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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Oct 25. 2024

세 가지 상실의 연대기

정주리의 <다음 소희>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때때로 속이 뜨끔했다. 그러나 잠깐일 뿐, 이내 이름과 거리를 두었다. 언젠가 캠퍼스에서 누군가 “아웃사이더!”라고 불렀을 때, 나도 모르게 돌아봤던 딱 그 정도의 뜨끔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김소희라는 이름을 마주했을 때 내 이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세상에 김소희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다. 성을 뺀다면 더 많은 소희들이 있고, 학창 시절에는 동명의 친구와 큰 소희, 작은 소희로 불리거나 성을 붙여 김솔로 불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희라는 이름과 가장 거리두기에 능한 사람이 나를 비롯해 소희라 불리는 사람일 것이다.


소희라는 이름보다 나를 멈칫하게 만든 건 소희(김시은)가 일한 통신사 이름이 ‘한국통신’이라고 언급될 때였다. 한국통신은 KT의 전신인 공기업의 실제 이름이다. 역사를 거슬러 가면 한국통신은 태초에 체신부라 불렸던 국가기관이었다. 한국통신의 영문 이름 Korea Telecom의 이니셜 앞머리를 딴 KT로의 명칭 변경은 공기업의 민영화와 맞물린다. 민영화는 곧 수익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 속에 내몰린다는 것이고, 여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노동자다.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저임금 계약직으로 내몰려 손쉽게 해고되거나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변경된 이름은 불합리한 노동 구조 조정을 세계화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받아들이도록 포장한다.


영화가 ‘한국 통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까닭은 픽션에서 대학교 이름을 종종 ‘한국대학교’라고 설정하듯 특정 통신사를 연상시키지 않기 위한 이름일 것이다. 특성화고 실습 학생의 노동과 죽음은 특정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허구의 이름이 실존했던 이름을 복원한다는 점은 내게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우연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 이름은 나와 뗄 수 없다.  


1. 명예 없는 퇴직

나의 아버지는 IMF 시기 구조조정의 여파로 한국통신 명예퇴직 권고 대상자가 되면서 30년 이상 근무했던 회사를 떠났다. 아버지가 퇴직할 당시 나는 중학생, 언니는 고등학생이었다. 두 딸을 대학에 보낼 것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아버지께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온 힘을 다해 말렸지만, 아버지의 결심을 돌리지 못했다. 늘 어머니의 청을 따랐던 아버지가 실행한, 최초이자 마지막 거절이었다.


이진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전봇대, 당신>(2014)을 보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던 속내를 뒤늦게 짐작했다. 체신부 공무원에서 시작해 한국통신 연수원 교수로 근무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감독의 아버지는 IMF 시기 진급에 실패하면서 사측의 퇴직 압박을 받는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그가 마주한 건 시골 작은 마을의 허름한 방 한 칸과 무거운 장비를 이끌고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현장 업무로의 좌천이었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고된 현장 노동을 버틸 수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기관지가 좋지 않아 거의 평생을 가쁜 숨으로 살았다. 퇴직 이후에는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파트 경비로 근무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오래 하진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회사의 압박을 받아들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예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폐 끼치기를 무엇보다 싫어하신 아버지가 회사 안팎에서 대면했을 고통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아버지를 비롯해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자리는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뉴스제작단 이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중의 적>(2003)에 담겨 있다. KT 노동자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과 투쟁이 담긴 영화는 노동 구조의 분화가 투쟁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사측에 대항해 뭉치지만, 서로 다른 노동 조건은 그들을 쉽게 갈라놓는다. 이러한 상황은 114 전화번호 안내 노동자 중 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직 노동자를 배신하고 투쟁에서 이탈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IMF 시기에 태어난 영화 속 소희가 마주한 노동 현실은 비정규직이라는 말조차 무색한 하청의 재하청의 연속된 굴레다. 하청은 곧 사측이 노동자와 직접 부딪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여러 겹의 방어막을 세우는 것이다. 진짜 적은 구조 속으로 사라져 대면하기 어렵고, 대신 사측의 눈치를 보면서 노동자를 압박하는 중간자나 대리자를 증오하게 만드는 것이 이와 같은 구조의 실체다. 이러한 술수는 단지 노동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소수의 주민이 사는 마을에 침투해 송전탑, 원전, 댐, 사드 등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설물 건설을 강행할 때도 이와 비슷한 전략이 작동한다. 공권력은 주민 투표 대상 반경을 넓게 설정한 다음, 영향이 덜한 쪽 주민부터 공략한다. 먼저 찬성할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주민들 사이 반목을 만들며, 피해 주민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고립시킨다. 강제 집행 과정에서 주민이 마주하는 것은 국가의 방패막이가 되어버린 용역과 전경이다. 주민의 비명과 외침은 이 구조의 진짜 기획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2. 이력 없는 노동

