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쓰고 싶은 일기가 있다.
어릴 때, 아끼던 공책이 있었다. 청회색 표지에 누리끼리한 종이가 스무 장 정도 묶여 있고 쪽마다 연한 하늘색 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져 있었다. 그걸 비교적 상세하게 기억하는 건 같은 건 누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학교에서 상을 자주 받았는데 부상으로 공책이 몇 권씩 따라오곤 했다. 내게도 나눠주었는데, 사실 난 그걸 쓰고 싶지 않았다. 겉 장에는 찍혀 있는 큼직한 스탬프 때문이었다. '상'이라는 푸르스름한 글씨를 잎사귀가 나란한 월계수 줄기가 둥그렇게 감싸는 그림이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도 누나처럼 상을 받고 싶어 샘이 났지만 내 실력으로는 어려운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다른 공책을 사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뭐든 잘하는 누나가 부러우면서도 샘났지만, 할 수 없었다. 그 공책을 공부시간에 쓰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였을까, 난 주로 일기장으로 썼다. 연필을 바짝 잡고 꼭꼭 눌러쓰면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아서 일부러 일기를 쓸 땐 귀를 책상에 바짝 대고 썼다. 그러면 둔탁한 책상 위에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마찰음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사각사각. 그 소리가 이상하게 좋았다.
기록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기록의 가치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던 건 선생님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매일 일기 검사를 하셨다. 등교하면 우리는 자동으로 선생님 책상에 일기장을 뒤집어 올려놓아야 했다. 쓰지 않거나, 썼더라도 너무 짧으면 손바닥을 맞았다. 맞는 걸 누구보다 무서워해서 어떻게든 일기를 썼다. 문제는 뭘 써야 할지 모를 때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그대로 쓰자니 지루하고 짧게 쓰자니 맞을 것 같고. 그래서 조금씩 안 한 걸 꾸며 쓰기 시작했다. 나중엔 꾸며 쓰는 것도 지루해져서 색다르거나 과감한 내용을 지어냈다. 멀쩡한 동생이 갑자기 백혈병에 걸렸는데 뒷산 동굴에 가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했더니 신령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신비의 명약을 줬다고 쓰거나 여덟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과자 선물세트를 사 가지고 오셨는데 알고 보니 돌아가신 게 아니라 인도에 가서 큰돈을 벌었더라고도 썼다. 당시 내가 읽던 동화 내용과 현실을 섞은 것이었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나를 상정해서 이야기를 지어낼 때, 잠시나마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 무렵 꾸며 쓴 이야기의 절정은 무장공비 이야기다. 어머니가 교회 가시고 나와 동생들만 있었는데 갑자기 무장공비가 들이닥치는 이야기다. 동생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는데 화가 난 공비가 동생을 총으로 쏘려고 하자 내가 무술 고수로 변신해 공비의 총구를 잡고 활극을 벌이는 중에 막냇동생이 이장님 집으로 뛰어가 신고를 했고, 바로 서부영화에 나옴직한 경찰 아저씨가 쌍권총을 들고 와서 '너희들은 포위됐다!'라고 외쳐서 공비들이 항복을 했다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 집은 간첩신고 포상금으로 백만 원을 받게 될 텐데 이번 기회에 엄마한테 물안경을 사달라고 해야겠다는 내용도 있다. 당시에 배웠던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와 명화극장에서 본 서부영화와 섞어서 쓴 것 같은데, 물안경을 사고 싶어 안달하던 여름 어느 날의 일기다.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 쓰던 날이 잊히지 않는 건 긴박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어 스스로 놀랐던 기억 때문이다. 평소엔 겨우 몇 줄 쓰기도 힘들었는데 여러 쪽을 썼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선생님 때문이었다. 일기를 꾸며서 쓴 걸 아시면 손바닥 맞을까 봐 사실처럼 보이게 쓰려니 길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감이 났고,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덕분이었는지 선생님은 아무 말 없으셨고 매도 맞지 않았다. 어떤 날은 밤에 쓸 일기를 낮부터 구상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꽤 긴 일기가 나왔다. 당시에 나는 그레이트 마징가라는 만화영화에 열광하고 있었는데 마징가의 레이저 무기를 좋아해서 일기 속에서는 호랑이든 무장공비든 마음만 먹으면 레이저로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꾸며 쓰는 것도 시시한 생각이 들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거짓말로 지어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꾸며낸 일기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와 현실의 나는 너무 다른 아이였다. 일기에서는 무술의 고수이며 레이저 총을 가지고 신령님도 만나지만, 현실의 나는 누나의 상을 부러워하고 동생들에게 치이는 아이에 불과했다. 어쩌면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활자로 치환되지 않는 것들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은 뭘 했고 멀 먹었는지 같은 것들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기록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는데, 예를 들면 새벽에 마당 끝에 서서 오줌을 누며 올려다본 동쪽 하늘의 샛별이나 지게에 꼴을 한 짐 지고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을 핥던 바람 같은 것들이었다. 그때 난 이런 것들도 문자로 기록될 수 있을 거라고 아예 상상도 못 했다. 그러기에 나의 문장은 빈약했다. 결국 일기에 흥미를 잃어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당시엔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강제로 일기를 써야 했다. 문장력을 키워준다는 명분이었을 것이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 일기를 검사하고 안 쓴 아이의 손바닥을 때리는 게 성실한 교사의 덕목이라고 여겼을까. 그러나 맞지 않기 위해 쓰는 일기가 키워내는 문장력은 얼마나 조악한가. 차라리 회초리로 일기 검사를 할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란 때로 말로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하니 그럴 땐 억지로 기록하려고 애쓰지 말고 대신 가만히 앉아 네 마음을 읽어보라고 말해주었더라면, 그러다 보면 네 마음을 대신할 낱말이 떠오를 거라고, 그런 날은 그 낱말 하나로도 충분히 일기가 된다고 말해주었다면. 난 앙큼한 고양이처럼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뿐 아니라 내 마음을 읽는 취미도 생겼을 텐데.
