프로바둑 현장을 취재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감지했다. 나이 많은 고수를 힘들게 찾아가 기술을 사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서 세상의 모든 수를 AI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간 스승이 없는 프로 신입 바둑기사가 나오고 있다.




1.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는 사용자가 모르는 곳에서 갑자기 나온다.

알파고(머신러닝으로 패턴인식 원리)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는 알파폴드(단백질구조 예측하는 AI)를 개발하고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2. 인간은 창의성과 인간성이 원지 모른다. 혹은 그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6년 3월 이세돌은 정형적이지 않고 창의성이 뛰어난 기사라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다들 알파고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었지만, AI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새로운 수를 두며 훨씬 더 창의적인 바둑을 두었다.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AI가 창의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꺼렸다. '창의성'은 인간만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신은 창의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뒤로 8년이 지난 현재 바둑기사들은 AI포석이라는 것을 통해 바둑을 배우고 AI다운 바둑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다운 바둑이란 무엇일까?


3. 진짜 대결은 '인공지능 사용자 대 인공지능 사용자'가 벌인다.

1953 년생 73살 서봉수 프로기사는 매일 AI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 AI가 그 어떤 선생님 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바둑황제 커제 9단과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알파고 소스를 세상에 공개했다. 그 소스를 기반으로 국가별로 바둑 AI를 개발했다. 중국의 국가대표는 비공개 AI, 한국의 국가대표는 공개 AI - 카타고를 이용해 배우고 있다. 이 차이는 한국 국가대표 바둑기사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 AI에게 배우는가가 대국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인간다운 바둑은 없다. 5~7세에 시작해 기원에 들어가 오랜 세월 배워도 정상에 오르기 쉽지 않은 것이 바둑의 세계였는데, AI에게 배우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바둑의 경쟁이 더 엄혹해졌다. AI는 매 시간 똑똑해지고 있기 때문에, 누가 AI에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대국에 참여하는가가 중요해졌다. 경기 전날조차 잠시도 쉼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인간에게 배울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치열한 상황이 되었다.


4. 인공지능으로 유리해지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도시에 비둘기가 많아지고 제비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빌딩 같은 절벽에 잘 적응하는 잡식성 비둘기는 도시에 적응하는데 유리하다. 비둘기는 도시에 천적도 없기에 날개 달린 쥐 취급을 받을 정도로 번성하고 있다. 반면에 제비는 지푸라기, 진흙, 처마가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처마가 사라져 버린 도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결국 개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세상이 AI로 바뀌었다고 제비에게 지푸라기, 진흙, 처마 없이 집을 지으라고, 변하라고, 적응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AI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제비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AI를 잘 활용하는 비둘기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들 조차도 적응하면 그만일 것 같지만, 계속해서 치열하고 힘들어진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5. 인공지능으로 유리해지는 사람이 생기면 인간들의 단결은 불가능하다.

비둘기 같은 사람은 AI덕분에 정의와, 민주주의가 구현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머나먼 곳에 사는 고수의 집에 오랜 시간 머물며 배움을 구하는 방식은 나이가 어리거나, 경제적 뒷받침이 없거나, 여성인 경우 불리했다. 이렇게 여건이 어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AI에만 접근하면 정상급 바둑을 배울 수 있으니 어떤 부조리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에 제비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배우, 성우, 아티스트들이 단결하여 파업한 사건이 있었다. AI를 이용하거나 AI의 보조 역할을 하는 업무방식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위한 집단행동이었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 길 것 같은 두려움이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AI와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들의 허락 없이 발전하고 있고 전파되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이제 곧 누구도 진위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다. 기업이 AI를 활용해 배우 없이 영화를 제작했다 한들 배우는 자신의 데이터가 변형되고 조작되어 활용되었다는 증거를 찾지도 못할 것이다. 과연 제비와 비둘기가 대화하고 단결할 수 있을까?


6.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던 중요한 개념들을 왜곡시킨다.

이세돌은 은퇴 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인공지능 덕분에 지금은 바둑이 일종의 게임이 된 것 같다."

사진기가 나오면서 예술과 미술의 개념도 바뀐 역사가 있다. 사진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현실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최고의 미술이었다. 사진기가 개발된 후로 재현은 의미를 잃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예술의 정의를 바꾼다.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 개성을 잘 표현해 내는 것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이 되었다. 교육 역시 곧 정의가 바뀔 수밖에 없다. AI가 음악도 만들고 소설도 쓴다. 곧 문학의 정의도 바뀌게 될 것이다.


7. 어떤 일을 배우고, 추구하고, 즐기고, 존경하던 방식이 밑바닥부터 변한다.

