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병일까요
짧은 글은 쓰기가 너무 어렵다.
늘 그래 왔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은 좋아했고, 그래서 나의 글쓰기 인생(?)은 아주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기를 쓰고, 글쓰기 교실에서 상상 글짓기를 비롯해서 나의 글짓기 기초실력을 다져가고, 더 자라서는 친구와 교환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고, 쪽지도 주고받고. 그렇게 글쓰기 인생은 쑥쑥 자라나고 넓어졌다.
싸이월드가 한창 성행할 당시, 나는 미니홈피를 그다지 열심히 하는 축에 끼지는 못했다. 그저 가끔 사진을 올리는 정도였을까. 근데 일기는 참 열심히 썼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 나처럼(?) 이상한 애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들 내 일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왠지 글쓰기에 좀 진지해져서 엉뚱한 유머와 재치는 사라진 것 같지만, 그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참 즐겁게 일기로 썼던 것 같다. 블로그로 공간을 옮기고 나서도 일기만큼은 꾸준히 썼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나름 그 글들을 좋아했었지.
짧은 글을 못써요.
좋아하는 블로거 중에 "짧은 글은 못쓰는 병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아.. 맞다. 나도 그런데? 나도 짧은 글은 못쓰는 병이 있어요. 글은 쓰다 보면 쓰고 싶은 것이 자꾸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문장이, 문단이 늘어나고, 수식이 더 붙고, 어느새 스크롤이 한참 내려가는 글이 되어버리고 만다.
처음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을 때, 좀 웃기지만 나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그거였다. 어쩌지? 나는 글을 짧게 못쓰는데. 요즘은 워낙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 세상이 아니기도 하고, 기사를 읽는 것이 싫어서 카드 뉴스를 만드는 정도인데, 이렇게 긴 글만 쓰는 나는 과연 이 곳에서 괜찮을까. 긴 글을 읽는 것을 즐기는 것은 나이지,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던데?
첫 글은 '나'에 대한 글이었는데, 너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 길었다. 어쩔 수 없이 글을 6개로 나누고 다듬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의 글은 하나로 끝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는 긴 글을 좋아한다. 긴 호흡으로 글이 이어지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가끔은 이 글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만큼 긴 글을 읽는 것을 즐긴다. (물론 그 글이 재미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 선호가 내 글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긴 글을 읽는 것을 참 좋아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긴 글을 쓸 수밖에.
대부분의 이들이 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큼의 여유를 가질 수 없어서가 아닐까.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붙잡고 있기 어려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달리고, 달려서 어느 순간 집에 돌아오면, 아 이제 내가 쉬어도 되는구나 하는 순간, 잘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더 이상은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긴 호흡의 글에는 눈길조차 주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짧은 글을 못쓰는 한탄에 대한 마무리로는 뜬금없긴 하지만, 긴 글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스크롤이 한참이어도 한 번쯤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를 시작할 수 있는, 페이지가 한참이어도 한 번쯤 펼쳐서 볼 수 있는, 그런 삶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다면.
근데, 지금 이 정도면 짧은 글을 쓰는 것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