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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Aug 21. 2023

1학년 아이들의 개학날

1학년 아이들이 방학 때 학교 오고 싶었던 이유는?


28일간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얼굴을 안 보다 만나서일까요?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뭔가 쭈뼛쭈뼛 어색합니다. 입학하던 날 느낌도 살짝 나는군요. 먼저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아이들은 원래의 모습 대신 수줍은 표정입니다. 한창 자랄 나이라 그런지 한 달 만에도 얼굴이며 키가 자란 티가 나는 것도 대견합니다. 아이들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다가가더군요. 아기 개미가 더듬이로 상대를 탐색하듯 조심스러운 시간은 잠시, 금세 이야기 꽃을 피우는군요.

난생처음 방학을 맞이한 1학년 아이들. 이들은 방학 동안에 학교에 오고 싶었을까요? 아이들끼리의 대화가 조금 잦아질 무렵, 저도 물어보았습니다.

<방학 중 학교에 오고 싶었나요?>

* 학교에 오고 싶었어요. - 14명
* 안 오고 싶었어요. - 2명
* 오고 싶지는 않고 그냥 생각만 났어요. - 4명

<학교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학교 밥 먹고 싶어서 - 14명
*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서 - 10명
*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 1명. 근데 1명이었는데 아이들이 슬금슬금 손을 들기 시작해서 10명으로 늘어나는군요.

"손 드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네?"

"저는 선생님 조금만 보고 싶어서 손 안 들었는데 한 명 밖에 안 들잖아요. 선생님이 불쌍해서 들어줬죠."

"아, 그랬어? 고마워. 선생님 불쌍할까 봐 손 들어줘서."

개학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책 읽고 싶어요. 더 똑똑해져야 되니깐요."

"아, 그래?"

"(그러자 다른 아이가 그 아이를 타박하며) 야, 책 읽는 거 좋으면 너나 읽어! 그냥 애들이랑 놀고 싶어요. 방학 동안 못 놀았잖아요."

"야, 학교 왔으면 책을 읽어야 똑똑해지지. 넌 그것도 모르냐?"

"야, 나 집에서 책 읽었거든. (나를 보며) 진짜라니깐요. 엄마가 읽으라 그래서 아침에도 읽고 저녁에도 읽었어요. 눈이 빠지도록 읽었다구요!"

"야, 그래도 더 읽어야지. 대학 갈라면. 맞죠, 선생님? 공부 못 하면 대학 떨어지잖아요. 우리 이모네 언니도 그래서 재수하거든요."

"아, 그래?"

"네, 그 언니 대학 가면 우리 엄마가 노트북 사줄 뻔했는데 쯧쯧(혀를 차며) 떨어졌잖아요."

"아이고, 그 언니 속상했겠네."

"그니깐요. 그래서 지금 기숙학원에 갔잖아요. (놀고 싶다는 아이에게) 너도 대학 떨어지고 싶냐? 정신 차려. 으이구."

아직 대학교가 뭔지 잘 모를 나이지만 '떨어졌다'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주눅 들었을까요? 더 이상 논쟁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은 책을 먼저 읽고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놀기로 했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끼어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저 그림 그리는 거 못 해왔어요."

"아, 그랬어?"

"네, 근데 혼나죠?"

"왜 혼나는데?"

"숙제 못 했으니깐요."

"아, 숙제 못 했으면 다음번 방학 때 하면 되니까 걱정 마."

"아, 다행이다! 근데 저 일부러 못 한 거 아니고 노느냐구 못 했어요."

"아, 그래? 뭐 하고 놀았어?"

"물놀이도 하러 가구 닭갈비도 먹고 할머니 집에도 가고."

"와, 좋았겠네."

"네. (팔뚝을 내 보이며) 팔도 까맣게 됐죠? 많이 놀아서 그래요."

"아이고, 방학을 아주 잘 보냈네."

"근데 숙제 못 해서 어떡해요?"

"숙제?"

"숙제 안 해가면 선생님한테 혼나잖아요."

"아, 내가 혼난다 그랬나?"

"(다른 아이가 나서며)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숙제 안 해가면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그래서 어제 숙제하느라 디지는 줄 알았잖아요."

아이고, 개학이 다가오면서 숙제 때문에 마음을 졸인 아이들이 있었나 봅니다.
숙제를 하면 칭찬을 받지만 안 한다고 혼나지는 않으니 건강하게 잘 지내고 개학날 보자고 말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방학 숙제가 처음이라 걱정되었나 봅니다.

부모님의 말도 아이의 불안을 거든 것 같습니다. 특히 선생님한테 혼난다는 말을 아이에게 하는 건 아쉽습니다. 엄마의 의지(아이에게 숙제를 시키려는 마음)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혼내는 선생님'이라는 핑계가 필요했겠지만, 결국 아이는 선생님한테 혼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은 교사와 아이가 그동안 쌓아 온 돈독한 관계를 해칩니다. 이럴 때는 담임을 핑계 댈 게 아니라 부모님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게 좋습니다. 숙제하기 싫은 아이의 마음은 알아주되 시킬 건 시키는 거지요. 예를 들면 이렇게요.

"방학 숙제 하기 싫은 마음은 엄마도 알아. 하지만 숙제해야 해. 지금이라도 어서 숙제를 하렴. 다 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20명의 아이들 모두 건강한 방학을 보내고 반갑게 만나 방학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첫날. 아이들이 이야기 나누는 동안 저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방학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방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말한 내용입니다. 어떠신지요? 제가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알려드리면 간혹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많은 준비와 계획을 했던 체험이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오히려 괴로웠던 기억으로 남기도하고, 반대로 우연히 하게 된 일이 아이에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같은 경험을 해도 아이가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어 하는 것과 어른의 의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교육 경험을 할 때 아이의 흥미와 마음 상태를 살펴서 계획하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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