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ㅣ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L'avenir]
만약 신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가장 민주적일 것이다.
이토록 완벽한 정부는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다.
-루소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애쓰지만, 마찬가지로 언제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들이 일어나 그 최선을 최악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악은 정말 가장 나쁜 것일까. 그리고 최선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일까.
완벽하지 않기에 삶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것이 될 수 있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 희망과 절망이 언제나 교차하는 것. 한 해 한 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느끼게 되는 것은 절대 좋은 것도, 절대 나쁜 것도 없다는 사실.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 원제 L'avenir)'
프랑스 파리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50대 여성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몰아치듯 나탈리의 삶을 휘젓는다. 그 변화들로 인해 흔들리고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의 장면들이 그려진다.
나탈리의 일상은 바쁘지만 꽤 만족스럽다. 두 아이는 모두 장성해 독립했다. 남편은 자신과 같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불안증을 앓고 있는 홀어머니가 있다. 철학교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책도 있다. 이런 자신의 가르침 덕분에 잘 되었다며 감사해 하는 애제자도 있다.
때마다 식탁에는 풍성한 꽃다발을 올려둔다. 해마다 한적한 시골 바닷가에 있는 남편의 별장에서 휴가를 즐긴다. 철학교사답게 출근길에는 '급진적인 패배자'라는 제목의 사상서를 읽는다. 학생들과 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분명하게 확립되는 진리가 있는가'에 대해 토의한다. 나이에 비해 몸매는 날렵하고 화려한 패턴의 옷도 잘 소화한다.
다 가진 인생이다. 특별히 아쉬울 것도,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신들이 통치하는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가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듯, 완벽해 보이는 나탈리의 삶에도 그 완벽을 깨트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수업 중 가스 밸브를 열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인근 구급대원들에게서까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라'는 말을 듣는다. 한때 배우였던, 곱디고왔던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게 된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그 묘한 요양원 냄새가 나탈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학생들의 시험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에서는 남편이 느닷없이 외도 사실을 고백한다.
왜 그걸 말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살 순 없었어?
평생 날 사랑할 줄 알았는데…내가 등신이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다는 남편에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한다. 25년을 함께했던 남편은 새로운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며 집을 떠난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자신만만했는데, 상황이 안 좋아지려니 일도 문제가 생긴다. 개정판을 위해 디자인 작업 중이던 그녀의 책은 출판사의 결정으로 더 이상 인쇄를 하지 않게 되었다. 묘하게도 그녀가 아끼는 제자 파비앵의 책은 화제성을 인정받으며 계속 인쇄한다는 소식도 함께 듣는다.
여자가 마흔이 넘으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말까지 하면서도 나탈리는 스스로 태연한 척한다. 파비앙을 만난 자리에서도 "별일 아냐. 삶이 끝난 것도 아닌데 뭘. 지적으로 충만하면 돼"라고 하며 엄마의 상태도, 남편의 외도도 쿨하게 받아넘긴다.
미안하지만,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엄마의 죽음도, 남편의 외도도, 젊은 사람들에게 밀려난 자신의 커리어도 그저 '괜찮다'고 해서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지는 않는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변화 앞에서,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마주할 뿐.
조금씩 새로운 자신이 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정성으로 가꿔온 남편의 시골 바닷가 별장 대신, 철학 하는 친구들과 공동체를 꾸렸다는 파비앵에게로 휴가를 떠난다. 남편과 반평생 지겹도록 들었던 브람스나 슈만의 음악이 아니라, 오래된 포크 가수의 노래도 듣게 된다.
파비앵의 공동체에 도착해 집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가 숲으로 도망가 돌아오지 않자 나탈리는 걱정한다.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녀석이라 얼마 못 버티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데 파비앵이 말해준다.
버틸 거에요. 본능이 있는 걸요.
영화 속 파비앵이 의도한 것은 아니나, 결국 이 한 마디는 도망간 고양이에게, 그리고 나탈리에게 하는 말이 된다. 삶에 대한 본능이 있기에 그 어떤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아내게 되리라는 것.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서른다섯 살의 신예,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작품이다. 나탈리의 인생 속 장면들을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투박하지도 않게 정말 잘 빚어냈다. 장면과 대사, 그 안에서 묻어나는 감정들 하나하나 완벽하다. 마치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나탈리'라는 이름을 가진 50대 여성이 주인공인 인간극장을 보는 듯하다.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내게는 낯선 유럽의 햇살 좋은 어느 도시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나탈리' 그 자체가 되어 분한다.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이 '미래'인데,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한 나탈리를 통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 순간들을 미리 본 것 같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내게 남은 한마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도, 사랑하는 이가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어느새 나의 능력이 오래되어 더는 필요 없는 것이 될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삶은 무수히 다가오는 것들을 마치 일렁이는 물살에 맞춰 파도를 타는 것과 같으니까. 여기에 나탈리와 같이 그녀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철학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터.
마지막으로 영화 속 교실 장면에서 나탈리가 학생들에게 소개한 루소의 책 한 구절을 소개한다. 루소가 쓴 낭만적 연애소설 《신엘로이즈》의 '행복론'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만금
[이미지제공=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