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오락인가?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일까?
오늘, 해가 뜨긴 했었나?
해가 모습을 감춘 이후에야
하루가 벌써 저물었다는 걸 인지했다.
순간같이 짧은 하루?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이후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은 것이 전부다.
장 자크 에네르/ 오르세 미술관 파리
책을 읽기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도, 날씨의 변화도, 배고픈 것도 잊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경험이 슈테판 볼만이 쓴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2006년도였나?
그때에도 에 책의 제목에 관심이 쏠려 책을 소장했다.
그 당시 재밌게 읽고 책꽂이에 꽂아놓았었는데
오늘 그 책이 나를 유혹해서 다시 꺼내 읽었다.
역시 잘 읽히고 재밌다.
시대의 가치가 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면서 21세기의 문화를 들여다본다.
”인구의 약 10퍼센트 만이 자유민이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도 책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몇 유력한 가문의 구성원으로만 한정되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당시는 문자보다 무력이 더 중요했던 시대다.
그런 사회에서 문자가 지닌 중요성은
오늘날에, 비해 아주 미미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훗날 문자가 곧 권력이 되는 문화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엔 읽고 쓰는 일을 노예가 담당했다.
<중략>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거짓말을 지어내 퍼뜨리는 시인은 사라져야만 할 대상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책을 낭독하는 소리보다는
검투사의 칼 소리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서 더 큰 기쁨을 느꼈다.
지적이고 정적인 활동보다는 행동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보았던 시기였다.
재미있는 것은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은 이유 중 하나가
건강한 로마 청년의 활동력을 좀먹는 교리를 퍼뜨렸다는 것이었다. “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p85
1668~70년, 캔버스에 유채,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소장
위의 그림은 <피터 얀센스 엘링가>가 그린
책을 읽는 여자다.
그 시대의 하인이 문맹이 아니라 글을 읽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주인공이 하인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머리에 쓴 흰색 두건과 닮은 모자와 앞치마를 두른 채
책에 몰입한 모습이 귀부인의 차림과 거리가 멀어서다.
여인의 신발이 바닥에 뒹구는 모습은
그녀가 신발을 잘 벗어놓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소설, 시를 비롯한 상상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형상이 불규칙하게 놓여있는
신기한 보물섬에 당도한 듯,
정신을 빼앗기는 현상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일 수도 있고
상상의 샘물을 퍼올리는 시간일 수도 있기에
그 시대의 남자들은
<여자가 책을 읽는 행위를 위험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기차여행으로 육신이 피곤했으므로
오늘은 움직이지 않고 독서에 하루를 바치기로 작정한 날이니
또다시 텍스트 속으로 여행을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