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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May 27. 2020

신, 시, 모도를 걸으며...

그렇게 봄을 떠나보내다.

언제나 가까운 곳을 무시하거나 뒷전에 놓기 일쑤이다. 쉽게 갈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그렇기에 당장 급하지 않다는 느긋함이 결국은 멀리 떨어진 여행지는 섭렵하면서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끝내 지척인데 가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남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에게 신, 시, 모도와 장봉도가 그러한 여행지일 것이다. 


신, 시, 모도를 보자면 인천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닿는 섬이다. 신도바다역(신도선착장)에서 영종도가 바로 눈 앞에 보이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니 더욱이 흔히 생각하는 "절해고도"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하지만 그 포근한 섬을 한 바퀴 둘러 걸어보면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진 섬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제방따라 난 해당화 길을 걷는 것은 꽤나 특별한 경험이다.>

작년 신, 시, 모도와 장봉도를 전체 답사 한 후 1박 2일 트레킹 대회를 개최했었다. 올해에도 약간의 코스 변경을 하여 트레킹 대회를 기획했다. (그리고 지난 23, 24일 무사히 성료할 수 있었다.) 장봉도의 코스가 살짝 변경되었지만 신, 시, 모도의 코스는 작년과 동일했다. 그래서 큰 변경사항이 있는지 체크하는 정도로 답사가 이루어졌다.


미지의 지역이 아닌 이미 익숙한 지역인지라 답사보다는 약간의 힐링이 섞인 휴식의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걸음걸이는 조금은 들떠있었다. 게다가 기가막힌 하늘 풍경이 어우러지니 언제고 이렇게만 걷고 싶다는 느낌이 충만했다.

<모도 조형물에서>

시도와 모도를 잇는 연육교를 지나 모도에 도착, 섬 입구에서 우측으로 난 등산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모도'라는 섬을 온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 그렇게 이름없는 해변을 지나 배미꾸미 해변을 가로지른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어우러진 시원한 언덕을 넘으면 예전엔 빨간 색이었지만 지금은 색이 바려 부드러운 핑크색으로 변한 'Modo'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몇 번을 찾았던 섬이고 몇 번이나 사진으로 남겼던 조형물이다. 그 익숙함에 반가움도 잠시, 간조가 시작되어 점점 드러나는 갯바위 위를 걸어보기 위해 조형물 뒤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오! 봄>

"오봄이네...오! 봄."


Modo의 글자가 뒷 편에서 바라보니oboM으로 바뀐다. 이 뒤로는 처음 와 봤으니 이제사 이 풍경을 보는 셈이다. 


때는 5월의 중순, 이제 봄도 그 끝무렵을 향하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국가도 사회도, 그리고 가정의 일상생활도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봄이 찾아옴은 알고는 있었다만, 그게 과연 봄이었는지, 그리고 또 언제 이렇게 사라지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회사의 일 또한 정신없이 생존을 위해 매진하고 또 매진했던 시간이었기에 두터운 방한 점퍼가 바람막이로 바뀌는 것만 깨닫고 벌거벗은 갈색 산이 푸른 녹음으로 뒤덮이고 꽃이 피는 모습을 걸으며 보고 기록하고 글로 남겼음에도 나는 그 '봄'이 온 것도, 그리고 가는 것도 내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했었다.


멍하니 앉아 "오! 봄..."을 바라본다.


'이제 조금은 쉬고 싶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물론 가장이라는 위치, 그리고 회사에서 맡은 업무의 책임감이 쉽사리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일을 놓는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상에서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그만치나 내 지갑, 아니 우리 가족의 지갑은 얇디얇고 회사가 해야 할 일은 목덜미에 칼이 들어온 수준이다.


정말 쉬고 싶다. 이 때 안 쉬어 그 봄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것이 언제고 참으로 후회가 될 것만 같다.


그래도 결국은 '쉰다'는 선택지를 접어버릴 수 밖에 없는 모습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뒤돌아서서 그 "오! 봄"을 바라본다. 


뒤늦은 후회와 갈증, 애타는 그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내 마음을 아는지, 예쁘게 빛이 바랜 그 조형물은 다시 Modo가 되어 떠나는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봄'은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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