소희의 업무 속에는 내가 경험한 크고 작은 노동의 시간이 조각난 채 들어 있다. 나는 한 피자 회사의 주문 전화를 받는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적이 있다. 배달 전용 앱으로 간편하게 주문하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전화 주문량이 상당했다. 목소리를 쓰는 직업을 꿈꾸던 취업준비생이었던 나는 직업 준비와 아예 무관하지 않다고 합리화를 했다. 주문의 복병은 배달 주소를 입력하는 작업이었다. 전화는 전국 팔도에서 걸려오기 때문에 헷갈리기 쉬운 동명의 동 이름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숙지하고, 틈틈이 주소록을 보며 익혀도 실전에서는 어디를 말하는지 단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 내가 여러 번 되물으며 주소를 확인하자, 결국 고객은 “에이 씨, OO동! OO!! OO!!!”이라며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만약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경우에는 아르바이트생의 급여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배상했고, 나 역시 그런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순간 욱하며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소희의 모습 속에도 내가 있다.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동네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시급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로장학생을 제외하고는 첫 번째 아르바이트였다. 사장은 면접 자리에서 자신은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오래 일할 자신은 있었다. 삼 일째 되던 날, 설거지를 마치고 가보겠다는 내게 사장은 “수고했고,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라.”라고 말했다. “왜요?”라고 물으니, “너 하는 게 맘에 안 들어. 내일부터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오기로 했으니까 오늘까지 일한 건 쳐줄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순간 냉정해진 나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빨리 돈이나 주시죠.”라고 말했다. 사장은 나의 반응에 당황한 듯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다가 계산대로 가 돈을 챙기기 시작했다. 돈을 건네면서 사장은 내게 “그런데 너는 배웠다는 애가 말을 왜 그렇게 하니?”라고 쏘았다. 나는 단 한마디로 응수했다. “좀 재수가 없어서요.” 사장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에도 나는 종종 일터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나와 동료에게 무전기나 전화에 대고 상스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상사에게 분노의 맞대응을 한 사례는 내가 이직을 한 역사만큼 쌓였다.  


가장 힘들었던 노동은 나의 4대 보험 가입 역사를 끝장냈다. 글쓰는 직업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상대적으로 편하고 안정적인 대기업 하청 ‘반복’계약직을 관두고 한 인터넷 연예 매체의 기자가 되었다. 메인은 아니지만, 영화 섹션도 있으니 언젠가는 영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움은 수 없이 많았다. 자기 일에 바쁜 무심한 선배들, 여러모로 유능했던 동기와의 노골적인 비교, 기사의 질보다 양을 두고 벌어지는 질타와 그에 비례해 지급되는 인센티브제도, 기사 수를 놓고 다른 기자와 비교하는 호출, 쌓여 가는 부끄러운 쓰레기 기사들과 이를 더 많이 쓰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는 현실, 독자의 항의 전화 혹은 방문, 메인에 걸릴 제목에 대한 압박,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닌 무한 굴레의 TV 프로그램 모니터링. 기사를 쓰면서 졸다 깨기를 반복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타 회사 기자로부터 내가 요즘 두 시간밖에 못 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선배는 내게 다짜고짜 짜증을 내며 “그런 소리 하고 다니면 아무 데도 이직 못해요. 평생 여기에 있을 거예요?”라고 쏘아붙였다. 그 말에는 나에 대한 걱정 따위는 단 1그램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로 인해 자기 회사가 열악하게 비친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거다. 나는 몇몇 후배들과 함께 차장에게 불려가 ‘너희들은 OOO의 지진아’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지나가던 사진기자의 “6개월만 버티면 돼요.”라는 말이 회사에서 내가 들은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물론 6개월을 버텨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다른 선배는 들으라는 듯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왜 좀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나조차 의문이다. 주변에서 모두 말릴 때, 내가 하겠다고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했다. 일을 관두면 신입으로 채용되기 어려운 나이이므로 최소 1년은 채우자는 마음으로 근근이 버텼다. 1년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꾹꾹 누른 마음은 한순간 봉인 해제되면서 나는 나를 죽이는 대신 나의 노동을 죽였다. 가족에게조차 그만두었다고 말하지 못한 채 잠행했던, 내 인생의 흑역사였다.


