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에 대한 고찰
나이 마흔 앞두고 갑자기 뭔 엄마 타령인가 싶은데, 제목이 저렇지만 그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진짜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석사와 박사가 동일한 학교, 학과이고,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석사와 현재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님이 다른데, 최근에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된 순간이 있어 쓰고 싶은 다른 글들이 몇 개나 기다리고 있음에도 이 글을 먼저 쓰게 되었다. (사실은 지금 일하려고 앉았다가 일하기 싫어서 쓰기 시작한 것이기도 함.)
동 대학원이라 해도 일을 하다가 학교로 돌아왔기에 나름의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조금 더 차분해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내가 석사 때부터 (교육자로서) 존경하고 좋아하던 분이고, 여느 때처럼 중요한 것들은 겉으로 티를 잘 내지 않는 내 특성상 다른 사람들은 내가 쉽게 선택한 줄 알지만 사실은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선택하게 된 분이다. 교수님의 지도 방식이나 일하는 스타일, 랩을 꾸려나가는 모습 등이 나와는 꽤 잘 맞아서 만족스럽고 (사실은 교수님이 맞춰주시는 것 같지만), 강의하실 때의 교수님이 참 좋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듯, 전부 다 좋기만 하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로서 (다르게 표현하자면 상사로서)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지금) 지도교수님이 어려운가?"라는 동료들과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렵지 않고, 그냥 지도교수님"이라고 답한 후에도 뭔가 걸리는 부분이 남아 틈날 때마다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근데 그렇게 보다 보니 그런 답변이 나오더라. '어렵지 않고, 그냥 지도교수님인데... 지금 사실 나는 우리 엄마랑 같이 못살아서 다른 집에 잠시 얹혀사는 느낌?' 이라고. 분명히 새엄마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잘 돌봐주고, 잘 챙겨주는데도 내 집 아닌 것 같고,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데 그냥 눈치 보는 느낌이랄까.
누군가가 교육자로서 너는 어떤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의 지도교수님의 스타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눈에 띄는 차이점들은 분명 존재하니까. 아직 지금의 지도교수님은 내가 (지도교수로서) 직접 겪은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근데 그런 거 있잖아... 내 엄마는 나한테 욕하고(?) 막 뭐라고 해도 엄마 같은데, 새엄마는 (실제로 새엄마랑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냥 상상해보았을 때) 잘 챙겨주고 잘해줘도 엄마 안 같은 거...
이건 근데 내가 유별나서(?)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석사 지도교수님과는 꽤 가깝게 지냈었고 (지금도 나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고), 그렇게 지내온 시간도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난 데다가, 그 사이에 정말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더 여러 상황들이 많았지. 그래도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내 엄마가 제일 편하지(?) 싶고, 여전히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석사 지도교수님이랑 더 많이 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지금은 영 엄마랑 같이 살 수 없게 되어서 다른 집에 맡겨진 느낌이란 말이지...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지도교수님이랑 정말 일만 할 수 있다는 거? 나 같은 경우에는 관계의 경계에 대한 선이 아주 명확해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편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으나) 일하는 관계는 정말 일만 해서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드는 일이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없고, 함께 일하는 관계에서 시간이 지나도 사적인 관계를 추가할 것이냐 아니냐를 무척이나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이다. 일하는 관계(즉 공적인 관계)에서는 정말 과하게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냥 놔두면서 지켜보고, 사적인 관계가 추가되는 경우라도 내 신중함 탓에 경계를 쉽게 침범하지 않는 특성의 사람들만 남아서 크게 부대끼지 않고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래서인지 간혹 그냥 같이 일하는 관계임에도 내가 가만히 있으니 본인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과하게 경계를 넘어오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새엄마 집에 얹혀사는(?) 경우에는 아예 그럴 일 없이 그냥 같이 일만 하는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지도교수님이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라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다양한 스타일과 여러 가지 방법을 경험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지금 내가 새엄마 집에 얹혀사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로는, 마음 한구석이 좀 찜찜하고 헛헛하고 그렇다. 아니 사람이 같이 일하면서 (막 친구처럼 그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편하게 얘기도 하고 좀 그럴 수 있잖아. 근데 내가 여기가 남의 집이라 생각하니까 거기서 오는 불편함이 있는 거지. 이 부분은 좀 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으면 졸업일 것 같아서... 나도 참 나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