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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14. 2024

오늘만 청개구리

한가위 연휴가 시작된 첫날, 청개구리가 되기로 했다


한가위 연휴의 시작이다. 


인구의 대이동은 아직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동이 전통적인 차례나 가족 모임이 아닌 

여행이나 레저를 즐기는 문화로 바뀌는 추세라는 뉴스가

나를 부추겨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만나게 하지도 못했고,

위안이 되어 친인척들에게 다정하게 다가서게 하지도 못했다.


청개구리처럼 나는 이 연휴의 시작을

동굴 속에 숨어서 세상을 관망하기로 했다 


<부모님께 내려가는 고속도로라고, 길이 많이 정체된다고,

 전화한 지인이 있었으니,

대행렬의 차 중에 명절로 움직이는 차들도 많을 수 있다>



명절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의 일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단순히 혼자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거리에 나섰을 때도 명절 느낌이 없었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지난해보다 명절 느낌이 덜 드러난다. 


그래서 혼자라는 현실이

슬프게, 혹은 외롭게 인지하지 않는 것일까?

마음만 먹으면 당장 지근거리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가도 되고,

이종사촌들이나 외사촌들과 모여서 

연휴를 즐기거나 할 수도 있는데도 

나는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삶이 주변인들과 다르게 진행된 이후 

나는 어느 틈에 

보편성이라는 단어와 결별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고맙게도?라는 표현이 부적절하겠지만 

현대인들의 삶에서 

명절이라는 단어는 연휴라는 단어로 바꾸었으므로 

명철 분위기에서 소외된다는 느낌이 적어진 영향일 수도 있다. 



혼자로도 명랑할 수 있는 청개구리는 

편의점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명절 도시락을 판매한다니, 

명절 음식이 먹고 싶으면 

편의점 나들이를 하면 될 것이다. 




“불행은 어머니의 어처구니없는 순진함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안 되는 급여를 받아 가며 에덴 시네마의 피아노 앞에 앉아 보낸 세월, 

자신을 완전히 희색 한 그 십 년 동안에 새로운 운명의 공격, 

인간들의 공격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에, 

어머니는 무언가에 맞서 싸우지도 불의를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했다. 

십 년 만에 터널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처음 들어갔을 때와 똑같이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홀로 살아가는, 

악의 기운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실상 항상 둘러싸여 살아온 

식민자의 가혹한 착취에 대해 절망스러울 정도로 무지한 상태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서 발췌



심드렁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잠시

책등에 쓰인 제목들을 읽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 제목들이 연결된 문장처럼 읽혔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바람의 열 두 방향,

농담, 숲지의 숨, 쉼, 밤이 선생이다,

가족, 통제불능, 엘 고어, 우리의 미래>


그 아랫 줄에서는 


<시인의 집, 소리가 들리는 동시집, 흰 꽃을 줍는 시간,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일다,

시인의 자리를 찾아서, 대명사, 야후! 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생각의 기척들 다시 쓰다.>


재밌다. 책등에서 볼 수 있는 활자들이

자극한다.




“그는 무척 영리한 사람이었지만 

원래 영리함은 

나름의 습관화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조건은 

제대로 깨달을 수 없게 만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에서 발췌



오늘 하루만 청개구리가 되기로 했으니

계획을 수정해서 새삼스러운 임무를 수행해야 할 듯하다.


밤이 오기 전에 이수해야 할 목록도 아직 남았고,

평소 등한시 했았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맹렬하게 나를 휘감고 있으니,

책상에서 잠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잠시의 자투리시간에 깃든 재밌는 발상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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