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셋 ㅣ 2015년 9월 3일
조금 슬퍼하며 시작한다.
함께 해온 시간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며,
약간의 울적한 마음으로 일기를 시작한다.
무슨 복을 받은 것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큰 돈을 못 벌어도 그 안에서 혼자 알아서 살아갈 만한 넉넉한 마음을 가진 것도 복이리라.
자식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두 말하지 않고 지켜봐주시는 부모님이 계신 것도 복이다.
그저 내가 지금 옳다 생각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행복한 삶이다.
그렇다 보니 되려 일에 집착할 때가 많았다.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내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안했고, 제안하면 내가 해내려 애썼다.
그러면서 숱한 부딪힘을 만나기도했고, 욕도 먹었다.
그러면서 내 능력의 한계치에 닿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감사했다.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힘든 상황에 놓여도 해결해내려는 내가 고마웠다.
일을 좋아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일 때가 있다.
내가 들인 시간이나 정성과 관계없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만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에 그런 일이 연 이어 두 건이 있었다.
한 번은 빼앗기듯이 그만둬야 했었고,
다른 한 번은 '표면적'으로는 능력 부족이 이유였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나는 시간을 만들어 정성을 들이고 하나하나 쌓아나갔다.
겨우 씨앗에서 움이 트고 싹이 나는 것을 보며 이제 시작이다, 이제 잘 되겠다! 기뻐하고 머지않아
나에게 'STOP'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일은 다른 이에게로 넘겨졌다.
짧은 것은 1년 반, 오래된 것은 3년 가까이 이어온 일이었다.
그렇게 거기까지-
나는 무엇이든 '꾸준히' 하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서 나는 내가 정성을 들이고 꾸준히 해나가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 애썼던 그 시간들이 내게 남아있다.
일은 사라졌지만,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내가 보낸 시간과 그 마음이 내게 남아있으니까.
원한 것이든 아니든, 이제는 보낼 때.
이제는 좀 더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 일을 찾아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 이유, 그 가치를 찾는 것은 내 몫이니까.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내는 것까지가 내 몫이었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음으로 넘어갈 때다.
보내고 난 그 자리,
그 빈 자리.
나는 이제 무엇을 담아볼까.
무엇에 나의 마음을 담아 세상에 내놓아볼까.
다시 시작,
다시 웃음.
언제나 변화를 두려움이 아니라
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