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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대장 Aug 10. 2022

96년도 컴퓨터학원 풍경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96년도에 10살이었던 나는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바로 집 근처에 있고 걸어서 1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2차선 도로에 있는 낮은 건물의 상가 2층에 있었다.


이 컴퓨터 학원의 현관문은 두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열어야 겨우 열리는  무거운 철문이었지만 항상 활짝 젖혀져 있었기 때문에 두 손으로 여는 경우는 아주 가끔이긴 했다. 바닥은 인도를 연상시키는 요란한 무늬로 가득 채워진 장판지로 되어있었다. 아이들의 발이 많이 닿는 곳의 무늬는 거의 없어져 있었고, 장판의 끄트머리 쪽은 항상 밀려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학원 안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허름한 분위기였다. 한쪽 구석엔 안 쓰는 컴퓨터가 뒤죽박죽으로 쌓여있었는데 그곳은 먼지가 구름처럼 앉아있었다. 


현관문 앞에 서서 바로 왼편에 교실 하나가 있었고, 맞은편에도 교실로 꾸며져 있었다.  맞은편 교실에 들어가기 전 벽과 마주한 곳에는 안내데스크 비스름한 갈색의 책상이 있었고, 그 너머에 유리창은 아니었지만 유리창처럼 안이 훤히 비치는 창이 나있어서 그 교실 안에서 학생들을 1:1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보일 때도 있었고 컴퓨터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머리가 조금 보일 때도 있었고, 안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맞은편 교실에서 주로 수업이 있었는데 학생들의 컴퓨터는 2줄로 각자 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고 교실은 직사각형으로 길었다.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쟁반이 항상 있었고 그 위에 컵과 주전자 놓여있었는데 선생님이 끓여놓으셨던 보리차 물이었다.  정수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의 배려였던 것 같다.


원장 선생님은 여성분이셨고, 커트머리에 어느 정도 풍채가 있으셨다. 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도 여성분이셨고 머리가 단발머리였고 마른 몸이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나는 질문 많은 아이였다. 이것저것 끊임없이 해대는 질문이 귀찮았을 텐데 항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셨다. 원장 선생님은 목소리가 우렁찼고, 나중에 내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을 공부할 때가 돼서야 원장 선생님의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컴퓨터 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한 무렵에는 한글타자 연습으로 키보드의 손가락 자리 위치를 익혔고, 한글을 익히듯 모니터에 나오는 대로 자음과 모음을 따라 치며 안 보고도 키보드를 치는 연습을 했다. 차례로 낱말과 문장과 시를 치며 타자 연습을 했고, 그때 처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알게 되었다.


타자 치는 연습이 끝나면 선생님은 그림판을 켜주며 마우스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곰인형이나 사자, 눈사람 같은 걸 굉장히 신중하게 그렸다. 도화지에만 그리다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다니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고심해서 색을 골라 곰돌이 얼굴을 칠하고, 동그라미를 잘 그리기 위해 도형을 쓰는 방법을 터득하며 열심히 그렸다. 이 즐겁고 설레는 기분은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내내 이어졌다.


키보드의 위치를 어느 정도 익히자 선생님은 도스 명령어와 베이직을 알려주었다. 베이직은 간단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언어라는 걸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그 용도를 알았다. 아무튼 그 시커먼 화면에 이것저것 넣으면 계산기도 아닌 것이 계산해서 원하는 값을 토해내는 것에 흥분해서 내가 프그래머라도 되는양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배웠다. 간단한 수식을 넣고 그 결괏값을 보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와 채팅하는 기분을 내게 했다. 그리고 실패할지 성공할지 그땐 수식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결과를 보기 위해 엔터를 치기 직전의 몰입은 꼭 끝판 대장이라도 대할 때 마냥 긴장도 되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동안 집에서 하던 게임 보이나 인형놀이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컴퓨터에서 느꼈다.


컴퓨터를 처음 알게 되고서는 고장 낼까 봐 그 앞에 앉는 것조차 두려웠던 것도 같은데 도스 명령을 알고 베이직에 익숙해지자 두렵지 않았다. 이것저것 눌러 보고 컴퓨터와 이야기하듯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내 모습이 벌써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뻤고,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컴퓨터는 항상 흥미의 대상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내 모습은 그 당시 친구들이 노는 모습과 달리 고급스러워 보여 더 좋았다.


96년도의 내가 처음 만지게 된 컴퓨터는 386인지 486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불리던 컴퓨터였다. 플로피 디스켓이 3.5인치와 5.25인치가 둘 다 들어가는 컴퓨터는 좀 세련된 컴퓨터였고, 5.25인치만 되는 컴퓨터는 좀 구닥다리 느낌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5.25인치 디스켓만 넣을 수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고 까만 모니터 창에 찍히는 글자는 온통 초록색뿐이었다. 영화 매트릭스 같은 느낌이다. 네오가 트리니티를 만나 직전 집에서 채팅하던 그 장면의 컴퓨터와 비슷했다.


