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몸뚱이 움직여보기
올해 3월부터 나는 현대무용을 배우고 있다.
자주 할 때는 주 3회, 그렇지 못할 때는 주 1회 정도로 무용을 하러 간다. 무언가를 시작하기까지 고민을 아주 오래 하는 내 성격 상, 현대무용을 하기까지 고민하던 시간은 대략 3년 정도가 걸렸다. 늘 그런 식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어디서 할지, 과연 괜찮을지를 포함한 이런저런 것들을 고민하느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이 훌쩍 가버린다. (물론 생각만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고, 관련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은다.)
호기심이 많은 성향 상 나의 취미생활은 꽤나 다양하고 그렇기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는데, 그중에 몸을 사용하는 취미생활은 사실 거의 없었다. 대부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내 표현으로는 생산해내는) 취미생활이었다. 몸을 쓰는 것이라고 하면 이전에 10개월 정도 했던 발레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지 않으면 왠지 죽을 것 같길래) 했던 필라테스나 요가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현대무용을 감히 운동이 아니라 취미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일단 목적 자체가 죽을 것 같아서 운동을 위해 했던 것이 아니기도 하고, 생각보다 내가 꽤 즐거워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지금 다니는 곳은 사실 내가 몇 년 전부터 내내 지켜보던(?) 곳이었다. 그 3년간의 고민의 시간 동안 이 센터가 계속 함께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위치. 우리 집에서 차로 가도 짧게는 한 시간, 차가 막히기라도 하면 두 시간도 걸리는 위치에 있어서 섣불리 시작하겠다 마음먹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안책으로 다른 학원 혹은 센터를 열심히 찾아봤는데, 성인을 대상으로 현대무용 수업을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근 3년간의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준 건지 올 초에 그 센터가 우리 집에서 짧게는 20분, 차가 막혀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위치로 이사를 했다. 와아... 이러면 해야지! 내가 그동안 걱정하던 부분이 사라졌는데? 그래서 시작했다. 올해 3월에 드디어.
내가 처음 들어간 수업은 입문자를 위한 기초 수업이었다.
몸의 기본자세를 배우고 자세를 바로잡는 동작들을 배우는 그런 수업이었는데, 내 몸은 음... 총체적 난국이었다. 무릎은 제대로 펴지 못하고 다리가 약간 X자인데다가, 어깨는 말려있고 한껏 힘이 들어가 있으며 심지어 엄청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게다가 얼굴은 왼쪽으로 기울어져있고, 몸 자체도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남들이 쉽게 하는 것 같은 자세도 내가 하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막 비 오듯이 떨어졌다.
입문자를 위한 기초 수업은 원장님이 직접 해주셨는데, 정말 열정과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시지만 그만큼 엄하고 (내 기준에서는) 혹독했다. 수업시간은 늘 정해진 시간보다도 20-30분을 더 넘겨 끝나기 일수였다. 같은 동작을 쉴 틈 없이 수십 번씩 반복하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왜 굳이 비싼 수강료를 내가면서 지금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건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나의 비루한 몸뚱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에게 종종 등짝을 맞아가며(?) 동작을 배웠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사실 입문반이 아니라 입시반을 잘못 등록한 거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었다. (나도 사실 그런 게 아닐까 의심이 되기도 했다.) 이제 내일모레 나이 마흔에 예고 입시 보러 다시 가는 거 아니냐며.
무용을 하고 나면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근육통에 시달렸다. 내가 그간 살면서 PT도 받아보고, 수영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요가도 하고, 발레도 해봤는데, 어머... 이건 정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근육통이었다. 내 몸에 그렇게 다양한(?) 근육들이 살고 있었는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다음날은 살짝 아프다가 이튿날이 되면 변기에 앉기도 짜증날만큼 아프고, 삼일째부터 조금씩 나아지다가 좀 괜찮나 싶으면 다시 수업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돈 내고 고통받는(?) 나 자신이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오기도 생기고, 또 확실히 몸이 달라지는 것이 내 눈으로 확인되니까 아프고 비루한 몸뚱이를 끌고 또 가게 되더라. 무엇보다 평소 직업상 늘 앉아서 입과 귀와 머리만 쓰는데, 머리를 멈추고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뇌를 꺼내서 물에 담가놓지 않아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
사실 유치원 때도 무용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선택적 함구증에 불안이 높은 아이였으므로, 그 무용학원에서 내가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이 모두 앞에서 무용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데 나 혼자 뒤에 다리 뻗고 앉아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따라 하지 않았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그 동작들을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그것을 혼자 연습했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남 앞에서 해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장족의 발전이지. 그래도 몇십 년의 세월을 헛살지는 않았네.
이제는 현대무용을 다닌 지 벌써 9개월쯤 되었다. 요즘은 주 1회씩 무용을 가는데, 나의 무용 실력이 처음보다 나아졌냐고 하면 글쎄... 나는 여전히 동작을 잘 따라 하지 못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써야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온하게 따라 하는 동작을 혼자 부들부들 떨면서 해내곤 한다. 거울로 보는 형편없는(?) 내 몸동작을 확인하는 것이 가끔은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왜 나만 이렇게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하는 거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멋있게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어디 가서 뭘 못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다. (나 혼자 못한다고 꽤 오래 생각하며 살기는 했지만.) 머리를 쓰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이제는 꽤 잘할 수 있는데, 몸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분명 내 몸인데 이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아무리 머리로 생각해도 몸이 실제로 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이건 또 새로운 세상이었다.
삶도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무용하다가 무슨 헛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이건 삶과 같다고 거창하게(?) 혼자 생각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직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은 곳곳에 널려있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것들도 실제로 해보면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 몸이라 할지라도.) 쉽게 익숙해져서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나에게 무용처럼 거의 일 년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아직도 잘 못하는 것도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그냥 해보는 것, 그 안에서도 나름의 목적과 이유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
나는 아직도 무용을 잘 못하지만 그래도 꽤 즐겁다. 비루한 몸뚱이지만 마음껏 움직여보는 것이 신선하고, 음악에 맞춰서 허우적대는 것도 웃기고, 어떻게든 좀 잘해보겠다고 버둥대는 나 자신이 참 재밌다. 아무리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꼬여 있어도, 춤추는 동안만큼은 그런 것들이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생각을 하면 다치거나 안 그래도 못하는 동작을 더 실수할 수도 있으니. 땀이 후둑후둑 떨어질 때, 내 몸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남들에 비해 내가 뒤쳐지고 잘 못한다는 것을 매번 거울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그래도 하겠다고 계속 춤을 추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무슨 일이든 자기만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빠르게 잘 해내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도 있고. 크게 나눠서 보자면 머리를 써서 하는 일이 나에게는 빠르게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몸을 써서 하는 일은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일 텐데, 아마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 잘할 수는 있을 것인지, 아니 잘하는 건 둘째치고 기본이라도 잘 따라 할 수 있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때가 올 때까지 한번 해봐야 알 수 있겠지. 그래서 계속 춤을 추러 가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꽤 즐겁고 신선하기도 하고, 내가 과연 언제쯤 제대로 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리고 음.. 내가 못하는 것도 즐겁고 재밌다고 느낄 수가 있구나 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아서.
그거 뭐 좀 못하면 어떠냐. 그냥 내가 즐겁고 재밌으면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