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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광래 Jun 06. 2021

이 안정을 평소의 상태로

공황과 우울 사이에서 - 3

 2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동아리에 강연을 다녀왔고, 인턴 동기들끼리 처음 회식을 했으며, 면접을 두 번 봤다.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하고 싶던 것들을 했다. 식욕은 여전히 강하지 않지만 의욕적으로 하고 싶던 것들에 몰두했다. 살아지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능동에 있는 것 같다. 의지로 밀어붙이면 후자, 욕구에 따라 끌려간다면 전자인 것이다. 적어도 보름 동안은 삶이라는 리어카를 끌 수 있었다.


 약은 꾸준히 먹었다. 순간적으로 약효가 떨어졌나 싶은 불안감이 오기도 했다. 반면, '이거 완전 플라시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쩡한 적도 많았다. 불안의 형태는 물과 같아서 어떤 용기에든 담기곤 했다. 감정이 커질 때는 그에 맞춰서 불안했고, 덤덤한 하루에는 그에 맞춰서 불안했다. 어쨌든 불안했다. 불안함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불안해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호흡의 존재와 같아서, 인식했기에 신경 쓰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햇살이 참 기분 좋네. 넥타이가 적절히 맞아서 기분 좋은 긴장을 주었다. 반대편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동화 같았다. 저 사람은 사슴 같고, 저 사람은 다람쥐 같네. 웅웅 거리는 엔진 소리마저 박자로 느껴졌다.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처럼 스르륵 잠에 들었다.


 굳이 마중을 나온다는 어머니께 그러시라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정류장에 어머니가 계셨다. 같이 길을 걸었다. 지하 식당가로 가서 돈가스를 먹었다. 어릴 적에 병원을 다녀오면 항상 돈가스를 사 주시곤 하셨다. 그런 특식이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일식 로스가스. 괜히 세트를 시키고 싶었다. 많은 양을 보고 바로 후회했지만, 야무지게 한 입 물었다. 예전처럼 소스가 뿌려져 있는 돈가스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일식 돈가스도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끝내 콜라와 곁들여 나온 냉모밀을 조금 남겼다. 무리해서 먹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일기를 썼다. 임시로 잡은 모텔방이 불편해서 어제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쓰려했다. 그렇지만 남길 수 있는 것은 지금의 기분뿐이었다. 어제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지금의 기분을 남겨 두었다. 조금은 들뜬, 약간은 상기된 행복감을 그렇게 적어 두었다.


 2주 만에 방문한 병원에서는 여전히 친절한 원무과 선생님들과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이제는 상담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 2주간 어떠셨냐는 질문에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괜찮다는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좋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제, 안정기에 들어온 것 같으니 3개월 정도만 더 치료해 보자고 하셨다. 말이 치료지 그냥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지, 현상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의 상태가 오래오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세차게 끄덕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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