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이 따스함을 조금 더-
다섯 시간쯤 날아 태국-방콕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다.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왔다. 택시 승강장을 잘 못 찾아 조금 헤매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택시 번호표를 발권받았다. 그 번호를 들고 해당 승강장으로 가서 예약해둔 호텔 주소를 보여주었다. 오케이, 기사 아저씨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였다.
밤의 도로는 한적했다. 멀지 않은 곳에 불을 밝혀둔 사원이 보였다. 시내로 접어들자 높고 커다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나라로 오는 것이 목적이어서 달리 많은 것을 알아보지는 않았기에 태국의 모든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호텔은 약간 골목 쪽에 위치해 있어서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근처 대로에서 내려주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로투스', 이마트 같은 종합유통 업체였다. 우리 숙소는 로투스 뒤쪽에 있어서 육교로 다리를 건너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닌 밤 중에 운동을 했더니 금세 땀이 맺혔다. 밤중에 땀이 나는 나라라니, 마음에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로투스를 오른쪽에 끼고 직진, 그 후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나오면 우측으로 돌아서 쭉. 덜덜덜덜, 캐리어가 아스팔트 바닥에 닿아 거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걸 들어서 옮길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선가 키가 크고 깡마른 개가 나타나 짖어댔다. 우리를 향해 짖는 건가, 했지만 정작 개는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한 마리가 짖자 다른 개들도 따라 짖었고, 키가 크고 깡마른 개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무리 지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자기들끼리 할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 밤 기온이 27도인 나라에 당도해 숙소를 찾아가고 있다.
숙소에 도착하자 다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의외로 친절한 직원이 방을 안내해주었다. 방은 생각보다 넓고, 발코니도 있었고, 무엇보다 침대 옆쪽에 통유리로 된 창이 있어 바깥을 볼 수 있었다. 밤이라 많은 것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창밖으로 불이 들어와 있는 고층건물이 보였다.
본격적인 관광은 내일부터. 오늘은 일단 씻고 누워서 쉬자.
씻고 나와 에어컨을 켜자 금방 기분이 보송보송해졌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인한 제트기류의 약화로 유래 없는 한파를 맞고 있는 나라를 떠나 이곳에서 에어컨을 켜고 잠드는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다면 너무 과민한 걸까.
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런 건 이상하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 생각 속에서 잠들었다.
유리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눈을 떴더니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동네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노란 꽃이 잔뜩 달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평안한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해, 하고 조용히 말했다. 바라던 대로 따뜻해, 오늘은 마사지를 받을까.
그전에 어제 새벽 지나쳐 온 로투스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는 건 어떨까.
아니 아니, 당장은 이 따스함을 조금 더.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표시가 된 사진은 freeqration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