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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Feb 03. 2022

방심적 미뤄두기

에세이

illust by gosti_k


운동을  간지  달이 넘었다. 매일 운동을 가는  모습에 스스로 취해서 자랑하던 시절도 있으니, 지금의 부끄러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90 이상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고 말했고, 작심삼일도   하면 1년이 된다고 위로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면  됐던  같다.


물론 아예 핑계가 없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이직 후로 내 출근길은 2시간이 걸렸고, 6시 반쯤 칼퇴근을 하더라도 집에 오면 8시 반이 됐다. 그래도 어떻게든 바로 헬스장으로 향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9시 마감에는 약도 없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헬스장에 갈 수는 없었다. 사람의 몸이 참 간사한 게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뛰던 공원길을 안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명제의 '이'는 성립하지 않았다. 헬스장을 안 간다고 공원을 다시 가는 일은 없었다. 중학교 때 배운 명제에서는 '대우'만큼은 참이라는데, 나는 애초에 명제가 참이 아니었나 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몸은 집에 뉘이면서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일단 하지 않던 독서를 시작했고, 친구들의 밀린 안부를 챙기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회 속에서 버둥거리느라 하지 못했던 사회와 친해지기(책 속의 저자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사회가 아닌 집에서 더 잘 되는 일이었다.)에 열중했다. 오랜만의 통화는 즐거웠고 여전히 글은 써내기 힘들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일은 여전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현관 앞에 체중계를 발견했다. 살짝 호흡이 떨리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뭐 좀 찌고 말았겠지.' 생각 속에는 불안이 가득 들어있었다. 조금 더 명확히 표현하기엔 생각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 무게 재는 일을 미뤄두었다. 몇 주간 운동을 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먹기만 했으니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는 설 연휴에 발생했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뵙고자 파주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을 담아 새해 인사를 건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

<그래. 우리 손주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근데 요즘 살이 좀 올랐구나. 보기 좋다~.>


사고였다. 예로부터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할머니가 살쪘다고 말하면 진짜 큰일 난 거라고,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날 체중계에 올라 충격을 미리 받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그간 운동에 습관이 들었다고 방심했던 탓이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빵을 먹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를 벌했다.


며칠 전, 회사에는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유쾌하고 여유로운 말투, 재밌는 프로젝트를 즐겁게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팀장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아무리 내 주관이 세더라도 회사는 대표나 팀장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곤 하니까. 특히 사람이 전부라고 믿는 내게는, 새로운 팀장님은 매우 중요했다. 새로운 팀장님과 면담하고 식사를 한 뒤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 A에게 말했다.


<팀장님 우리가 원하던 방향성에 잘 맞는 분 같아요.>

<광래님, 방심하지 마요. 너무 기대하고 편하게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잖아요.>


에이전시 경험이 있는, 이미 팀장님을 몇 번이나 바꿔본 동료의 말이었다. 평소에도 합리적인 태도와 냉철한 사고방식으로 많은 귀감을 주는 A의 말이었기도 했지만, '방심'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방점이 꽂혔다. 팀장님은 물론 좋은 분이실 테고(실제로 좋은 분이시기도 하다.) 우리의 변화도 감당 가능한 영역일 테며, 조금 힘들더라도 이겨낼 수 있겠지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이 유난히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최근 직업적 불안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을 이유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A는 나를 이해한다며, 우리는 언제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 않냐는 말을 건넸다. 퇴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퇴직하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는 말이었다. 우리의 불안감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는 그의 말에 힘을 얻고 미뤄뒀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방심하지 않도록, 불안해하는 나의 태도를 인정하고 그 불안감을 덜어낼 공부를 하는 것. 그 상황에 조금 더 몸을 던지기로 했다. 매일 구직사이트를 보는 직장인, 매일 강의 계획서를 보는 직장인의 모습이 나는 아니길 바랐는데, 내가 사회초년생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상태여도 매일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전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만큼은 항상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결혼 소식,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동료의 퇴직 등. 모든 일들이 시동을 걸고 예열을 한 뒤에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오븐이나 경운기가 아니었다. 예상하는 일들은 딱히 일어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일들만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고 그런 인생을 즐기기엔 스스로가 너무 지칠 때가 많다. 인생은 파도타기라 재밌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파도타기도 하루 정도나 재밌지요."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만 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다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길어야 한나절, 몇 시간만 지나도 바다에 절여진 몸은 무거운 짐이 된다. 게다가 한 번은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행이었지, 위험한 순간이었다. 바다가 좋다는 이유로 방심한 탓이었다. '방심하지 말라'는 동료의 한 마디가 따뜻하게 느껴진 건 그 때문이겠지. 파도타기가 좋아도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 쥐가 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이 세상에서 작은 진동을 내며 따뜻하게 떨리는 온풍기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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