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rack 1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뜰 Nov 26. 2018

금붕어주의보

제10회 창비 어린이신인문학상 공모작





  아침부터 온 학교가 술렁였다.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게 뭔 대수냐고? 전교생이 열여섯 명인 중학교에 ‘뉴 페이스’가 온다는데, 당연히 대수일 수밖에. 잔뜩 들뜬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게 뭐? 하고 ‘쿨’한 척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서른 가구가 모여 사는 아주 작은 곳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중학교가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다. 우리 반은 나까지 일곱 명. 네 명뿐인 1학년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일곱 명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그 애가 오는 날은 우리에게 나름 특별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고 선생님 뒤에 선 전학생이 보였다.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자 전학생은 뚜벅뚜벅 걸어 나와

 “…김우주.”

  세상에서 제일 짧고 무미건조한 자기소개를 했다. 우리는 뒤에 이어질 말을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정말 그게 끝, 끝이었다. 교실에 침묵이 맴돌자 선생님은 전학생을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그 자리가 바로 비어있던 내 옆자리. 아, 내게 왜 이런 일이…. 뭉크의 <절규>마냥 소리 없이 절규하는 내 옆에 그 애가 담담하게 가방을 풀었다.

  우리 반은 옆에 앉은 사람끼리 청소당번이 되어 일주일씩 돌아가며 청소를 하는데, 그동안 내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어서 나는 평소에 칠판을 닦거나 쓰레기봉투를 비우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청소 때문에 학교에 남지 않아도 돼서 많은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었다.

 “우주야, 모르는 것 있으면 옆자리 선우한테 물어봐. 선우는 점심시간에 도서실이랑 컴퓨터실 위치 알려줘라. 이상.”

  쿵, 선생님의 선고가 내려졌다. 졸지에 전학생 담당이 되어버린 나는 책상에 풀썩 엎어졌다.

  옆에 아무도 없다가 누가 있으니까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방을 올려놓던 자리에 사람이 앉아서 불편하기도 했고 잘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으니까 왠지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가 어색했다. 나와 그 애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될 선 하나가 또렷하게 그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김우주, 그 애가 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친구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그러나 축구 좋아하냐고 묻는 태호에게도, 어디 사느냐는 민주에게도 그 애는 답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도 그 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 반은 다시 그 애가 오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말 붙이고 이것저것 알려준 나도 그 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는 게 내가 아는 그 애 일상의 전부였다.


-


  그 애가 입을 연 건 금붕어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름이가 운동장 쓰레기통에서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든 금붕어 두 마리를 주워왔다. 납작한 주황색 몸에 하늘하늘한 지느러미를 단 금붕어를 둘러싸고 교실 안은 금방 왁자지껄해졌다. 하지만 금붕어를 키우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가 싫어해서, 학원 때문에, 징그러워서·… 금붕어를 키울 수 없는 이유를 모아보니 일곱 가지나 됐다.

 “키울 사람 있는지 다른 학년에도 물어볼까?”

 “그냥 제비뽑기 하자. 걸린 사람이 알아서 하기!”

  금붕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멀찍이 책상에 앉아있던 그 애가 말했다.

 “교실에서 키우는 건 어때?”

  우리 모두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키우자는 데 놀란 게 아니라 김우주가 말했다는 그 사실에 놀랐다.

 “저기 뒤편 사물함 위에 올려두면 될 것 같은데.”

  우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거기까지 말한 뒤 그 애는 다시 헤드폰을 꼈다.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매일 성실하게 돌보는 조건으로 선생님도 허락해주셨다. 예전에 금붕어를 키웠던 아이들이 어항과 자갈, 여과기 따위를 가져왔다. 금붕어 두 마리를 넣어주니 활기차게 잘 돌아다녔다. 그렇게 우리 교실 맨 뒤편에는 금붕어 두 마리가 살게 되었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먹이도 줘야 하고 어항 물도 갈아줘야 하고 자갈도 씻어주어야 하고… 할 일이 계속 생겼다. 어항만 만들어주면 알아서 잘 사는 게 아니었던 거다. 자연스럽게 어항 관리는 그 주의 청소당번에게로 돌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그 애와 둘이 청소당번이 됐다. 처음 한 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준 뒤로 우리는 각자 할 일을 나눠서 했다. 내가 바닥을 쓸면 그 애가 닦고, 내가 사물함 위를 정리하는 동안 그 애는 창틀을 닦았다. 조용한 교실 안에는 매미소리만 가득했다.

  하루는 내가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이 주면 매번 안 챙겨도 될 것 같아서 숟가락 가득 먹이를 퍼주려는데,

 “그렇게 많이 주면 안 돼.”

생경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애였다.

 “한 번에 많이 주면 걔네 배 터져서 죽어.”

  그 애가 먹이를 덜어내 어항 위로 솔솔 뿌렸다. 먹이를 주기가 무섭게 금붕어들이 헤엄쳐 올라왔다. 그 애는 가만히 서서 어항을 지켜봤다.

 “금붕어 좋아하냐?”

  딱히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는데 웬일로 그 애가 대답을 다 했다.

 “어, 좀.”

  금붕어를 좋아한다니 좀 의외였다.

 “그래서 그때 교실에서 키우자고 한 거구나?”

  내가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그 애는 대답을 해줬다.

 “뭐, 그런 거지.”

