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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Jun 03. 2020

진안군 답사 중, 누군가 그 길을 걷기를 바라며...

아따, 정말 고된 날이다.

지난 4월의 진안군 진안고원길 답사.


11-1구간인 감동벼룻길에 이어 지장산의 능선을 둘러볼 차례였다. 예전, 용담댐물문화관에서 안천면까지 용담호 따라 약 8km의 도로구간이 매우 위험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또한 2018년 행사 당시 참가자들의 건의가 있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우회로를 상정해 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장산 구간에 루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진안 측에서 확인해 주었고 지리정보팀장의 사전조사로 예상 루트를 명확하게 파악한 상태이다. 난 그저 따라 걸으며 기록하면 된다. 다만 앞으로 시작될 그 길이 얼마나 고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셈이다.

<감동마을 표지판>

감동마을...


오가는 차량이 워낙 드문 진안군이지만 여기까지 오니 정말로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금강과 지장산이 품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진안군 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락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감나무가 많이 나 감동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그 '감동'이나 이 '감동'이나 가슴이 따듯해지기는 매한가지 아닐까.


감동벼룻길의 마을구간 중 공중화장실, 물레방아가 세워진 곳이 임도의 시작점이다.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감동마을 표지판을 따라 임도로 들어선다. 


하늘만큼이나 푸른 표지판에 자꾸 눈이 간다. 생각해보니 감동교가 있는 국도 방면에 마을 표지판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임도에 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워낙 오지마을이라 도로따라 들어오는 차 보다 산의 임도따라 내려오는 차가 더 많은 것인지 추측해 볼 따름이다. 

<한 시간여를 땀 흘리며 올라온 임도>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은 지금에서야 고백컨데 정말 만만치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정면의 산까지 오르다가 기슭에서 구불구불 휘어진다. 마치 옛 미시령 고갯길마냥 급커브를 돌면서 급격한 경사로 올라간다.


답사날은 날씨마저 무덥기 짝이 없었다. 새벽의 진안 공기에 대비한 우리는 꽤 만만치 않게 '방한'대책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 임도 위에서 점점 태초의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한참을 묵묵히, 잡히지 않는 정면의 봉우리를 응시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햄스트링이 탄탄해지는 이 느낌, 그래... 감동벼룻길 걸을때가 좋았지.


임도를 거진 다 올라왔을 무렵, 도자히 숨을 가다듬지 않고는 못 배길 참이라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뒤를 돌아보니 여태 걸어왔던 임도와 저 멀리 이어진 진안군의 산하가 환상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느리게 걷고 오르더라도 그 걸음이 헛되지는 않았다. 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언제나 올라오며 흘리고 젖어든 땀을 식혀준다.


"와아 산그리메가 예술이네요...저 멀리 산이 무엇일라나..덕유산인가?"


방위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되는대로 주워뱉는 말이지만 지리정보팀장에게는 꽤나 큰 의문으로 다가왔나 보다.


"놀라지 마십시오. 대둔산입니다."


"대둔산?!"


깜짝 놀라 다시금 바라본다. 참 멀리까지도 보이는구나...싶다. 생각해보니 막상 산을 오르고 높은 곳에 도달해서는 도달한 그 곳을 보는것이 아니라 막상 다른 먼 곳이나 아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것이 우습다. 

<지장산에 오르다.>

새목이재에서 지장산 정상 방향 표지판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이 지장산 정상까지의 오르막, 꽤나 만만치 않다. 길이 잘 구분되는 편이지만 그 경사가 꽤 만만치 않고 부엽토와 나뭇가지등이 미끄럼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쉴 새없이 구불구불 비탈을 돌고 또 돈다. 


어느 부분에서는 평화누리길에서 만났던 문수산이, 어느 부분에서는 초입부터 끝까지 제대로 오르고 걸었던 동두천의 소요산이 생각난다. 


