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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an 04. 2024

자식 키워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아이는 내가 원하는 맞춤형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이곳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 엮은 책 <착한 아이 버리기>가 대만의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대만은 물론 번체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에 유통된다고 합니다. 책 디자인을 새로 해 그런지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제 의도가 얼마나 비슷하게 번역되었을지도 궁금합니다. 대만이라면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이니 공감하는 독자가 계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 우리와 육아 정서가 제법 다른 서구의 학부모라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동일시 정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편입니다. 아이가 번듯하게 자라면 자랑하는 마음이 되고 공부를 못 하거나 언행에 문제가 있으면 수치심을 느끼는 부모가 많은 사회지요. 자식 교육은 오로지 부모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제가 만난 학부모님 또한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래전에 가르친 제자 중에 지금은 감옥에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아이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얼굴이 아직 선명한 건 그 아이 부모님과 상담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편이었는데, 늦게 얻은 외동아이 문제로 상담을 오실 때마다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변에서는 아이가 저렇게 되도록 부모가 뭐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분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훈육을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애쓰시다 실패하는 양육은 있어도, 일부러 나쁜 아이로 키우는 부모는 없습니다.


<금쪽이> 관련 프로그램에는 문제 행동을 하던 아이가 부모와 전문가의 노력에 의해 순화되는 사례가 자주 나옵니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아이 행동 변화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니 그렇게 편집했겠지만, 교사로 살아오면서 부모가 훈육하기 어려운 수준의 아이도 여럿 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처럼 기질적으로 분노 조절이나 공감이 어렵게 타고나는 아이의 경우입니다. 어느 사회나 일정 비율로 존재하지요. 이런 아이를 키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키우는데 아이가 계속 나쁜 행동을 한다면 어디까지 부모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까요?


"그래도 자식은 부모 책임이지요. 부모가 더 신경 써서 키웠으면 그 지경이 되었겠어요? 제가 자식 키워 보니 자식은 부모가 하는 만큼 자라더라고요."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어 집니다.


"당신의 아이에게 감사하셔야겠습니다. 운 좋게도 순한 아이가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주었으니까요."


한국인 출신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다니던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여러 명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뉴스에 대한 댓글은 대부분 부모에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이민 가 먹고 사느라 바빴을 테니 자식이 몰래 총을 사고 범행을 계획하는 것도 몰랐을 거라는 내용이었지요.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회 문화적 원인을 따지기보다 범인과 그 부모의 개인적인 문제로 공격하는 예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청년도, 그 청년을 키운 부모도 희생자라고 여기더군요. 학교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자라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우는 동안 손 내밀어 주지 않은 일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도 보았습니다. 그 뒤로 학교는 주변의 외톨이를 찾아내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범인의 부모를 위로하는 행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자식 키워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지요. 내 아이는 내가 원하는 맞춤형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인 나는 신중한 성격이지만 내 아이는 즉흥적인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는 흥이 넘치는 부모지만 아이는 고지식한 인간으자라기도 하지요. 나는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지만 내 아이는 사사건건 친구들과 갈등을 빚는 성품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낳는 부모나 태어나는 자식 잘못이 아닙니다. 그냥 모든 사람은 자신과 전혀 성향이 다른 아이의 부모 자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아이로 태어나든 잘 자라서 행복하게 살게 키우려 애쓰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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