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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느 Sep 21. 2016

1,

  짧은 시간에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준비할 것은, 바탕체와 줄간격 백팔십. 조건이 맞춰지지 않으면 시작하기 어려운 걸까. 다시, 시작한다. 잘 갖추어졌으므로, 잘 갖추었으므로. 시작한다. 둘둘 말려 있기보다는 꼬여 있음에 가까운 이어폰의 상태.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까만 뚜껑의 통. 아마도 설탕 같다. 아마도 설탕이 들어있겠지 생각한다. 생각. 음악. 연주곡. 피아노. 배경음악. 배경음. 배경으로 깔리는 연주곡. 책상과, 아니 테이블과, 테이블. 책상이거나 테이블은 아닌 테이블에 가까운 상. 나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의자. 왕관과 꽃 문양과 창문의 모양이 등받이에 디자인된, 역시 나무로 된 의자. 그 배경으로 어떤 연주곡이 흘러간다. 그 테이블에 가까운 테이블과 나무로 된 의자 뒤로 피아노음이 흐른다. 때로는 한 손이었다가, 한 손이었다가, 두 손이 만나는. 연주곡. 따라가는 것은 귀인지, 손인지, 책상인지, 테이블에 가까운 테이블인지, 의자인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만났다. 만 오천 원을 주고 여러 종류의 카츠와 우동을 먹었다. 우동은 작았다. 우동 그릇은 작고 양은 적었지만 안에 든 버섯이나 파 같은 부재료는 실했다. 부재료라고 말해도 좋은가. 그리고 페라라는 카페에 왔다. 나는 아직 그 카페에 앉아 있다. 무엇인지 모를 것들을 곁에 둔 채. 무엇인지 모를 것들은 내가 설명할 수 없어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설명하기 싫어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일 수는 없을 텐데.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말장난.


  즐겁지. 즐거우면 됐지. 즐거운 웨딩을 꿈꾼다. 마주한 채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언가 준비하고 있는데, 무얼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말. 웃기려고 하는 말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그것이 스스로에게 진심인지. 뭐 어느 정도는 진심이겠지만, 그저 상황을 넘기려는 말 같기도 하다. 속에서는 진지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이 끓고 있는 것이다. 끓는다지만 잔잔하게. 잔잔한 요동.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 그 안에 무언가 있다.


  그 무언가를 위해 오늘은 뚝섬에 가야지. 포도를 씻어서 통에 담아 왔다. 중간 중간 마시려고 챙긴 물은 아직 다 마시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해져오는 느낌, 초조한 마음이 인다. 초조해서 손의 움직임을 어서 끝내야 할 것 같고 나는 미처 무언가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시작해야 했나. 손가락을 따라가는 사유. 문장의 꼬리를 집요하게 좇는 사유. 그 사유를 따르는 문장. 그것. 필요한 것. 나는 몇 시간이고 앉아 이 짓, 이 행동, 이것, 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몇 시간이고 앉아 이것을 할 수 있다. 해 볼까.


  아니 이게 재밌다니. 아니 이게 재밌다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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