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머리숱처럼
산에는 온통 하얀 눈이었다
눈 위에 눈이 세월없이 쌓여갔다
할아버지는 이 풍경을 보며
죽음을 준비했을까
더 이상 인가가 아닌 집에
죽음이 삶처럼 누워있었다
긴 동면
겨울 다음에 다시 겨울이 올까
구르지 않는 자전거 바퀴
하나의 길밖에 없던 마을에서
하나의 길밖에 몰랐을
바스러져 갈 집 한 채
오랜 친구를 잃은 강아지는 캥캥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할아버지,
수평선이 그리워질 땐 어떻게 했어요
죽음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고 싶어요
더 어린 발의 보폭으로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림자 위엔 왜 눈이 쌓이지 않을까
자라지 않게 된 머리카락처럼
눈이 그쳐갔다
나는 죽으면요, 꽃이 될래요
말하는 아이
피워내기 위해 죽어야 했던 어둠 한 송이가
산등성마루에 닿아 부서지기 시작했을 즈음
물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언젠가
할아버지 얼굴처럼 오래된 나무를 생각하며
눈을 차곡히 개어 두고
하나밖에 없는 길을 따라
작은 마을로 걸어가고 싶었다
구불구불 난 길을 펼쳐
생의 길이를 재보고 싶었다
그림자 아래
꽃을 틔워냈을 무덤가에서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