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생겼을까, 강박?

자기 관리 VS 자기 학대

by 염미희

언제부터 강박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쉬는 시간을 견딜 수 없던 순간들이 많았다. 사이클을 타면서도 영어강의를 듣거나 기진맥진 퇴근하고 나서도 사이클에 올라서 운동하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면 나는 그게 성공한 삶이라고 느껴졌다.(그렇지만 운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게 되어 노력 대비 가성비 개똥망이었다고 한다..) 서른몇 평생을 살면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게 내 최고의 무기라고 생각했다. 내 성실함이 내 자아를 조금씩 뜯어먹고 있는 줄 모르고 바쁘게,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들게 지내면 적어도 내가 세워놓았던 척도에 부합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겨왔다. 가끔 그런 기준에 변주가 생길 때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생기거나 신변상 새로운 상황이 부여되었을 때. 나는 직업 특성상 매년 어디로든 옮겨질 수 있는 사람이라, 변주가 생기더라도 귀신같이 적응을 해냈다. 그리고 뭔가를 사부작사부작해야만 했다. 늘 어리석게도 나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했고, 내 스스로가 그걸 좋아하길 바랐다. 퇴근하고 운동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영어공부를 하고. 자기 전에 책을 보며 문장 몇 개 뜯어먹으며, 새벽에 일어나서 사이클을 타거나 걷거나 달리거나 하는 그런 모양을. 다행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행동들을 좋아해 줬다. 하지만 어떤 마음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음이 그 정도였을까. 아니면 다른 것이 안 맞았으나 네 습관이나 일상이 너무 피곤하다는 말로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뭐 그걸 지나간 인연들에게 왜 그런 것까지 이해를 못 해주었는지 묻고 싶지 않다. 그냥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인연의 총합이 거기서 끝냈다고 생각하니까. 어떻게 직장을 다니면서도 그렇게 바지런을 떨고, 지치지도 않고 매일 뽀시락뽀시락 뭔가를 하고, 주말에도 뭔갈 하고 싶어 할 수가 있을까! 근데 그러다 건강을 잃었다.


아무튼 내가 바라는 최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어떤 변주로 인해서 내 리듬이 깨지거나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직업이 그러니 그럴 수도 있지 라며 그것을 합리화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다.(사실은 개 화나지만 불편함으로 순화함)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무슨 맛이 느껴지지 않아도 억지로 냉장고를 파먹으면서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도 하면 무의미해 보이는 하루에 의미가 입혀지는 것 같았다. 아마 뭔갈 계속 이뤄내고 싶고 꽃 피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파도 운동을 해야 하고 뭐라도 해야 했다. 그게 무슨 거지 같은 알고리즘인지 사실 지금도 이해가 되진 않지만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사치 같았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 부모에게서 자립하는 삶을 지향해 오면서 부지런해야 된다는 강박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야근을 해도 내가 더 많이 해서 많은 일을 해야 했고, 평가에서도 밀려서는 안 되고, 내 또래가 가진 평균 이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그게 일이든 능력이든 돈이든 그냥 무엇이든.. 내가 무언가에 밀렸다는 생각이 들면 구렁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내가 걔보다 못한 건 뭔데? 그러면서 혼자서 더 강해져야 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특정인에게 구원을 바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해왔다. 하지만 가끔 견딜 수 없는 힘든 일을 겪으면, 자꾸 제삼자의 구원을 꿈꿨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깊은 구멍의 바닥에 떨어지는 꿈을 꾼다. 누구와의 구원이 얽힌 서사는 내 삶이 불안정할 때, 간헐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런 서사들을 겪었던 순간들은 사실 꿈같다. 내 삶이 탄탄해서 내가 나를 응원할 수 있거나 내가 나의 삶을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위한 구원자가 된다면 누구에게도 구원을 바라지 않게 된다. 단지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 상태로 완벽하다는 걸 알았으면 삶이 조금 편안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뤄놓은 것들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8월을 갈무리했다. 9월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방을 치웠다.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가득 찰 정도로 쓰레기가 많았다. 정신을 놓고 지내면 한없이 바닥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사람이라 가끔 환기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것들과 불필요해진 것들. 더하여, 봉사를 두 가지 신청했다. 작년에 여유가 없어서 못 했는데 올해는 여유가 생겼다. 봉사를 하면서 마음을 좀 비우고 싶다.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면 내 삶에도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유튜브나 보고 영화나 보다가 하루를 때우기에는 뭔가 아쉬워서..(이러면서 마스크걸 다 봤고 되게 찝찝했지만 안재홍이랑 염혜란, 나나의 정신 나간 연기가 되게 기억에 남음..) 신청했던 전화외국어가 마침 9월 1일부터 시작되어서 감사히 시작하고 있다. 근데 슬픈 건 너무 오랜만에 하다 보니 거의 초등학생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진짜 이번에는 이거 수강 끝내고 다시 신청한다. 꼭.. 꾸준히 하면 파병 나갈 수 있겠지.. 교육이고 뭐고 다 관심 없고 나는 진짜 외국으로 나가보고 싶다. 복싱은 꾸준히 하고 있다. 개 세져서 다 패고 다녀야지 라는 마음으로 복싱장에 출근을 하고 어떤 기구가 없어도 손에 감을 붕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 개 세져서 다 두들겨 패고 다녀야지 를 생각하며 미트를 친다. 러닝과 복싱을 올해 잘 배워놓으면 아마 오래오래 써먹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복싱이 좋은 이유는 배고픈 운동이라 좋아한다. 편견일 수 있지만 맞으면서 악으로 깡으로 하는 운동인 것 같아서… 한번 꽂히면 진짜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 등운동도 하고 있다. 서킷프로그램도 매일매일 참여하고 있다. 끝까지 해내는 나를 보면서 진짜 나 멋있다는 생각을 저절로 함.. 다른 사람들이 다 중간에 낙오해도 나는 절대 낙오하지 않는다. 진짜 악으로 깡으로 하는데 코치선생님이 나한테 서킷 하는 거 좋아하세요? 묻는데 주저하지 않고 네!!!! 너무 좋아해요라고 했다. 군에서 배운 것 중에서 고마운 건 진짜 악으로 뭐든 해낸다는 것.. 9년 차가 되고 이제 내게 남은 게 악 밖에 없는 거 같다. 마지막으로.. 겨울이 되기 전에 10km를 뛰어보고 싶다. 근데 웃긴 건 내가 아프고 힘들었어도 난 여전히 쉬는 게 싫다. 아끼던 친구가 나에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난 쉬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쉬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 스타일대로 정하기로 했다. 카페에 나가서 글을 쓰고, (적당히만) 운동도 하는 것이 내게 곧 쉬는 것이라고. H가 말해주길, 무조건 오래오래 푹 자라고 했다. 워치에 알람을 하세요. 그냥 22시가 되면 누우세요. 아무 연락도 받지 마세요. 핸드폰 보지 마세요. 말은 쉬운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적어놨던 목표를 조금씩 수정하면서 빠르진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는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모든 것을 사라지고 잃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 된다. 버벌진트의 완벽한 날을 들으며 오늘 하루 빠르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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