예전에 바둑대국이 펼쳐지면 관객들은 바둑기사의 수와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그들의 혜안에 감탄하고, 따라 하고, 수를 배웠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바둑대국 실시간 방송 화면 오른쪽에 동시 중계되는 AI의 조언과 분석을 보며 AI처럼 두지 못하는 바둑기사를 조롱하고 답답해한다. 해설자도 AI의 분석을 설명할 뿐이다. AI의 해설을 볼 수 없는 대국 당사자 두 명이 그 순간 제일 멍청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바둑대국은 경마처럼 변해버렸다. 더 이상 연장자의 오랜 경험, 선배의 숙련된 기술, 스승의 경륜이 칭송받기 어려운 세상이다.


8. 반복해서 하던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면, 곧 그 패턴을 인식한 인공지능이 나를 대체한다.

 이제는 없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기본 개념, 본질적인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어떻게? 국수사과 주요 교과목 위주로. '그거 배워서 어디다 써요?' 반문하던 지식을 깊게 배워야 기획을 잘할 수 있다.

 또한 기획을 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에 필요한 의사소통 기술,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수다'라고 표현해도 좋다. 친화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업무상 필요한 순간에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의사소통 능력이 필수다.

 앞으로는 본업을 잘하되, 그것만 잘해서는 안된다. 능력도 조합이 필요해졌다.

 회복탄력성과 신중함의 미덕을 강조해야 한다. AI시대에 기획은 꼭 도전해야 하는 과업이지만 거의 다 실패한다 고 봐야 한다.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는 것이 기본값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반복되는 실패를 밟고 일어설 수 있어야 아주 가끔 성공하는 세상을 맛볼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와 작은 기쁨을 찾는 능력이다. 노력의 성패와 상관없이 삶의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다. 이런 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옛날에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오는 때였지만 이제는 10을 노력해도 보상이 1도 오지 않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




* 인간의 행동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두려움. 두려움이 해 냈던 일들

1. 1945년 미국이 핵무기 2발을 사용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이 이뤄졌다. 핵의 파괴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두려움이 생겼다. 1964년 미국. 딱 한번 방송했던 미국대선 네거티브 광고 덕분에 선거결과가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광고의 메시지는 지금 당신이 00 후보를 뽑는다면 그는 핵전쟁을 일이 킬 생각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자연을 누릴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핵전쟁을 우습게 생각한다면 국민들은 결코 그를 뽑지 않는다는 명확한 선례를 남긴 사건이다. 결코 넘으면 안 될 선이 무엇인지 대중이 정치인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덕분인지 이후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핵무기로 인한 전면 핵전쟁, 절멸의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평할 수도 있다.


2. 1983년대 미국 tv 영화 '그날 이후'라는 작품이 방영되면서 핵이 사용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핵의 두려움이 각인되었다. 1987년. 미국 대통령의 권유로 소련에서 이 영화가 방영된 후 소련과 미국 간 미사일 협정이 맺어졌고 핵무기 보유량을 급격히 줄일 수 있었다. (7만 대 -> 1만 대)


3.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합성 살충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침묵의 봄'이라는 작품 발표. 합성 살충제 DTT를 자꾸 쓰면 이제 새를 못 보게 되겠구나 하는 끔찍한 미래를 내다보게 해 주는 내용이다. DTT에 노출된 벌레를 먹은 새가 죽는 모습을 보고 인간들은 DTT 사용을 금지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대체로 어리석다. 어리석기 때문에 합리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단 어리석은 사람들을 한데 뭉쳐서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경우는 겁에 질릴 때이다. 코로나19 때 우리는 두려움 덕분에 집합금지가 가능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제일 두려워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정치인들의 선거공약에 경제발전공약이 최우선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만약 지금 사람들이 기후위기가 제일 두렵다면 '자동차세 열 배 올리자' 같은 의견에 이견없이 동의할 것이다. 이런 디스토피아 서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두려움에 대비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4. 그 외 디스토피아 서사의 문학과 영화

멋진 신세계 -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서사

1985 -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주인공을 보면 무섭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 1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때부터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면서 '전쟁'이라는 것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전생의 실상을 보면서 무서워진다. 자연스레 전쟁을 반대하게 된다.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ㅡ  잔혹한 탄압을 일삼았던 굴라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스탈린 체제의 그늘을 보여준다.



디스토피아 서사를 만드는 이유는 끔찍한 미래를 설득력 있게 보여줘서 우리의 행동을 바꿈으로써 그러한 미래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디스토피아 서사를 꾸준히 다루는 이유이다. 반대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야기들은 정확히 반대의 기능을 한다. 낙원 서사를 펼치면  인간들은 그 낙원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지금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낙원에 반대하는 사람을  적으로 인지하고 제거함으로써 낙원을 앞당기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는 인간에게서 사색하는 능력을 빼앗아갔다. 오래된 가치들이 훼손되었다. 생각을 앗아가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독서이다. 책을 읽고 사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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