더 이상 꾸며서 일기를 지어내는 걸 포기하고 예전으로 돌아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는지를 반복해서 기록하는 일은 막막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회초리를 떠올리니 못할 것도 없었다. 중학교에 가고 일기를 쓸 필요가 없어지면서 일기장은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삶이 일기처럼 하루 단위로 결론지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린 날 꼬박꼬박 일기를 써온 일이 고작 사각거리는 소리를 즐기는 일보다 더 나은 것 같지 않아 보여 새삼 다행스러웠다. 비로소 꾸며 쓴 일기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이사 갈 때마다 짐을 줄여 이사해야 했던 우리 집 형편이 아니었어도 내 일기장이 오롯이 남을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일기장을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니셨다. 몇 개 안 되는 상장은 오래도록 보관했으면서 그 많던 일기장은 쉽게 버렸던 건 꾸며 쓴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글쎄. 꾸며 쓰지 않았어도 굳이 일기장을 챙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게 기록이 지니는 힘은 겨우 이러하다. 지금도 가끔 일기를 쓰지만 나중에 다시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게 있어, 나에 의해 기록되는 것들은 건 그저 우습다. 매를 맞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기여서일까, 가필을 많이 해서였을까, 내 일기들은 나더러 여기 네 삶이 있다고 증언하지 못한다. 그저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을 뿐이었으므로.(이 핑계로 내 실존을 기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면책이 되려나?) 언제인가 일기장이 슬슬 없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아쉬워하거나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기억도 없다. 일기는 그저 일기였을 뿐이므로. 그 일기들이 기록한 구체물의 결과가 지금의 나일 텐데도. 하긴, 일기장이 없다고 실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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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일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맞지 않으려고 일기를 쓴 나와 달리 검사도 하지 않는 일기를 쓰는 아이들 때문이다.(개인의 생각과 사상을 검열할 우려가 있으므로 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하지 말도록 권장되고 있다) 가끔 그들에게 일기 쓰는 게 재미있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재미있다고 한다. 검사를 안 하니 안 써도 되는데 아이들은 굳이 일기를 쓸까. 일기를 엿보면 될 것 같다. 아이는 매일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친구들에게 일기를 보여준다. 아이들도 이 아이의 일기를 재미있어하며 은근히 기다린다. 마치 구독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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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를 보여주면서 아이는 스스로도 웃기는지 킥킥거렸다. 잠시 후 일기를 읽은 아이들이 따라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오늘 일기는 또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렇게 웃으시나?"
"우헤헤. 제가 어제 우리 엄마 발을 씻어주려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 엄마가 무좀이 있단 말이에요. 제가 발 씻기다가 우웩! 그랬죠. 그랬더니 엄마가 발로 뻥 찼잖아요, 글쎄. 디지는 줄 알았네. 우헤헤."
어떤 아이가 이렇게 유쾌한 일기를 쓸 수 있을까. 아이의 일기는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공부도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해서 엄마의 걱정거리지만, 우리 반에서 가장 잘 웃는 아이다.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자랄 것 같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즐겁게 일기를 쓰게 만들었을까. 아이는 일기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위해 매일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 온다. 내가 알기로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뻥 찰 사람이 절대 아니다. 아이는 다만 상황을 더 재미있게 묘사하고 싶었나 본데 구독자들의 열광으로 보상받은 듯하다.
교회에서 만난 어떤 오빠에 대해 아이가 느꼈던 감상을 고스란히 담은 일기장도 있다. 그 오빠가 아이의 일기에 꽤 오래 등장하는 걸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작 그 오빠는 아이에게 데면데면해서 애가 타는 모양인데 일기를 쓰면서 아이의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렸을지. 행복감을 느끼려고 일기를 쓴 것 같다.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잠시 부려놓는 용도로 쓰이는 일기장도 있다. 아빠를 좋아하지만 수줍음이 많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인데,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갸륵해서 이 사진을 아빠에게 전송해 드렸더니 보시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바꾸고 싶은 자기 얼굴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일기장도 있다. (일기 해설 : 또래보다 키가 커서 고민인 아이가 작아지고 싶어서 모습을 작게 그렸다는 내용) 마른 정서와 권태가 가득하던 나의 일기와 달리, 아이들의 일기엔 풍부한 감성이 녹아 있다. 손바닥을 맞을까 봐 억지로 이야기를 쥐어짜던 일기와 새 글을 기다리는 구독자를 위해 쓰는 글쓰기는 이렇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