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Dec 27. 2023

"엄마는 왜 그 아까운 돈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실까?"

아이가 검약을 배우는 순간


알뜰폰(MVNO)을 쓴 지 오래되었다. 알뜰폰은 통신망과 기본 서비스를 임대하므로 가입자만 많이 모은다면 돈이 되는 사업이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회사들은 저마다 프로모션을 내놓는데, 지금 내가 쓰는 요금제는 문자와 통화 무제한에 데이터 15기가짜리다. 그마저도 다 쓰면 속도를 낮춰 무제한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요금은 6,600원이다. 7개월 후에는 2만 원으로 올라간다고 하니 그전에 다른 회사의 비슷한 요금제로 갈아타려고 한다. 이 요금제를 쓰기 전에는 7,700원짜리를 6개월 간 썼다. 만 몇 천 원 아끼겠다고 몇 달마다 회사를 바꿔 가입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굳이 이러는 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인 것 같다. 나는 돈 때문에 고등학교 대신 목욕탕에 일하러 간 적이 있다. 몇 년 전까지 그때 꿈을 꿨다.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자느라 목욕탕 물도 안 받아 놓고, 한증막 열선도 안 켜고, 탈의실 바닥에는 전날 밤 빨아 널은 수건이 그냥 깔려있는 꿈이다. 그때의 나는 절박했나 보다.


얼마 전 5학년 아이들이 핸드폰 요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얼마 내는지 모르는 아이가 대부분이지만, 주로 3,4 만원 대가 많은 것 같았는데 66,000원 낸다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뻥치시네. 애들 요금이 66,000원? 헐."


"나 진짜 66,000원 내. (요금 고지서 문자를 보여주며) 자, 봐."


"야, 그거 사기야. 택배 하는 우리 아빠도 그렇게 안 내는데, 무슨."


아이가 수세에 몰린다고 생각했는지 불쑥 나더러 선생님은 얼마나 내느냐고 화제를 돌렸다. 내가 알뜰폰이며 한 달 6,600원이라고 말하자 다른 아이들은 와우, 역시 우리 쌤! 이러는데 그 아이, 유독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와, 쌤! 완전 짠돌이! 월급도 많이 받을 거면서 뭘 그렇게 아끼고 그러세요."


반가워할 만한 정보라고 생각하고 말해주었는데 의외의 반응이라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 월급 안 많아, 이럴까. 아니면 돈 아끼는 데 월급 많고 적은 게 몬 상관? 이럴까. 어떤 말이든 아이 말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망설이는데 아이가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선생님, 너무 그러지 마시고 팍팍 쓰세요. 쪼잔하게 살지 마시고."


"아니, 뭐... 돈이 남으면 그걸로 다른 걸 살 수도 있잖아. 아낄 수 있다면 안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제 요금도 그렇게 비싼 건 아니에요. 우리 엄마랑 아빠도 그 정도 내는데."


"아, 그래? 66,000원 요금제는 어떻게 하게 됐어?"


"저랑 엄마랑 핸드폰 바꾸러 가서 골랐죠. 제가 인강이랑 유튜브 본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데이터 많은 걸로 해줬을걸요?"


66,000원에는 새 핸드폰 기기값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플래그십 모델이 아니고 출시된 지도 두어 해 지난 기기니까 기기값은 얼마 안 될 텐데. 혹시 데이터를 너무 많이 설정한 건 아닐까.


"혹시 하루에 핸드폰 사용 시간이 얼마나 되니?"


"학원 쉬는 시간에 게임 조금 하고 집에서 인강 보니까... 한 3시간?"


"집엔 와이파이가 있겠고, 게임은 데이터 사용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 같은데. 데이터 얼마나 쓰는지 아니?"


"저야 모르죠."


"데이터 많이 안 쓰면 굳이 무제한 요금제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핸드폰 요금 아껴보고 싶니?"


"(망설이며) 네. 근데 꼭 해야 되는 건 아니긴 해요. 엄마가 6만 원만 안 넘으면 된다 그랬거든요."


"엄마가 알뜰폰에 대해 아시면 요금을 줄일 수 있으실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잘 몰라요."


"선생님이 엄마한테 말씀드려 볼까?"


"(손을 내저으며) 아뇨, 괜찮아요."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냥요. 전 지금이 좋아요. 좀 있으면 약정도 끝나기도 하고요."


"아, 그렇구나."


"만약 바꿨다가 데이터 줄어들면 어떡해요. 지난번 폰은 데이터 안 해줘서 게임도 못했잖아요."


"데이터를 끊는 게 아니라 안 쓰는 양만큼 줄이는 요금제로 바꾸면..."


"(내 말을 막으며) 아, 안 돼요. 전 지금이 딱 좋아요. 선생님은 간섭하지 마세요."


아이들 대부분 핸드폰을 갖고 있지만, 청구서를 문자로 직접 받는 게 아니라면 요금제를 잘 모른다. 그냥 어른들이 사준 대로 쓴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대부분 부모님이 대리점에서 기기와 요금제를 고르신다는데, 대리점은 알뜰폰을 취급하지 않는다. 아이의 폰 사용 내역을 확인해서 데이터를 어느 정도 쓰는지 확인하고 적당한 요금제로 바꾸거나 알뜰폰을 고르는 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쉽지 않다. 핸드폰의 여러 기능을 활용하는 방법이나 요금 체계는 아이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이 스스로 자기에게 요금제를 고르면 되겠는데, 굳이 안 하려는 아이들은 나름의 사정이 있다.