이를 악 물고 옮기는 발걸음, 흙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등산스틱. 방울진 채 낙엽위로 떨어지는 땀... 결국 어떤 답사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없고 수월하게 넘어가는 일도 없다. 특히나 기존 코스의 "대체"로 확정하여 반드시 현장을 걷고 확인해야 한다. 그 중압감까지 더해진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어떻게라도 쉬어가야겠다고 비명을 지르려던 차, 어느덧 앞서가 시야에서 사라졌던 지리정보팀장의 모습이 보인다. 정상이라는 뜻이다. 안간힘을 짜 내어 정상에 오르자마자 가방부터 벗어제끼고 스틱을 던지고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계속 된 답사일정에 소진된 체력이라 변명하기엔 애시당초 저질이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 부끄러움을 가쁜 숨으로 숨기며 "길이 만만치 않다."고 되뇌어 본다. 숨이 잦아들고 그제야 지장산의 정상비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무주군과 맞닿아 있는 산이라 바로 무주군의 산세가 멋지게 펼쳐진다. 그 아래 작게 보이는 마을이 참으로 앙증맞다. 


어떻게 보아도 이 진안군도 그렇지만 무주군도 정말 오지 중의 오지라 할 수 있다. 여느 편의시설을 찾기 힘든 그 산 속의 마을과 밭. 저 멀리 산 위에 있는 우리의 기척이라도 느낀 것인지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다.

<지장산 악어바위(용바위)>

정상을 확인한 후 지장사 방면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지장산의 능선은 오르내림이 심하게 부치는 편은 아니다. 그렇게 지장사에서 삼락리로 바뀌는 방향을 따라 진행한다.


표지판은 삼락리를 향하지만 우리 발걸음은 나중에 찾아올 697봉의 갈래에서 도라마을로 진입해야 한다. 삼락리를 따라 다시 내려가는 것은 결국 위험한 도로구간을 크게 잘라내지 못하고 길게 거리만 빼고 고생만 실컷하며 허무하게 산 하나를 돌아넘는 셈인 것이다. 


도라마을로 진입하여 다시 진안고원길을 만나야 위험한 8km의 도로구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녹지 환경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멋드러진 지장산의 악어바위(용바위)를 지나 한참을 직진한다. 

<697봉 갈림길. 도라마을 방향 표지판이 제가되어 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697봉에서 갈림길을 찾는 것이다. 삼락리방향에 이어 안천면 방향의 표지판이 있을 것이다. 그 표지판을 따라 도라마을로 향하면 된다.


어느덧 오늘이라는 도화지의 끝 자락에 스케치 된 지친 발걸음, 그 위로 뉘엿뉘엿 지는 해의 황금빛 채색이 더해진다. 눈이 담는 풍경과 시간의 흐름은 더 없이 낭만적이지만 현실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바라보면 그냥 시간이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697봉에 도착하니 안천면 방향으로 나 있어야 할 표지판이 없다. 그냥 부서지거나 훼손된 것이 아니라 딱 그 부분의 표지판만 전동 드라이버 등의 기구를 이용해 정확히 제거해 놓았다. 즉, 현재 '정상'으로 운영되거나 관리되고 있는 등산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는 폐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셈이다.


골치가 아파온다. 분명 능선은 나 있어서 뚫고 간다면 못 갈리는 없겠지만 이후 중간에 막혀있거나 관리가 아예 안되어 진입이 불가하다면 해가 꼬박 넘어가는 오밤중에 맨 몸으로 뚫어야 할 수도 있다. 시간은 얼마가 걸릴 지, 길의 상태를 알지 못하니 가늠키 어렵다. 결국 지리정보팀장과 어느 정도 진입을 하다 되돌아 오고만다.


일단 오늘은 삼락리 방향으로 철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군청이나 진안고원길 측과 다시 한 번 논의와 확인을 하고 재답사를 해야 할 부분이다. 

<해가 지기전에 가려했지.>

삼락리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한참을 더 능선을 탄 후 본격적으로 내리막을 향한다. 처음에는 경사가 심한 곳은 계단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이후엔 아예 계단이 존재하지 않는 거친 내리막이다. 거진 반은 미끄러지듯이 지그재그로 비탈을 내려간다. 흙과 낙엽을 걷어차면서 내려가노라니 문득 천마지맥 답사 중 고래산에서의 끔찍했던 내리막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덧 해는 완전하게 지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도 노을을 받은 용담호의 수면은 채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오가는 차량의 소리가 희미하게 저 멀리서 들려오니 이런 희망고문도 없음이다.


