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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아 Mar 11. 2020

글이 가지는 힘

과연 익명의 글에서 자신을 숨길 수 있을까

요즘 좋은 기회가 닿아 온라인에서도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기가 이런 만큼, 근무하고 있던 곳들은 코로나 19 때문에 대면 상담이 불가능해서 스케줄이 모두 취소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온라인 상담에 좀 더 에너지를 쓰고 있는 상태이다.


기본적인 세팅 자체가 오프라인이고, 대화를 통한 언어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 말투 등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포함한 대면 상담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모두 전달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온라인 상담은 어떤 느낌일지 새삼 궁금했었다. 물론 이전에 감사하게도 사이버 상담 관련 책에 참여해 공동저자로 출판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실제의 온라인 상담이 (특히 어플에서 이루어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상담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확 다가오지 않아서 좀 걱정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며칠 동안 글을 통해 내담자를 만나고 상담을 하면서 새삼스럽지만 '글'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글에는 작가가 꽤나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막상 '상담'이라는 형태로 '글'을 마주하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그 사람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달까. 그저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 뭐 그런 정보들이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 너머 인터넷 세상의 누군가가 너무도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어쩌면 외모도, 직업도, 이름도,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네.


아무튼 그건 참 새롭고 신기한 경험인 것 같다. 글에서 그 사람이 오히려 더 잘 보이다니...


그리고 역시 나는 말보다는 글이 훨씬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흘러가는 말은 붙잡아두기가 어려워서, 그리고 마음과는 다르게 튀어나올 때도 많아서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기가 더 쉬운데, 글은 마음만 먹으면 붙잡아두고 여러 번 읽을 수도 있고, 한번 더 생각하고 쓰게 되니 좀 더 명확하고 투명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일정한 거리'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간혹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필요한 만큼)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수퍼비전에서 들을 때도 있는데, 어쩌면 ''이라는 매체가 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내담자에게도 나에게도   솔직하게 만날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혹자는 익명의 글이기 때문에 '나'를 숨기고 악플도 쓰고 현실보다 더 악하게 굴기도 한다지만, 과연 그것이 나를 '숨긴' 것일까? 오히려 그것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고,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로는 그 사람의 '숨긴' 모습이 아닐까? 내가 쓴 익명의 글들이 사실 나를 얼마나 '까발리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욕구와 공격성과 악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 익명성은 오히려 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모를지언정, 나는 내가 쓴 글들을 아니까. 아무리 그건 내가 아니라 익명에 숨은 것이라 자위한들, 스스로는 알지 않을까.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숨겨진' 것인지.


이런 걸 쓰려던 건 아닌데 온라인 상담에서의 글을 생각하다 보니 또 너무 멀리 와버렸네. 어쨌든 글이 주는 솔직함과 명확함에 요즘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화 통화보다는 메신저가 익숙하고, 직접 만남보다는 SNS가 점점 더 익숙해지는 세상에서 과연 오프라인 대면 상담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에서 무료로 상담을 받고 자란 지금의 세대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더 익숙한 그들이, 온라인 상담 채널과 오프라인 상담 채널이 있을 때, (심지어 온라인 상담이 더 저렴하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새삼 걱정스럽고 또 궁금했다.


오늘은 자꾸 글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제목에서 자꾸 벗어나네. 비록 정리되지 않은 글이긴 하지만, 요즘은 글을 자주 쓰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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