- 우리 엄마가 알뜰폰 알면 제일 싼 요금제 쓰라 그럴 걸요.(부모가 알면 자기에게 손해라는 생각)

- 요금제 바꿔서 돈 아껴도 저 안 줄 걸요.(가족의 이익이 자기 이익과 상관없다는 생각)


어려서 그런지 집안 경제와 자기 이익이 같은 영역 안에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제법 있다. 가정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지만, 자기 이익을 해치는 결정은 피하려는 것이다. 새 실내화를 사고 싶어서 멀쩡한 뒤축을 훼손하거나 가방을 새로 사려고 멜빵을 자르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자신에게 해가 될 줄 알면서도 당장의 쾌락을 위한 선택도 하는데 싫은 메뉴가 나온다고 급식을 안 먹고 숨겨 온 과자를 먹거나 공부가 싫어 교과서를 버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담임처럼 옆에서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다.


부모 처지에서는 아이가 별 말 안 하고 학교 다니면 아무 일 없나 보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의 바람과 전혀 다른 색깔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아이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들이 모여 아이의 성격을 완성한다고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래서 나라도 아이의 생각을 바꿔보고 싶지만 핸드폰 요금제를 골라준 사람이 부모님이고 사용하는 사람은 아이로 나의 조언이 간섭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같은 말을 계속하면 간섭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 다른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만약 2만 원을 아낄 수 있고 그 돈을 엄마와 반 씩 나눈다면 어떨까?"


"무조건 좋죠. 근데 우리 엄마가 만원을 줄지 모르겠어요."


"왜 그러신다고 생각하니?"


"돈이 없으니까요. 어제도 힘들다 그러던데."


"엄마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거 보면 네 기분도 좋진 않을 거 같아."


"아유, 당연하죠."


"이제 네가 왜 요금제를 바꿔야 하는지 알겠지? 너도 엄마도 손해가 아닐 것 같은데? 통신사에 갈 돈 중 만원을 나눠갖는 거니까."


"그니까요. 한 번 말해 볼게요."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는데 그 아이가 내 가방을 덥석 받으며 아부하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어제 엄마랑 얘기가 잘 된 느낌이 드네?"

"네. 쌤이 가입하신 알뜰폰이 어느 회사예요?"

"왜? 너도 가입하게?"

"네, 어제 엄마한테 말했거든요. 2만 원을 아끼면 저 만 원 주라 그랬죠. 근데 엄마가 2만 원 다 준대잖아요."

"아, 그러셨어?"

"네. 그리고 약정 끝나면 선생님처럼 알뜰폰으로 갈 거예요."

"어제는 알뜰폰을 원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던데, 어떻게 생각을 바꾸게 됐는지 말해줄 수 있니?"

"사실은 엄마가 돈을 안 줄 것 같아서 그랬거든요. 근데 2만 원 다 준다 그래서요."

"2만 원 말고 다른 이유는 없니?"

"다른 이유요?"

"엄마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셨다고 했잖아. 내가 너네 엄마라면 2만 원을 선뜻 주시기 힘들 것 같아. 그 돈이면 몇달 먹을 쌀값이거든. 작은 돈이 아닌데?"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나 돈 안 줘도 된다 그랬죠. 근데 준대요."

"엄마는 왜 그 아까운 돈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실까?"

"저 잘 크라 그러겠죠."

"돈 주면 잘 크나? 그냥 말로만 잘 크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돈을 주시잖아."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라고."

"그럼 너는 뭐가 좋을까?"

"(웃으며) 엄청 좋죠. 행복하고."

"맞아. 엄마는 네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셔서 그러셨을 거야. 그럼 너도 엄마에게 갚아야지?"

"뭘요?"

"네가 생각해 내야지. 너네 엄마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어요. 쌤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나라면... 우리 엄마 발가락을 주물러드릴 거 같아. 아, 근데 그러면 눈물이 날 거 같아."

"왜요?"

"내가 어릴 때 엄청 추운 겨울이었는데 엄마는 여름 슬리퍼에 구멍 난 양말을 신으신 걸 봤거든. 돈이 없어 털신이랑 새 양말도 못 사셨나 본 데, 난 엄마가 돈이 그렇게 없는 줄 몰랐어. 그냥 엄마는 발이 안 시리나 보다 그랬지. 근데 어느 날 엄마가 발가락에 약을 바르는 걸 봤어. 그게 뭐냐고 여쭤보니 동상이 걸렸다는 거야."

"헐. 동상? 아니, 양말이랑 털신을 사면 되잖아요. 그럴 돈도 없었어요?"

"잘 모르겠어. 그 정도 돈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돈도 아꼈다가 나에게 필요하면 쓰려고 했던 거 같아."

"그니까 선생님 엄마는 왜 그렇게 사셨냐고요."

"엄마들은 다 그래. 너네 엄마도 지금 그러시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를 쓰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