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ㅣ 이퀄스 Equals]
창밖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누군가 투신자살을 한 것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분히 창가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한마디씩 던진다.
불합리한 선택을 했군.
노동력 하나가 또 줄었어.
새로운 대체 인력을 찾아야지.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고 단조로운 억양으로 한마디씩 거들고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순간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의 눈에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하지만 이미 니아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그것을 감추려는 듯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는 니아. 그녀는 감정보균자였다.
사일러스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클래식 음악을 배경 삼아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하고 정해진 흰옷을 입고 출근하고 돌아와 블록 게임을 하고 자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그의 일상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복이 무료하게 느껴지더니 어느새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진 사일러스. 감정을 가진 '결함인'을 색출하고 격리시키는 안전부를 찾아 진단한 결과 사일러스는 SOS(Switched-on-Syndrome, 감정 통제 오류 증상) 1기 판정을 받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라고 판단하는 세상에서 금기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영화 '이퀄스 Equals' (감독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혹은 감정이 사라진 미래사회를 그리는 영화는 이미 여럿 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을 맡았던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감독 커트 위머, 2002)이 떠올랐다.
감정이 배제되어야 하는 미래 사회인 것도 같고 제목마저도 비슷하지만 두 영화는 판이한 길을 걷는다. 이퀄스에서 감정은 질병, 이퀄리브리엄에서 감정은 범죄다. 그리고 이퀄스는 로맨스, 이퀼리브리엄은 액션 스릴러로 장르도 다르다. 또한 이퀄스는 체제 속 두 남녀의 일탈을, 이퀼리브리엄은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인공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이퀄스는 감정이 배제되어야 하는 미래 사회에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그저 두 남녀의 로맨스에 정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잘 통제된 '선진국'답게, 제3의 이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바웃 어 보이(2002)'에서 파란 눈을 말똥거리던 어린이가 훈남으로 성장한 남자주인공과 '트와일라잇'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미모의 여자주인공이 있지만, 이 매력적인 남녀의 사이에 끼어들고자 하는 제삼자는 없다.
게다가 비밀 연애가 더 짜릿한 법이라 하지 않던가. 사일러스는 SOS 1기 판정을 받았고, 니아는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감정 보균자임을 알고 있다. 남녀의 사랑이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회에서 남들에게는 없는 감정을 갖고 남녀가 사랑을 한다. 그것만으로도 밀도 있게 '사랑'에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 영화 속 공간도 장단을 맞춘다. 탐욕, 흥분, 사랑,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사라진 영화 속 공간들은 온통 미니멀리즘이 도배되어 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중성적이면서도 간결한 의상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원했다는 '생산 효율성'이 극대화된 곳으로 느껴졌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효율성도 높여주었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 야하지 않지만 관능적인 화면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세상이다. 감정이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약'을 먹어야 하고, 약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치료 감호소로 넘겨진다. 그곳에서는 자살을 권유받는다. 관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세상에서 감정이 있음을 서로 알게 된 두 남녀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미래의 화장실이 그런 것인지, 감독의 미적 취향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일러스와 니아가 처음 서로를 알아보고 감정을 확인하는 것은 꽤 근사한 화장실이다.
화장실이라고 하지만 변기는 보이지 않고 그저 멋진 조명에 두 사람의 실루엣만이 화면을 가득히 채운다. 난생처음 만지는 듯 떨리는 손으로 상대의 손을, 뺨을, 어깨를 만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섹시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그저 그 떨림과 실루엣뿐인데도 생경한 호기심에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더해진 느낌이 충분히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어린 시절을, 기억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해나간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 데이트도 한다. 둘은 떨어져 다닌다지만 누가 봐도 얼굴에 쓰여있다. 우리는 지금 사랑에 빠져있다고.
인류의 목적은 언제나 우주탐구였다.
8억 마일 거리, 그곳에 답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내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의 미래는 세상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우주에서도,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도.
- 사일러스
감각이 집중된 곳들이 화면 가득 잡히는 섹스신에서 사일러스가 이 영화의 명대사를 남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삶의 의미를, 사일러스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알게 된다.
감정을 갖는 것은 곧 불치병이 된 세상
어째서 사랑이 무려 인류를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이 된 것일까. 아쉽지만 영화에서는 이에 관한 친절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화 속 대사를 통해 과거 인류 대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쟁 이후 감정을 제거하고 지적으로 평준화된 인간(이퀄)들이 살아가는 선진국(감정통제구역)과 감정을 가진 결함인들이 살아가는 반도국으로 공간이 나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감정이 배제된 사회의 독특한 면면도 살펴볼 수 있다. 사랑이 질병이라면 후손은 어떻게 잉태하는가. 선진국에서 가임기의 여성은 배란기가 되면 '의무임신'을 위해 안전부를 찾는다. 그러면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는다. 사일러스의 동료들은 식사 중 의무임신을 한 다른 동료가 낳은 아기가 '결함인'이라고 말하며 이를 '버그(bug)'라고 표현했다.
SOS 검사를 받는 공간의 분위기는 마치 암 병동과 흡사하다. "몇 기에요?"하고 인사를 건네듯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 영화에서 감정을 '암'과 같이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 통제 오류 판정을 받은 이들을 대하는 이퀄들의 태도는 더 하다. 전염이 안 된다고 하지만 컵을 따로 쓰고 업무 공간도 격리되기를 바란다. 당연히 식사도 같이하지 않는다.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볼 줄 아는 눈 필요
뇌과학에서 감정은 포유류의 뇌에서 변연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즐겁거나 유쾌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공포, 분노, 슬픔, 기쁨과 같은 1차적인 감정들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고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정보다. 2차적 감정은 학습을 통해 사물, 사건, 상황에 연결되는 감정들이다. 이는 개인이 가진 기억에 따라 다르게 발달한다.
다시 말해, 뇌의 입장에서 보면 감정은 정보다. 우울함을 유발시킨 기억정보가 작용할 때 뇌는 관련 호르몬을 분비하여 '나는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우울한 것이 아니라, 우울함을 일으키는 정보가 나의 뇌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뇌교육에서 말하는 감정관리법과 일맥상통한다. 뇌교육에서는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라고 정리한다. 즉, 감정 그 자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바라볼 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의식의 힘을 키우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체인지 Change'는 슬픔이나 기쁨 이전에 존재하는 의식으로 '관찰자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저울이 0점에 있을 때 무게를 제대로 잴 수 있듯, 사람 역시 관찰자 의식을 회복할 때 감정에 빠져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퀄스'에서는 두 사람이 가진 사랑이라는 이 감정을 활용해내는 이야기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도망을 갈 뿐.
그런데 우리네 일상에는 도망갈 곳은 없다. 무수한 감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보고 그 여운을 즐긴 뒤, 다시 0점을 찾아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활용할 줄 아는 내가 되길 바라며.
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