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령아 Nov 25. 2019

아이들이 죽는다

너무 많이 힘들지는 않았으면

아이들이 죽는다. 반짝반짝함만 남기고서.


여기서 '아이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 기준에서. 얼마 전이라고 할 만큼 최근에 설리 씨가 그랬고, 오늘 구하라 씨가 그랬다. (글은 늘 미리 써두기 때문에 이 글이 언제 발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구하라 씨 사망 기사가 보도된 날이다.) '왜'라는 것을 되묻는 게 습관일 정도로 이유를 찾아내는 게 나에게는 항상 중요하지만, 이런 일에서는 '왜'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낸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아이들은 이미 죽었는걸.


몇 년 전에 종현 씨가 죽었고, 그 역시 기사를 통해 접했다. 사실 그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던 가수는 아니었다. 아이돌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고 게다가 '누나가 너무 예쁘다' 노래하며 해사하게 웃던 아이들이 나는 좀 거북스러웠거든. 그냥 지나가던 예능에서 자신을 '블링블링'이라고 소개했던 것만 내 기억에 남아있었다. 블링블링한 그 아이가 죽고 나서, 그제야 나는 그가 궁금해져서 지난 노래를 찾아 들으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었다. 그가 살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는지,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어떤 늪이 그의 주변에 있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된 그는 노래를 참 잘했고, 솔직하고 마음에 닿는 가사를 쓰던 청년이었다.


SNS을 내내 팔로우하면서 종종 올라오던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에 마음속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그렇게 설리 씨를 지켜봤었다. 그래, 그렇게 즐겁고 반짝반짝하게 살아라. 그 웃음도 눈물도 모두 반짝임이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 제발. 그래서인지 설리 씨의 사망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서는 꽤 오랫동안 마음이 어두웠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빛나던 그 아이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빛날 수 없다는 것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오늘 핸드폰을 이렇게 저렇게 보다가 구하라 씨의 사망 기사를 보았다. 설리 씨가 죽었을 때, 네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울면서 영상을 남겼다는 것을 기사로 접한 것이 얼마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또 반짝이던 아이 하나가 죽었다.


그들이 살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어떤 세상에서 그들은 그렇게 힘들었을까. 옆에 있다면 그저 붙잡고 울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그렇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모든 사람들은 아마 자신만의 짐을 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도 매일 자라나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쓰고 울며 그 무거움을 견디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도 유치원이 너무 힘들고 피곤하다며 한숨을 쉰다.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각자 어떤 짐을 진 것은 아닐지. 그리고 아무도 남의 짐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아니 절대 대신 들어볼 수가 없어서) 다들 내가 진 짐이 가장 무겁다고 착각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내 짐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이 곳에는 가득 모여있다. 정말 안쓰럽지 않나.


그래, 내 짐이 지금 너무 무겁지. 그런데 옆에 있는 그 사람도, 저 멀리 있는 저 사람도, TV와 인터넷, SNS 속에서 반짝이는 그 사람도 아마 나만큼 무거운 짐이 있을 거야 다들. 물론 내가 너무 힘이 들 땐 다른 사람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진 이 짐은 비단 나만 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저 사람은 나보다 작은 짐을 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내 짐보다 훨씬 가벼워 보이는 저 사람의 짐이 너무 화가 나서, 너무 무거운 내 짐이 억울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도 사실은 모르면서 돌덩이를 얹는 것은 이제 그만둘 수 없을까.


반짝이는 아이들을 이제는 더 이상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각자의 짐을 충실히 지고서 살아가는 그 모든 사람들을 더 이상은 잃지 않았으면. 언젠가는 죽어서 떠나갈 이 세상을, 스스로 먼저 떠나기로 마음먹는 사람들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옆 사람의, 저 멀리 그 사람의, 그냥 지나가는 누군가의 짐을 보며 '당신도 참 무겁겠네요.'라고 생각해줄 수 있었으면. 내가 내 짐을 견디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짐을 견디고 있는 것을 한 번쯤은 알아주었으면.


아주 잠시라도 그 무거운 짐을 풀어두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그런 누군가가, 우리 모두에게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