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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Aug 29. 2023

자기부정의 기록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김용익

2023. 8. 24 - 11. 19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나의 작업은 모더니즘과 탈모더니즘의 경계 위에 애매하게 아련히 서있다.
2002. 4. 김용익




1974년 〈평면 오브제〉로 데뷔한 김용익은 1980년대 ‘판지’, ‘조각’ 시리즈 등을 통해 평면, 회화의 모더니즘 개념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후 모더니즘 미술, 개념주의 미술, 민중미술,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며 작업 세계를 펼쳐온 그는 전생에 걸쳐 미학적 태도를 견지하며 삶을 통한 작품을 빚어냈다. 그의 삶의 방식이 ‘미술’로 귀결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김용익이 평생 생산, 수집한 아카이브를 통해 김용익의 예술세계를 재발견하는 기획전으로, 1970년대 작가 노트부터 육필원고, 스크랩 자료, 사진, 이면지 드로잉 일기, 최근의 구상 드로잉까지 총 1,034건의 아카이브를 통해 그의 사유와 실천을 살펴본다.





그의 작업은 ‘자기부정’으로 끝없이 갱신되어 새로움을 얻는다. 초·중기 작업 시기 김용익은 70년대 권력화된 화단과 경직된 사회를 비판하며 자기부정의 제스처를 작업 세계에 끌어들였다. 좋은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평면오브제’시리즈는 작품의 유효성에 대한 자기 검토 끝에 《제1회 청년작가전》(1981)에서 상자에 밀봉됨으로써 종결되었다.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비판하는 이러한 자기부정의 개념은 점차 김용익에게 중요한 작업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는 이후 ‘땡땡이’ 회화를 칸칸이 지워나가거나, 작업의 하나로 지속해온 글쓰기를 지워나가며 자기 작업을 스스로 갱신했다. 그가 지워나간 ‘땡땡이’ 회화 역시 그 자체로 도전적이다. 멀리서 보면 미니멀한 모더니즘 평면 작업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얇은 선, 흐릿한 글씨, 식물을 짓이겨 만든 얼룩 등이 보이면서 완전무결한 추상회화 ‘평면’에 가해진 균열이 드러난다. 작가는 모더니즘이 획득한 이른바 ‘인증된 이미지 권력’에 흠집을 내고자 이러한 작업을 구상했으며 작품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가의 의도가 더욱 완연하게 드러난다. 





가까이… 더 가까이 

김용익의 작업은 멀리서 볼수도 없으면서 동시에 가까이… 더 가까이…에서도 볼수 없다…… 이런 상반되는 표현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뒷걸음질 치다가 다시 가까이…더 가까이…접근한다. 그러나 그 작업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가까이하기의 불가능이면서 동시에 멀리하기의 불가능으로 나타났다-사라진다.

홍명섭, 김용익 《TWO-ONE MAN SHOW》의 카타로그에서 독자가 쓴 에세이.




예술인으로서 그가 일관성 있게 견지해 온 검박(儉朴)한 미학과 태도는 〈삼면화〉로 집대성된다. 유럽의 종교화 양식인 ‘삼면화’에서 착안한 본 작품은 세 개로 구성된 화면 안에 각각 죽은 자를 구원하는 지장보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불교의 지옥도 도상을 담았다. 나무 상자 안에는 1970년대 김용익의 자화상과 풍경화 습작, ‘평면 오브제’ 시리즈부터 최근의 ‘난괘도’ 시리즈까지 자기 작품 혹은 그와 관련된 자료가 들어 있다. 이는 작가가 근래 들어 몰두하고 있는 ‘관’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용익은 근대주의의 꿈과 이상이 실패한 오늘날은 창조로서의 예술이 아닌 편집으로서의 예술만이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작품 또는 버려진 물건을 포장하거나 상자, 즉 ‘관’에 담아 장례를 치렀다. 금색 수의를 입히고 노잣돈까지 넣어 떠나보낸 〈삼면화〉는 그가 초기부터 일관되게 고집해온 자기부정의 정점이다. 기존의 작품을 편집하고 대화하며 중견 미술인으로서의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는 용기는 오늘날에도 김용익을 새롭게 만드는 힘이다.





말년에 접어든 작가는 작업에 관해 고민한 끝에 작업실에 남아 있는 회구(繪具)를 다 소진해 나가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캔버스 화면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나누고 그 위에 여러 형상을 겹쳐 물감을 골고루 사용해버린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 위를 검은 스프레이로 뒤덮은 작업으로 동명의 독일 환경운동 단체의 반달리즘 시위에 반응하여 그들의 퍼포먼스를 재현한 것이다. 김용익은 라스트제너레이션의 시위가 미술에 대해 애정과 염오가 공존하는 자신의 모순된 감정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양가적 태도는 김용익이 실천해온 자기부정과 편집 방식의 기반이 되어왔다.



김용익,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투명 비닐, 스프레이 페인트, 193.9×259.1cm



이번 전시에서는 김용익의 주요 아카이브를 통해 미술 안에서 자기반성과 전복적인 방식을 모색해 온 초·중기의 개념적 접근이 어떻게 사회와 문명이라는 맥락과 닿으며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고 대안적인 방식을 실천하는 후기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그 궤적을 발굴한다. 다층적인 김용익의 예술세계를 살펴보며 오늘날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아카이브를 통해 새로운 해석의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 





글, 사진: 문혜인

자료: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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