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부끄러움을 아는 것

어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는 거저먹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를 많이 먹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세월이 알아서 해주지만, 그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것은, 심지어 그 앞에 '괜찮은'이란 수식어까지 붙여보려면 정말 어려운 것 같달까.

근래에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 '저렇게 나이 먹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직 나는 어른이라기에도, 어른이 아니라 하기에도 애매한 30대 후반,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서 감히 이런 글을 내가 쓸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떤 작가님의 말씀처럼 일단 생각과 글자가 모였으니 한번 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는 누구에게나 해가 지나면 공평하게 저절로 주어지니 일단 '그렇게 나이 먹기'는 너무 쉬운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무래도 어릴 때보다는 나에게 듣기 싫은 소리 혹은 나의 잘못됨을 알려주는 말을 들을 기회가 점점 적어지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렵고, 심지어 거기에 사회적인 권력이나 위치까지 주어지면 더더욱 그렇게 되기 쉬운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더럽고 우습고 치졸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참 많아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대체 왜 모르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혹은 나는 그래도 된다는 식의 생각으로 그것의 부끄러움은 가리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은 것일까. 그저 부끄러움만 알고 있다면, 그것만 느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직 나이를 덜 먹은 나로서는, 그것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그러고 싶지가 않은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세상에 괜찮은 어른도 꽤 많은 것으로 봐서는 그러고 싶지 않은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 같은 말을 내뱉고는 깜짝 놀랄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쓸데없이 흥분할 때도 있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굳게 믿게 되는 순간들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고, 또 필요할 때에는 종종 상대에게 가서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하는데, 나이가 점점 더 들수록 스스로 그런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내가 알 수 없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그냥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새삼스럽게 다짐해보았다. 그것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말이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늘 잃지 않았으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스스로 모른척하지 않고 살았으면. 삶이 버겁고 힘들더라도 적어도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부끄러움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고 살 수 있었으면. 나에게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어주고 있는 그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괜찮은 어른'은 아닐지라도 '필요한 나이 많은 사람'일 수는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