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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13. 2022

우리 동네 음씨

레드제플린Led Zeppelin.

저 사람들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깜짝 놀라던 생각이 난다.

머리를 흔들고 싶은 하드락 음악을 연주하지만 세련된 선율에 연주도 깔끔해서

말끔한 총각들이 얌전히 앉아 노래하는 트윈폴리오정도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노마들,

귀신형용에 지지바들처럼  머리 긴 것도 그렇고 거시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짝 붙는 가죽바지가 충격이었다.

저런 사람들을 우리의 트윈...정도로 생각했던 나도 참.


대학 때 음악 다방 DJ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엔 뮤직비디오가 막 유행을 하던 시기라 디제이 문화가 사라질 무렵이었지만,

캠퍼스가에는 아직 시류를 못 따라가는 음악 다방이 남아 있을 시기였다.


당시 디제이는 두 가지의 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음악과 음향기기에 해박하면서 다방의 매출을 유지할 능력이 되는 1급 디제이를 메인이라 불렀다.

메인 디제이의 월급은 20만원이었다. 메인 디제이는 손님이 많이 몰리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뮤직박스를 운영했다. 우린 그 디제이를 메인님이라 불렀다.

메인 디제이는 자기가 선곡한 음악을 틀고 중간에 시를 낭송하고

가수나 음반에 대한 설명을 하는 형식으로 자신이 맡은 2시간을 이끌어 갔다.


그 메인이 가끔 술병이 나서 빵꾸를 내는 경우 있었다. 그럴 땐 2급 디제이가 그 자리를 메웠다.

2급 디제이는 평소에는 황금시간대가 아닌 시간에야 뮤직박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

말이 운영이지 신청곡 들어오면 LP를 찾아 틀어주다가 전화가 오면

'목동에서 오신 양재기손님, 장미화원에서 즌화 와 있네요. 따뜻~한 대화 되세용' 어쩌고

느끼한 멘트를 하는 일을 맡았다. 난 그 다방에서 먹고 자는 대신 청소를 맡은, 월급 육만원짜리 2급디제이였다.


메인님이 뮤직박스에 들어갈 시간이 되면 난 손걸레로 믹서와 턴테블의 먼지를 싹 닦고

메인님이 즐겨 틀던 엘피들을 죄다 꺼내서 한 곳에 모아놓곤 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같은 연말엔 캐롤 엘피들을 싹 꺼내서 빨아 놓아야 하는데.(음악 다방에서는 엘피를 정기적으로 수돗물 틀어 세탁한다)


다방 주인은 밤 열시면 퇴근 했다.

그러면 다방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연인들을 위해 리처드 클라이더만이나 제임스 라스트 악단처럼 달콤하고 우아한 음악이 나왔다면,

주인 아저씨의 퇴근과 함께 레드제플린, 디퍼플스러운 음악으로 바뀌었다.

시끄러운 분위기에 손님들이 인상을 쓰며 나가버리고 나면

근처 당구장에서 기다리던 메인님의 친구들이 들이닥쳤다. 

그때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소주와 줄담배와 하드락이 밤 늦게까지, 어떤 땐 새벽까지 뒤섞일 때가 많았다.

난 메인님이 시키는대로 위해 술을 사 나르고 오뎅국을 끓였다.

그 다방에서 먹고 자는 처지여서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고역이었다.

내가 자는 방은 주방 옆에 붙은 쪽방이었다.

지하라 환기도 안되는데 여럿이 피워대는 담배연기와 온 몸을 울리는 음악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었다.

가끔 그들이 술 김에 싸우거나 화장실에 토해 놓을 것을 치울 땐 욕이 나왔다.


하루는 메인님이 술 취한 상태에서 소스를 바로 파워앰프에 연결한 적이 있었다.

대형 스피커의 트위터가 고장이 나 버렸다.

주인이 펄펄 뛰었고 메인님은 바로 해고가 되었지만, 며칠 못가 다시 제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가 워낙 뛰어난 디제이였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도 그가 틀면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다.