96년도는 윈도 95가 막 대중화되던 시기였던 것 같고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서도 윈도 95가 깔린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2대 밖에 없었다. 2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컴퓨터라 그랬나 보다. 지금도 200만 원은 엄청난 돈인데, 그 당시 200만 원이면 지금의 500만 원쯤 되는 걸까? 아무튼, 컴퓨터 학원에는 단 2대의 윈도우 95가 깔린 컴퓨터와 나머지는 모두 도스 운영체제인 컴퓨터밖에 없었다.


시커먼 화면, 도스를 사용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도스 명령어를 빠르게 배웠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컴퓨터마다 깔린 게임들의 종류나 폴더의 위치가 다 달랐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그것들의 위치와 게임 종류를 파악했고,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기억해내야 했기에 열정을 받쳤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임 중에는 너구리, 고인돌2, 스카이 로드, 페르시아 왕자, 프린세스메이커 2를 좋아했었다.


단발머리 상냥한 선생님은 내가 베이직 과제를 완수하면 그 이후부터는 시간에 상관없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자유를 주셨다. 학원 귀퉁이에는 컴퓨터가 5대밖에 없는 교실도 아닌 것이 교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지금 시대의 PC방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을 하기 위해 줄 서있기도 했고 게임하고 있는 친구나 언니, 오빠의 등 뒤에서 한참이나 서서 게임하는 것을 들여다봤다. 게임하는 걸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래도 제발 비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요즘은 학원 가는 시간이 정해져 스케줄대로 움직이겠지만 그때는 컴퓨터 학원도 피아노 학원도 미술학원도 딱히 정해진 시간 없이 가고 싶은 대로 갔다. 나는 당연히 학교가 끝나면 집에 들러 책가방을 구석에 던지고 컴퓨터 학원 전용 가방으로 바꿔 챙겨서 서둘러 나갔다. 컴퓨터학원을 놀러 가듯이 가고 싶을 때마다 갔고, 다른 학원에 들렀다가도 집에 가지 않고 다시 컴퓨터학원에 들러서 베이직 과제를 하고 있는 언니, 오빠들 혹은 친구 옆에 가서 화면을 지켜보거나 같이 문제를 풀기 일쑤였다.


자유롭게 드나드는 그런 나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자기 집 들어오듯이 나다니는 얘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자유롭게 학원 가서 놀듯 공부하고 공부하듯 놀며 컴퓨터와 친해졌다.


도스 명령어를 익히고, 베이직을 배우고, 타자 치기를 하며 몇 타가 나오는지 서로 경쟁도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타자를 빠르게 쳐서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남들과 다른 특별하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500타 이상을 유지하고 600타가 간간이 나오기도 했는데 경쟁의 우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항상 타자 연습은 훈련과 같이 매일 성실하게 했다.


컴퓨터 학원에서는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이 10장인가 담겨있는 세트를 주시곤 했다. 나는 그 디스켓들에 학원에 있는 게임을 복사해서 집에 가져올 때 사용했다. 


난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에만 흥미가 있은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컴퓨터로 하는 모든 일들에 흥미를 가지고 즐거워했었다. 중학교 때 그림을 잘 그리던 멋진 친구와 친해지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미대를 지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20대에 한 적이 있었다. 


그 20대 땐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 되지 못한 나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30대가 되어 조금 어정쩡하긴 해도 명령어를 입력하고 프로그래밍을 얼추 하는 모습이 되어 스스로에 대해 신기했다. 10살, 11살, 12살 때의 그 호흡을 잊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 JAVA를 처음 배울 때 그나마 잘 흡수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여전히 개발은 골치 아프고 좀처럼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되면 왜 되는지, 안되면 왜 안되는지 이해하느라 검색하면서 책을 뒤져가며 느리게 깨달아나간다.


컴퓨터 학원에서 게임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면서 그 컴퓨터 학원을 다니던 내 어릴 적 모습이 조금 그리웠고, 학원 모습을 꽤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게다가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너무 많은 기억들이 튀어나와서 또 놀랍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학원 전용 가방은 엄마가 사다 준 것이 아니고, 컴퓨터 학원을 첫 등록하게 되면 사은품처럼 주는 그런 가방이었다. 공책 몇 권과 필기구를 담을 수 있는 얇은 크로스백 형태였다. 그 가방은 앞뒤 옆으로 굉장히 눈에 띄는 형광 노랑, 형광 파랑, 형광 분홍으로 꾸며져 있었고. 가방 앞주머니에는 학원 이름과 전화번호가 엄청난 크기로 커다랗게 박혀 있었으며 그 가방을 밖에 메고 나가면 안 보고 싶어도 안 보일 수가 없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동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꼭 그렇게 한두 명씩은 메고 다니는 가방이었다. 죄다 이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20년도 더 된 그 컴퓨터 학원의 시그니처 가방까지 자세하게 기억나다니... 정말 놀랍다. 


1996년도는 윈도우 95가 점점 대중화가 되던 시기였으니까 그만큼 컴퓨터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지던 시기였던 것 같다.  2020년 지금,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하면서 다시 코딩 교육 붐이 일고 있는 것처럼... 96년도의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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