  딱 두 마디였지만 김우주랑 말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머쓱한 듯 그 애가 자리를 비켰다. 나는 그 애가 서있던 자리에서 어항을 바라보았다. 물이 들어있는 네모난 어항, 그 안에 하늘하늘한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금붕어 두 마리가 보였다. 두 마리는 한 공간에 있지만 친하지는 않은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엄쳤다. 그 모습이 꼭 나와 김우주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금붕어가 움직일 때마다 어항 안에는 작은 물방울이 생기기도 하고, 흰 자갈이 들썩거리기도 했다. 기다란 수초도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흐늘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어항 속이 또 다른 세상 같았다. 금붕어 두 마리가 사는 행성. 어쩌면 우주에는 이렇게 물이 가득하고 금붕어만 사는 행성이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 애 이름이 김우주라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김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빨리 하고 가자.”

  김우주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


  그날 후로 그 애, 아니 김우주는 내 인사에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기 전 습관처럼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는 내게 손바닥을 편 채 손목을 까딱해주는 것이 ‘김우주식’ 인사였다. 모르긴 몰라도 금붕어 일 이후로 그런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의 관계가 갑자기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데면데면하고, 보이지 않는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며 지냈다.

  오늘도 김우주는 헤드폰을 끼고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듯 내 옆에 앉아있다. 매일 뭘 듣는 걸까, 아니 뭘 듣고 있기는 한가? 헤드폰을 빼서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최선우’식이었다. 김우주식으로 나는 청소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어항에 물도 갈아주어야 하니 말을 걸 기회는 충분할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어항을 화장실로 옮겼다.

 “근데 너, 금붕어 키워봤어?”

  금붕어 이야기로 운을 뗐더니,

 “어. 예전에.”

  아주 자연스럽게 답이 돌아왔다. 김우주가 능숙하게 금붕어를 미술용 물통 안에 옮기고 물을 빼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물이 어항의 삼분의 일 정도 남자 김우주는 어항을 바로 세우고 자갈을 빼냈다.

 “물은 왜 남겨 놓는 거야?”

  내가 물었다.

 “원래 살던 물을 남겨놔야 빨리 적응해.”

  아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꼭 김우주 자기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에 새로 온 김우주. 김우주는 지금, 전에 있던 곳의 물이 삼분의 일쯤 들어있는 어항에 살고 있는 걸까?

  우주가 시키는 대로 자갈을 씻었다. 잘그락 잘그락 소리가 듣기 좋았다. 깨끗하게 닦은 어항 안에 다시 자갈을 깔고 물을 채웠다. 금붕어 두 마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어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항을 보는 우주의 얼굴이 밝았다.

 “그렇게 좋아하면 네가 데려가서 키우지.”

 “그건 좀 어려워서.”

 “왜? 금붕어 키우는 거 잘 하잖아.”

 “…….”

  대답하지 않는 우주에게 내가 어항의 물을 손에 묻혀 뿌렸다.

 “무슨 비밀이 그리 많냐?”

  우주가 나에게 똑같이 물을 뿌렸다.

 “네가 뭔 상관.”

  물장난을 몇 번 더 치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우주와 나 사이에 벽만큼이나 뚜렷했던 선 하나가 조금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내 궁금했던 걸 드디어 물어봤다.

 “야, 근데 넌 쉬는 시간마다 뭘 그렇게 듣는 거야?”

 “아무것도.”

 “에이, 너 만날 헤드폰 끼고 다니잖아, 집에 갈 때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아직도 숨기기냐? 숨기는 거 진짜 많네.”

 “아니, 진짜 아무것도 안 듣는다고.”

  우주가 헤드폰을 꺼내보였다. 헤드폰 끝에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금붕어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던 날에도 우주는 헤드폰을 끼고 있다가 불쑥 끼어들어 말했었다. 다 듣고 있었던 거다.

 “그럼 여태까지 음악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었던 거야?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글쎄.”

  우주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엄마 아빠 싸울 때마다 안 들리는 척 이렇게 있었더니 이젠 이렇게 있는 게 편해.”

하고 말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유였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다른 걸 물었다.

 “근데 넌 왜 이런 촌동네로 전학을 왔냐?”

 “난 전학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 이모집, 고모집……. 여기엔 할머니 집이 있거든.”

  또 한 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상처가 되지 않을까?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을까? 교과서엔 왜 이런 게 없는 걸까.

  그런 나를 보고 우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난 아이들의 물음에 이제껏 우주가 왜 대답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청소하자.”

  우주가 능숙하게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넘기면 최선우와 김우주는 영영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야, 잠깐만.”

  나는 우주를 데리고 학교 뒤 담벼락으로 갔다. 어둡고 외진 담벼락을 넘으면 바로 뒤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여기,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다 아는 데거든? 쓸 일 있음 쌤한테 안 들키게 잘 써. 그럼 갔다 올 테니까 거기서 망보고 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담을 넘어 구멍가게에 갔다가 다시 담을 넘어 돌아왔다. 그 사이 셔츠가 흠뻑 젖었다. 까만 봉지에서 가져온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내가 말했다.

 “붕어, 좋아한다고 해서. 이 붕어도 좋아하냐?”

  붕어싸만코를 보고 우주가 웃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꼭 금붕어 같았다.




                                                                                                                                                   - FIN (200*31)



* 제목 뒤로 들어간 이미지의 출처는 '프리큐레이션' Freepik.com 이고 본문 이미지의 출처는 셔터스톡 / pakutaso.com 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How to <Track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