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친한 건 아닌데 말이죠
2020년 새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기분이 별로다. 새해가 되고도 무려 20일이나 지났는데 '뭐 이렇게 시간이 빨라?' 싶으면서 삐딱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내 상태가 좋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전 글에도 지나가듯 쓰긴 했지만 요즘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가 않다. 여기서 '만나고 싶지 않다'의 의미는 단순히 언어 그대로의 '만나다' 뿐만 아니라 카톡을 비롯한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것도 전부 포함된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 선생님과 (상담사들은 보통 서로를 선생님-누구누구 쌤-이라고 부른다) 통화를 하다가 그 선생님의 "별로 친한 건 아닌데-"라는 말에 웃음이 났었다. 나도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고, 그 말이 '굳이' 붙는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3년을 만나도, 5년을 만나도, 10년을 만나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별로 친한 건 아닌데-'라는 말이 앞에 붙는 상대가 있다. 아니, 있다고 해야 할까... 거의 대부분인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중, 고등학교 때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가 "너 00랑 친해?"라고 물으면 나는 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음,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하고는 했다. 상대가 "왜?" 하고 물으면 "나는 그래도 좀 친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고 잘 모르니까."라고 답했었다. 뭐가 그렇게 진지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인 것 같다. 쉽게 그냥 "친하지!"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다.
이건 내 나름대로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깊게 관계 맺지 않겠다' 혹은 '관계에서 섣부르게 기대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관망하는 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레 실망을 가져오고, 더해지면 상처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기대라는 건 절대 타인에 의해 충족이 될 수가 없으니까) 그것을 가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쓰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늘 나의 관계는 대부분 한 발자국 떨어진 상태에서 오랫동안 지속된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관계에서 가장 많이 듣는 피드백은 '편하다'는 것이다. 내가 사실 알고 보면 까칠하고 하고 싶은 말도 대부분 다 하고 살고 뭐 그런데도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순둥한 외모 탓인지 웃는 표정 탓인지 아니면 악의 없고 느릿한 말투 탓인지 그냥 그런 이야기를 꽤 듣는다. 편한데, 그래서 누군가는 종종 나를 굉장히 가깝고 친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여전히 나는 그 말을 붙인다. "별로 그렇게 친한 건 아닌데"라고.
결혼을 하고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고, 그 남편과 처음 만나 함께 해온 시간이 어느덧 11년 차가 되면서 지금 나에게 세상 제일 편하고 친한 사람은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대단한 기대를 하지도 않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망하지도 않고, 정말 편하고 친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러다 보니 더더욱 그 이외의 관계들은 점점 더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타고난 말투나 친절함(?) 덕에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 속은 그렇다는 거지.
상담을 받으면서 내 상담 선생님에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고. 지금은 남편이 있긴 하지만, 남편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그 외의 누군가와 어떻게 되어도, 혹은 누가 어떻게 되어도 잠시 좀 슬프긴 하겠지만 그러고 말 것 같다고. 나는 혼자서도 충분하고, 그냥 남편이랑 둘이 있으면 되는 것 같다고.
기질적으로 주변에 사람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기도 하고, 편하고 설렁설렁해 보이고 따뜻한 것 같고 친절해 보여도 실제로는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것이 내 성격적인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길게 했을까. 요즘은 그래서, 그렇다. 조용히 지내고 싶고, 그래서인지 모든 연락들이 소음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그렇다고 어릴 때처럼 (어릴 때는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거나 소위 말해 잠수를 타거나 했었다) 연락을 전부 받지 않고 그러지는 않지만 최대한 모든 대화를 피하려고 하고 있기는 하다. 직업 상 일을 하면서는 필수적으로 대화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건 집중해서 듣고 말해야 하는 일이니까 내 모든 (대화) 에너지를 모았다가 일할 때만 사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 싫음과 귀찮음이 어디서 오는 건지 계속 고민해보고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달까. 이런 걸 보면 사람이 참 한결같고 잘 변하지가 않는다. 아니 뭐 이렇게 주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게다가 그런 인간이 사람을 만나 (전문적으로) 대화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달리다가 녹다운되는 것보다는 낫다 싶긴 하면서도 좀 더 관계를 좋아할 수는(?) 없겠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하고.
여전히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요즘은 글을 쓸 때 늘 그런 것 같다. 다른 것보다는 그저 이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