그가 음악을 틀면 이상하게 다방 분위기가 들떴고 손님들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특히 그가 낭송하던 서정윤의 홀로서기 시리즈는 지금도 내 꿈에 들릴 정도니.


내가 그에게 특히 반한 건 선곡이었다. 불을 뿜어내듯 프로그레시브로 스피커를 후달구다가도

금세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불르스를 이어가기도 하고

디퍼플deep purple의 촤일드 인 타임Child In Time  처럼 처연한 음악을 틀며 킬킬 웃다가도 

레드제플린의 베이비, 암 고나 리브 유 Babe I'm Gonna Leave You  같은 걸 틀어놓고 훌쩍거리던 그.

음악도 기승전결을 이어가며 틀 수 있다는 걸 알려 준 사람.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두 시간이 언제 지나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고로 음악은 그렇게 틀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틀어주는 음악은 시시껄렁한 얘기나 떠들어대는 공중파 FM과는 달랐다.

그러면서도 그가 술을 먹고 겍겍거리면 난 혼자 욕을 하곤 했다.


들리는 말로는 그가 P시의 고아원 출신인데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검정고시로 공부를 해서

서울대 법대에 갔는데 데모하다가 스스로 그만 둔 천재라거나

당시 인기있던 mbc 디제이 박원웅씨의 수제자였으며

그를 버린 아버지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인이지만 돈에 취미가 없어 홀로 나와 음악을 튼다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여학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했을거라고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그런 신비로운 소문을 다 갖다 붙여도 될만큼 멋진 사람이었다.


그가 들려주던 딥퍼플deep purple, 비틀즈beatles, 블랙사바스black sabbath 멤버들의 이야기나

당시 한참 주가가 오르던 헬로윈helloween이나 아이언 메이든같은 그룹이 레드제플린에 비하면 왜 양아치새끼밖에 안되는지들 들을 때나 그가 외우고 있는 팝송가사가 천 곡이 넘는다는 자랑은 신화 그 자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난 그 다방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다방이 폐업을 하면서 엘피들을 싸게 처분한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혹시라도 메인님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이미 메인님은 없었다.

주인 아저씨에 의하면, 그가 하도 술을 처먹고 시끄런 음악을 틀어대서

그러다 스피카 나가면 니 월급으론 택도 안된다고 욕을 해줬더니 시팔! 하면서 뛰쳐나갔는데 

그 다방을 쫓겨나기 전부터 알게모르게 원판 LP들을 골라 빼돌렸으며, 그렇게 빼돌린 판이 천 장이 넘고

잡히기만 하면 경찰에 넘길거라고 벼른다 했다. 난 그때 내가 갖고 싶던 빽판을 몇 장 샀지만 

정말 그 많던 원판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다방의 하드락 원판들에게 주인을 매긴다면 단연 메인님일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다방과 메인님은 잊혀져갔다.

하드락 일색이던 나의 음악 취향 또한 클래식으로 전향되었다.

가끔 중간에 그가 원판 나까마(중간 도매상)가 되어 사람들에게 원판을 들고 나타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음악다방도 없어지고 카페로 바뀌는 세상에 그를 볼 일 있을까 싶어 관심두지 않았다.




**

요즘 나는 그와 직장에서 만나고 있다.

계단과 복도를 지나다가 대걸레를 휘휘 휘젓는 그와 만난다.

사람들이 슬슬 퇴근하고 건물이 어둑하게 비워지기 시작하면 나는 가끔 그를 불러 같이 하드락을 듣는다.

그러다가 배가고파지면 전철역 근처 감자탕 집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나눠피다 헤어진다.

우린 더이상 하드락이며 음악 다방에 대해 얘기 하지 않는다.


그때 그 주인 아저씨는 잘 계시는지, 그가 지금도 레드제플린을 듣냐고 묻고 싶지만

그가 먼저 말을 하지 않으니 선뜻 못 꺼내겠다.

대신 나는 갈수록 말 안듣는 요즘 애들을 욕하고

그는 월급을 제때 안주면서 소개비는 꼭 떼처먹는 용역회사 사장새끼 욕을 한다.

그는 요즘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청소용역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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