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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대장 Aug 13. 2022

담배와 내 인생

지금은 금연 6년 차

11년 8개월을 피운 담배를 끊고 살고 있다. 금연하는 사람치고는 꽤 잘하고 있어서, 스스로가 놀랄 만큼 의심스럽기도 하다. 금연 중인 모든 이들은 알고 있다. 사는 게 요동치는 순간, 한 번 정도 피울 수 있다는 사실. 몇 년에 한 번 가끔 피우게 된다. 가장 최근은 지난주 최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폈다. 

담배는 오랜만에 피워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괜히 놀랍다. 아직은 금연의 시간보다 흡연의 시간이 더 길어서일까.

담배를 처음 피웠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 입에서 담배 쩐내가 강하게 콱, 밀고 들어왔지만 바로 익숙해졌다.


20대 내내 함께했던 담배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외로웠던 나를 달래줬고, 심심할 때 함께했고, 자리를 잠깐 피하고 싶을 때도,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을 때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술맛을 더 할 때도, 위로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직까지도 찐하게 이어온 인연 중에는 담배를 같이 피운 사람들과 이어졌다. 서로가 담배 친구가 필요할 때 함께 나눴던 짧은 시간이 모여 의리 같은 게 생겼다고 생각해본다.

그들 중에서 연인으로 이어진 인연도 있었고, 서로가 특별해진 시점에는 몸에 안 좋다는 이유로 금연도 약속해봤지만  당시의 나에겐 허사였다.

외로움이 깊게 베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항상 따라다니던 시절이었고, 아무리 몸에 좋지 않다고 한들 몸안 쪽부터 파고드는 으슬으슬한 외로움을  달랠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시작은 청소년기에 부모로부터 만들어졌고, 폭주하듯 커진 시기는 스무 살이 되던 2월에 서울의 어느  고시원으로 거주지가 바뀌면서 지독해지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불만을 쏟아내던 시절이었고, 내가 가꿔온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내 존재가 쓸모없고 하찮게 느껴지던 때여서 건강하게 사는 삶에 대해 알지 못했다. 더하자면 그땐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죽고 싶다'라고 적힌 그날의 일기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덜그락거리는 마음을 달래줄 단 하나의 위로로 담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외로움이 컸던 만큼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시기기도 했다. 내가 만났던 연인들 중에는 금연 중에 나를 만났다가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 이도 있었다. 내가 그에게 속상하게 굴어 그랬을 거라 짐작해본다. 늦었겠지만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


담배로 시작했던 또 다른 연인과는 그 담배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계속  발생했고, 결국 헤어지게 됐다. 나를 차면서 그이는 담배를 끊으라는 당부를 남겼다. 나는 나를 두고 버린 그이가 밉고, 서러워서  당부를 세차게 무시해버리고 싶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라 여겨 차인 순간부터 보통의 하루보다  한 갑 이상 더 피우기도 다. 

요즘은 술집에서 당연히 금연이지만 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그게 가능했다. 술집에서  술퍼마시랴 담배 피워대랴 소리치랴  바쁜 자리였다.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담배가 맛있었다. 시시덕거리다가 피던 한 모금과 술 한잔이 훌륭하게 다가오는 그런 날은 미리 더 챙겨가는데도 담배가 항상 모자랐다.

담배 한 갑 사러 나갔다가 걸리는 시비가 익숙해질 때쯤 보루로 사놓기 시작했다. 담배 한 보루는 든든하고 여유 부리기 좋았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여유 부릴 수 있었던 시기는 내게 직업이 생기고 작장이 생기게 되면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 쯤부터 고, 그 이전에는 꽁초를 주워서 피웠을 만큼 구질구질하게 지냈던 때가 더 많았다.


지금에 와서  왜 그렇게까지 해서 담배를 피웠을까 싶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이해한다.


지금 내가 누리게 된 것들 중 하나라도 그때 가질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 수 있었다는 걸 이해한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담배 맛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담배 맛은 연인의 자취방에서였다. 반지하였고, 불을 켜지 않은 채로 테레비만 켜서 나는 벽에 기대듯 반쯤 누운 자세로  배 위에 재떨이를 올려놓았다. 한 손에는 담배, 다른 한 손에는 스크류바를 들고서 담배 한 모금에 스크류바를 조금 홀짝이던 맛. 그 맛. 그때 나는 홀로 파놓은 입시지옥에 갇힌 삼수생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널부러지듯 아무렇거나 누워서 벽지가 누르스름해지지 않을까 방안에 담배 냄새가 옷에 베면 어떡하나 하는 등의 걱정이, 걱정이 아닐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락된 공간에서 피울 수 있었던 담배의 진한 연기 맛과 스크류바의 달콤함이 해방감까지 느끼게 했다.

그다음으로 매운맛을 먹은 뒤 얼얼해진 입안을 헹구듯 들이키는 연기 맛, 걱정 없는 보통날 피는 연기 맛, 추운 날 입김으로 손을 녹여가며 피는 맛, 화가 날 때, 짜증 날 때 깊숙하게 들이켜던 연기, 취향이 다른 남의 것을 빌려 필 때 느낀 색다른 향, 친구가 피던 담배를 한 모금만 피자며 뺏어 피던 쾌감도. 다 재밌었다.

그렇게 재밌어하고 의지했던 것을 버리고 금연을 했. 금연을 하게 된 시점의 나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더 이상 외롭지도 않았고, 몰두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생겼고,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정서적으로 편안해졌고, 책임감과 의무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담배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서 그 일로 직업을 갖게 됐고, 직업은 경제적인 자립으로 이어졌으며, 예전만큼 미래가 두렵지 않게 됐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살고 싶어 졌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졌다.

같이 담배 피우던 친구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금연을 시작한 것도 내게는 행운이었다. 덕분에 끊을 수 있었다.

담배에 대해 적고 있자니 한 모금이 그립기도 하지만 담배 없이 살 수 없는 삶에는 얽매이고 싶지 않다. 글쓰기는 그리움에서 출발한다는 어느 작가의 문장을 읽은 뒤로 한 번쯤은 담배 피우던 나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옛 연인 같은 담배와 그 시절 안타까운 내 모습이 그리워 글로 남긴다.

그때, 담배로 인한 찐한 인연과 연기처럼 스쳐간 모든 이에게 용서와 감사 또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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