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익명의 글에서 자신을 숨길 수 있을까
요즘 좋은 기회가 닿아 온라인에서도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기가 이런 만큼, 근무하고 있던 곳들은 코로나 19 때문에 대면 상담이 불가능해서 스케줄이 모두 취소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온라인 상담에 좀 더 에너지를 쓰고 있는 상태이다.
기본적인 세팅 자체가 오프라인이고, 대화를 통한 언어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 말투 등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포함한 대면 상담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모두 전달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온라인 상담은 어떤 느낌일지 새삼 궁금했었다. 물론 이전에 감사하게도 사이버 상담 관련 책에 참여해 공동저자로 출판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실제의 온라인 상담이 (특히 어플에서 이루어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상담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확 다가오지 않아서 좀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며칠 동안 글을 통해 내담자를 만나고 상담을 하면서 새삼스럽지만 '글'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글에는 작가가 꽤나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막상 '상담'이라는 형태로 '글'을 마주하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그 사람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달까. 그저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 뭐 그런 정보들이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 너머 인터넷 세상의 누군가가 너무도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어쩌면 외모도, 직업도, 이름도,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건 참 새롭고 신기한 경험인 것 같다. 글에서 그 사람이 오히려 더 잘 보이다니...
그리고 역시 나는 말보다는 글이 훨씬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흘러가는 말은 붙잡아두기가 어려워서, 그리고 마음과는 다르게 튀어나올 때도 많아서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기가 더 쉬운데, 글은 마음만 먹으면 붙잡아두고 여러 번 읽을 수도 있고, 한번 더 생각하고 쓰게 되니 좀 더 명확하고 투명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간혹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필요한 만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수퍼비전에서 들을 때도 있는데, 어쩌면 '글'이라는 매체가 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내담자에게도 나에게도 좀 더 솔직하게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혹자는 익명의 글이기 때문에 '나'를 숨기고 악플도 쓰고 현실보다 더 악하게 굴기도 한다지만, 과연 그것이 나를 '숨긴' 것일까? 오히려 그것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고,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로는 그 사람의 '숨긴' 모습이 아닐까? 내가 쓴 익명의 글들이 사실 나를 얼마나 '까발리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욕구와 공격성과 악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익명성은 오히려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모를지언정, 나는 내가 쓴 글들을 아니까. 아무리 그건 내가 아니라 익명에 숨은 것이라 자위한들, 스스로는 알지 않을까.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숨겨진' 것인지.
이런 걸 쓰려던 건 아닌데 온라인 상담에서의 글을 생각하다 보니 또 너무 멀리 와버렸네. 어쨌든 글이 주는 솔직함과 명확함에 요즘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화 통화보다는 메신저가 익숙하고, 직접 만남보다는 SNS가 점점 더 익숙해지는 세상에서 과연 오프라인 대면 상담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에서 무료로 상담을 받고 자란 지금의 세대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더 익숙한 그들이, 온라인 상담 채널과 오프라인 상담 채널이 있을 때, (심지어 온라인 상담이 더 저렴하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새삼 걱정스럽고 또 궁금했다.
오늘은 자꾸 글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제목에서 자꾸 벗어나네. 비록 정리되지 않은 글이긴 하지만, 요즘은 글을 자주 쓰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