길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나중에는 방향은 맞으나 길이 아닌 일반 산 비탈과 다름없는 구간도 나타난다.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지리정보팀장도 나도 말이 없다. 몇 번을 넘어질 뻔한 내리막, 사진을 찍어 남길 생각도 못하였다.



길을 걷고 조사하는것은 좋은 길을 찾고 발굴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과 다르게, 정보와 다르게 변한 길을 맞이하거나 이젠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려 "길"이란 주체가 가지는 생명력을 상실한 "흔적"을 만나게도 된다. 


버려지고 잊혀진 길이란 것에는 결국 사람들이 찾지않게 되는 이유가 있을게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길은 온 몸으로 답사자를 밀어내는 느낌을 준다. 거부감인 것이다. 그리고 그 거부감은 보통 "위험"으로 나타나고 지금 우리 둘은 그 격렬한 거부감을 온몸으로 맞고있다.


"이건 못 쓰겠어요."


"네, 이건 자칫 사고납니다."

<장등마을을 지나며. 버스는 17시 전에 끊겼다.>

무덤을 지나 풀 숲을 제치고 드디어 도로를 만난다. 도로변의 한 가운데, 우거진 초목 앞에 서 있는 지장산 등산로 안내판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이 산을 찾는 이는 얼마나 될까?


흙먼지를 털고 주저앉아 잠시 쉰다. 19시 20분에 탈출했다. 아침 08시부터 걸었으니 거진 12시간 살짝 못 걸은 셈이다.


이제 최대 난관이 남았다.


오후 답사를 시작한 감동벼룻길의 초입에 내 차가 있고 또한 원래대로라면 오늘 도착했어야 할 도라마을에 지리정보팀장의 차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중간에 탈출했다. 즉, 도라마을까지 걸어가야 하는 셈이다. 그렇게나 도로를 걷지 않겠다고 산을 탔으면서 다시 도로를 걸어야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거리를 파악해보니 약 3km, 1시간 좀 넘게 걸릴 듯 하다. 이래나 저래나 12시간은 훌쩍 넘겨 13시간을 걷게 될 셈이다. 고갈된 체력도 체력이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것은 오늘 답사에서 지장산 697봉에서부터 몇시간을, 거진 반나절의 시간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네요."


"오늘, 정말 힘든 날입니다."


서로 웃으며 등산스틱을 풀어 줄이고 집어넣는다. 그리고 가로등 조차 드문 그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끝내 오늘 목표치를 확인치 못했다는 아쉬움과 어쨌거나 오늘도 무사히 답사를 완료했다는 뿌듯함이 뒤섞인다. 그렇게 만감이 교차한다.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길 걷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그게 직업이니 행복하시겠다"고. 


분명 행복한 부분도 있다. 없다면 거짓말일게다. 


다만, 일은 일이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길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기록과 기억을 토대로 기사와 답사기 등의 원고를 쓰는 나는 물론이거니와 사전 조사를 통해 예상루트를 산정하고, 직접 걸으며 정확한 gps를 수집하고 또한 각 포인트마다 특이사항이나 지형지물등을 체크하여 남기고 추후에 트랙 편집까지 진행하는 지리정보팀장까지, '걷는 것이 일이 된다'는 말에는 그만큼이나 많은 '걷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도 담겨져 있다.


그 구간 하나하나에도 탈출로, 교통을 확인하고 샛길을 체크하고, 행사의 경우 남은 거리나 앞 뒷날의 일정을 감안하고 거리와 난이도를 재게 된다. 그렇게 버려진 구간도 부지기수요, 거리로만 환산해도 엄청날 것이다. 그렇게 쳐내고 다듬어 남은 구간이 선명하게 우리의 핸드폰에 그려지게 되는 길이다.


그렇게 그 정보를 통해 그 길을 걷게되실 분들은 부디 즐거이, 그 길이 가진 모든 것을 느껴주시길 바란다. 


누군가 '걷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포기하며 조사하고 구체화한 그 길을, 많은 이들이 '걷기의 순수한 즐거움'으로 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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