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라다빵

계란 감자 샌드위치

요즘 나의 삼시 세끼는 (사실 나는 하루에 두 끼를 먹으니 삼시 두 끼?)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할머니의 사라다빵이다. (사라다빵은 할머니가 쓰시는 이 샌드위치의 이름이라 그대로 쓰는 것) 구순이 넘으신 할머니는 손녀들을 위해 가끔 계란과 감자, 오이, 옥수수 등이 가득 들어간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한통 가득 담아 주시고는 한다. 나와 내 동생, 사촌 언니들은 대부분 이 샌드위치를 다 좋아하고, 특히 나는 이 샌드위치의 어마어마한 팬이다. 이 샌드위치가 집에 없을 때면 가끔 그 맛이 생생하게 생각날 만큼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샌드위치가 집에 있을 때는 요즘처럼 거의 매일 이 샌드위치를 먹는다. 하루 종일 집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없어 못 먹는 날은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하나라도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할머니는 원래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그래서인지 엄마 역시 음식을 맛있게 잘하신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일을 하시면서 할머니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 할머니가 오므라이스며 떡볶이며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주셔서 나도 어깨너머로 오므라이스를 하는 법을 배워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기도 하고, 할머니가 해주신 떡볶이가 정말 맛있어서 어린 마음에 할머니 떡볶이 장사하면 부자 되겠다고 같이 얘기하며 웃었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의 사라다빵은 정말 아끼지 않고 가득 재료들이 들어가고, 식빵의 가장자리는 가지런히 잘라진 상태로 먹기 좋게 반씩 잘라서 포일이 깔린 커다란 통에 가득 담겨있다. 그 샌드위치가 담긴 통을 받으면 나는 한동안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진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하루 종일 반씩 잘라진 샌드위치를 이미 여섯 개나 먹었다.)

얼마 전에 문득 '아.. 사라다빵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며칠 내내 하면서도 할머니한테 말씀드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그냥 있었는데, 엄마를 통해 할머니가 사라다빵을 큰 김치통 가득 주셨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고 만들어주셨지! 생각하며 그 밤에 배가 불렀지만 먹고 싶어서 두 개나 꺼내 와구와구 먹고, 다음날 아침 할머니께 전화드려서 딱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 내가 요즘 계속 사라다빵 먹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고 만들어주셨어?" 할머니는 호호호 웃으시면서 요즘 너무 안 만들어준 것 같아서 생각나서 만들었다고 맛있다고 잘 먹으니 좋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사라다빵은 하나만 먹고 끝낼 수가 없다. 분명 배가 부른데도 두 개 세 개를 먹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겨울이고, 무용도 한 달째 쉬고 있어 무거워진 몸이 더 무거워지게 하는데 한몫을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샌드위치를 베어 물면서 문득, '만약 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이 샌드위치를 정말 많이 그리워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지만 건강하시고, 그래서 아직은 충분한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새삼 이 사라다빵이 정말 귀해졌다. 그 전에도 열심히 먹었지만 더 열심히 먹게 되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진 않았다. 재료가 풍부할 뿐, 새로운 재료가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가끔 할머니의 흰머리카락이 섞이기는 해도) 그래도 할머니의 사라다빵은 정말 맛있다. 어디서도 절대 사 먹을 수는 없는 맛이다. 굽은 허리로 감자랑 계란을 삶고, 오이를 잘라 물기를 짜고, 재료를 섞어 식빵 속에 넣어 식빵의 꼬투리를 잘라 통에 차곡차곡 담는 그 힘든 과정이 전부 다 할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이겠지. 그럴 수 있다면, 이 사라다빵을 더 오래 먹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내 아이도 이 사라다빵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