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리누나 May 29. 2024

건너뛰고 일일. 긴 밤

햄버거

 처음으로 내 의지로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은 날이다.

 간밤에 붉은 피가 울컥 비쳐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이슬의 한 부분이었고 자궁구가 1센티 열렸지만 경부는 딱딱하고 아직 진통은 없었기에 귀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새벽 네 시부터 미약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생리통처럼 살살 아프다가 곧 가시는 간헐적인 진통이라 어느 정도 움직이는 데 무리는 없었다.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밀어 넣고 주방 정리를 대강 한 다음, 대여한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까지 다녀왔다.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듯 진통 간격도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진통의 강도도 기어가듯 느리게 올라가는 중, 하지만 언제라도 병원에 갈 수 있다. 햄버거에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마지막 만찬일지도 몰라.


‘마지막 만찬’이 고작 햄버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임신 기간 동안 처음 먹는 햄버거, 입덧 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쩐지 한 번을 안 먹고 지나갔다. 나에게 햄버거란 패스트푸드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어 있어서 그런지 남들이 한 끼 때우는 그것이 나에게는 꽤 큰 부담거리의 식사, 지인들은 내가 요리를 즐겨하니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피하려고 해왔지 맛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오늘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먹었다.


예정일보다 조금 빨리 나올 모양인가 보다. 너무 늦지만 말아달라고 한 걸 용케 알아들었나,

아니면 아가는 아직인데 내가 마음이 급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인 진통도 아닌 것 같은데 꼬박 하루가 되어가고 있다.

몇 시간 뒤에나 고통 끝 아가를 품에 안을까, 하룻밤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구일. 선녀와 나무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