3. 희망 없는 부활

<다음 소희>의 후기나 리뷰에서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반복된 표현을 보면 ‘그래, 당신은 영화를 보고 남 걱정하듯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별 어려움 없이 살았나 보군.’ 하는 생각이 든다. 해지 방어는 애초에 학생은 물론 인간이 하기에 부적합한 업무지만, 소희는 학생이나 수습이라는 말에 숨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회사는 학생과 수습을 근거로 업무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 학생과 수습이라는 이름이 보호를 위해 작동한 것이 아니라, 불신과 저임금의 논리를 수호하는 데만 쓰인 거다. 그리하여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그 안에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민과 비전 없이 그런 말을 하려거든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정주리 감독이 배우 배두나에 의한 유진을 통해 보여준, 욕심을 부리지 않는 딱 그만큼의 행동이 위안을 준다. 유진은 수사권을 지닌 형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대면한다. “적당히 하십시다. 이제 교육부까지 가시렵니까? 그다음은요?”라는 장학사의 일갈처럼 유진은 교육부까지 가는 데는 실패했다. 바뀐 것은 없고 다음 피해를 막는 것도 역부족이다. 그래도 유진은 자신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최대한 대면한다. 실패가 예견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까지 누군가가 시도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반복해서 걸어가 보는 것, 그러다 보면 이후에 다른 문이 열리리라는 기대와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유진이 관객에게 주는 위안의 실체다.  


유진 캐릭터는 <내가 죽던 날>의 현수(김혜수)와 <언노운 걸>의 제니(아델 에넬)처럼 기본적으로 탐정의 역할을 담당했던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두 영화가 추적하는 자의 시선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간 1인극이었다면, <다음 소희>에서 유진은 소희에 이어 등장해 영화의 절반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김소미 기자는 배두나 배우 인터뷰 기사에서 유진에 관해 ‘되살아난 소희’라 표현했고, 이에 정확히 공감한다. 김소미 기자는 그 이유로 두 캐릭터의 표정, 걸음걸이, 옷차림의 유사성을 지적했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유진의 행동에서 부활을, 아니 부활에의 의지를 느꼈다.  


이를테면 유진이 준희(정회린)의 유튜브 영상 속에서 소희가 다른 테이블의 남자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 장면 이후, 유진이 교감의 망발을 참지 않고 들이받는 장면이 따른다. 유진의 분노는 그전까지 유진이 보여준 무심한 태도와 상반되기에 마치 영상을 통해 소희가 유진에게 옮겨간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뒤에야 누군가의 죽음 이후 감정이 회한과 슬픔만이 아니라, 미래에의 의무와 의지이기도 함을 알았다. 나를 통해 선한 이의 영혼이 부활하기를. 내 몸이 그를 위한 좋은 숙주가 되기를. 그것이 생존 유가족의 삶에서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열사의 이후 삶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유진을 통해 영화는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다음 소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희가 다시 살기로 했을 때, 그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낼 의무가 다음 소희들에게 있다. 소희는 세상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소희를 잃었다. 소희는 지친 가운데서도 목적 없이 춤을 추는 어른들을 지켜보며 무언의 응원을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세상은 딱 그만큼의 온기를 잃었다. <다음 소희>를 본 관객은 소희의 희생을 숙주 삼아 다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저 반복되기만 할 뿐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다음이라는 논리가 얼마나 산적한 문제를 덮어 두게 만드는가. 진정 다음 소희를 위한 일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가 된 무수한 다음들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4. 보이지 않는 선

소희가 해야 했던 일은 해지 요청 고객을 설득해 해지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업무다. 원할 때 가입을 해지할 수 없는 고객처럼, 소희 역시 원할 때 일을 관둘 수 없다. 끊고 싶을 때 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고객과 노동자를 동시에 결박하는 자본의 논리다. 회사에는 어떤 선은 잇고 어떤 것은 끊어야 하는지가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세팅되어 있어 그 안에 영혼을 담을 수 없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선은 끊기지 않아야 한다. 팀장의 죽음에도 직원들은 팀워크를 이유로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를 강요받는다. 소희는 적어도 세팅된 선을 거슬러 저항했다. 너 하나 때문에 다른 동료에게 피해가 된다는 말로 압력을 받기까지 최대한 오래 각서에 서명하기를 지연했다. 매뉴얼대로 해지를 방어하는 대신 고객의 요청대로 해지를 도왔다. 미약하지만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선 중 끊고 싶은 선은 끊기 힘들고, 연결하고 싶은 선은 연결되지 않는다. 다음 소희가 탄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다음 소희가 되어야 할 우리는 각자가 마주한 선을 정비해야 한다. 끊지 못한 선은 무엇이고, 붙잡아야 선은 무엇인가. 의지를 거스른 압박을 받았을 때 당신은 저항할 수 있는가. 그 때문에 당신이 낙오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쓸지라도 여전히 그런가.


* 발표한 곳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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