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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다 Feb 11. 2018

영화 원더휠, 때가 되면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영화 | 원더휠 Wonder Wheel]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해변 놀이공원. 파스텔톤의 고운 색감이 곳곳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다. 너무 빠르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흥겨운 노랫소리에 적당히 붐비는 사람들. 딱 기분 좋은, 완벽한 데이트에 걸맞는 그런 공간, 1950년대 뉴욕의 ‘코니아일랜드'다. 


영화 제목인 '원더 휠(Wonder Wheel)’은 코니아일랜드의 명물인 초대형 원형관람차 이름이다. 경이롭도록 거대한 바퀴에 주렁주렁 매달린 관람차들이 느긋하게 돌아가며 그 안에 탄 사람들에게 주변 풍경을 보여준다. 관람차에 탄 채로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낮에는 햇살 가득 머금은 놀이공원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밤에는 화려한 색색으로 수놓아진 조명들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그런데 제아무리 관람차 속에서 바라본 세상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 결국 관람차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고 나는 그 관람차에서 내려야 한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예뻐 보이던 것들 사이로 내려오면 보고 싶지 않은 면면들도 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화는 멀리서 보기에는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화려하고 예쁜 놀이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치인 채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평생 무대 위 화려한 주인공을 꿈꾸며 살았지만, 현실은 아들 뒤치다꺼리에 약간의 고마움과 익숙함뿐인 남편과 함께 별 볼일 없이 사는 웨이트리스 지니(케이트 윈슬렛). 마피아의 부인이 되어 화려하지만 아슬아슬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돌연 의절했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캐롤라이나(주노 템플). 작가를 꿈꾸는 해변의 안전요원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이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유명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라고 해서 이럴 것이다 혹은 저럴 것이다 생각을 갖고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 영화였지만 연극을 본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남았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영화의 주 배경을 뉴욕 코니아일랜드 놀이공원으로 한정했다는 점, 실내 장면에서는 보다 극적인 효과가 나도록 갖가지 색의 조명들을 배우들의 감정선에 따라 무척이나 강조하여 사용했다는 점, 무엇보다 이 한 편의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갈 능력 있는 배우(케이트 윈슬렛)를 캐스팅했다는 점에 감탄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모두의 몫으로 남겨두고, 다소 지엽적이었으나 내게는 꽤나 기억에 남은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 | 지니의 아들 리치는 왜 불을 지를까


리치는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놀이공원 안에 있는 영화관에서 오늘까지만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공부가 싫어서, 답답해서 학교를 안 가려고 한다. 무단결석만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녀 지니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아파트 지하실에 불을 지르고, 바닷가 나무들을 모아서 불을 지른다. 비싼 돈을 들여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 곳에서도 분을 못 이겨 쓰레기통에 종이를 넣고 불을 지른다. 

영화는 리치가 불을 지르는 이유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양아버지인 험티의 주머니를 슬쩍해 험티에게 맞은 적이 있지만, 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접점이 약하다. 지니와 관계는 되려 좋아 보인다. 지니는 전리품처럼 모셔둔 옛 연극 소품들을 펼쳐 보이며 리치에게 옛이야기를 하곤 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언제나 신세 한탄으로 끝나기는 한다만... 


찬찬히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리치는 지니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니에게 리치는 자신에게는 로망과 같던 첫 남편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지금 지니가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스트레스도 커진다. 그러면 리치의 위험한 불장난도 심해진다. 지니는 믹키와 외도하며 탈출을 꿈꾸지만, 엄마의 감정 상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리치는 그저 속으로 삭이다가 불을 지르며 숨통을 틔우는 것은 아닐까. 


둘 | 왜 믹키는 지니를 선택하라는 친구의 조언 대신, 캐롤라이나를 선택한 걸까


믹키는 지니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되려 시대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의 치명적이었던 연애사(史)를 떠올리며, 마치 자신도 그 반열에 오른 것 같은 희열마저 느낀다. 그러던 믹키 앞에 젊고 예쁜, 게다가 마피아 남편으로부터 쫓기는 극적인 상황에 놓인 캐롤라이나가 나타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빠져버린 믹키는 친구에게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다. 


조목조목 상황을 따져 본 친구의 조언은 ‘지니’. 그러나 믹키는 지니에게 거리를 두자고 제안한다. 지니는 리치의 심리상담비라고 둘러댈 요량으로 험티의 비상금까지 털어 값비싼 시계까지 선물로 준비했는데, 어느 날 훌쩍 함께 떠나 다시 무대에 오를 기대감에 차올랐는데, 그 순간 지니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종국에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만들고 만다. 

결정적인 순간,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따르는 법. 머리로 생각해서 더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을지라도, 사람은 더 좋아하는 것, 더 끌리는 것을 선택하고 만다. 믹키에게 주어진 두 사람 모두 그리 일반적 혹은 현실적인 조건은 아니나, 어쨌든 믹키는 지니보다 캐롤라이나를 더 사랑한 것이었다.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마였든, 서로 몸을 얼마나 나누었는지 등은 이 선택에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셋 | 케이트 윈슬렛


주인공 지니는 수분기 하나 없이 퍽퍽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평생을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살고자 했으나, 외도로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쫓기듯이 코니아일랜드로 숨어들었다. 놀이공원 식당 웨이트리스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첫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말 안 듣는 아들과 아내를 잃고 딸과도 의절하고 술에 빠진 험티와 재혼해 함께 살고 있다. 


지니는 한 때의 그녀를 빛나게 해주었던 연극 속 소품과 의상들을 집에 모셔두고 있다. 이따금 일상이 목을 죄어올 때면, 그녀는 그 의상들을 꺼내고, 드러머였던 첫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주인공을 꿈꾸며 살았던 지난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의 자신을 위로한다. 

영화 속 지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나는 식당종업원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위안하며 하는 말은 “나는 지금 종업원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 그녀에게 영화같은 남자, 해변의 안전요원 믹키가 등장한다. 지니에게 로망과 같은 무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가 지망생 믹키는 시궁창같은 현실에서 그녀를 탈출시켜줄 동아줄이 된다. 고질병같던 두통도 사라지게 할 만큼, 무채색의 무료한 일상에 색색깔의 조명이 비칠 만큼 그녀를 반짝이게 하는 존재 말이다. 결국에는 그 존재감이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이 되어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되지만. 

영화 원더휠은 케이트 윈슬렛을 중심으로 그녀의 유리같은 감정선과 함께 널을 뛰며 진행된다. 우디 앨런의 영화였기 때문에 특별했다기보다는, 케이트 윈슬렛 덕분에 볼만한 영화가 되었다고 해야 할 만큼, ‘지니’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이 하드캐리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더 잊을 수 없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 남루해진 옛 연극 무대 의상을 차려입고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발코니에 선 지니와 망연자실한 채로 집으로 돌아온 험티.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 대화를 나눈다. 지니는 내일 입을 작업복 빨래를 걱정하고 험티는 낚시를 싫어하는 지니에게 마치 몰랐다는 듯이 또 낚시를 가자고 권한다. 그리고 리치는 다시 불을 지른다. 

지니에게는 믹키가, (풀어쓰지는 않았지만) 험티에게는 딸 캐롤라이나가 원더휠이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관람차같은 존재. 그러나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는 신기루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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