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비친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잔잔했을 거라고. 하지만 생생한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진 할머니는 불쑥불쑥 꿈에 찾아오기 일쑤였다. 사랑했던 이마저 의문 투성이인 뒷모습을 남겼을 때, 유미코는 세상이 바다임을 느꼈다. 몰아치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호수가 아니라, 흔들림 자체로 존재하는 바다. 막막한 질문들을 먹어 삼키는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쳤고, 유미코는 움켜쥐듯 털어놓았다. 정말 모르겠다고. 그가 왜 자살했는지. 왜 철로 위를 걷고 있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할머니가 떠나간 다리 위를 어린 유미코는 다시 찾아갔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밤. 그녀는 다리 위를 달리다가 이내 멈춰 섰다. 할머니가 걸어갔을 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유미코. 그의 삶은 그런 것이다. 할머니가 떠나간 다리를, 이쿠오가 멀어진 기찻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멈춰있는 것. 그러다 언젠가 그만의 마지막 길을 걸어가는 것. 누군가의 장례 행렬을 뒤따라가며 그는 그 길을 상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유미코가 이쿠오의 공장에 찾아갔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 영화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유일한 숏이 그곳에 있다. 카메라는 유미코의 시선을 입고,이쿠오를 본다. 이때 유미코를 바라보던 이쿠오의 이질적인 표정. 옅은 미소를 띠던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훔친 자전거에 초록 페인트 칠을 하면서 이쿠오는 새로 들어온 거래처 직원에 대해 말했었다. 스모 선수를 하다가 서른도 넘어 새파랗게 어린놈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아직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고. 그 상투를 보며 우울해졌다는 이쿠오는 어쩌면 스모 선수의 꿈을 아직 잊지 못한 직원의 인생에 공감했을까. 그러나 몇 가지 짐작은 모래처럼 무너진다. 공장에서 짓고 있던 이쿠오의 표정은 애써 그 답을 찾지 말라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유미코가 뒤따라갔던 긴 장례 행렬 중에도 인물들은 지평선을 넘어서지 못한다. 바다가 하늘과 만나는 그 지점 바로 아래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아무리 하늘을 비춘다고 해도 바다는 언제나 하늘보다 짙다. 유미코의 세상은 언제나 파도치고, 어둡다. 너무나 깜깜한 세상이기에 누군가는 모든 걸 밝혀줄 환상의 빛을 따라가는 걸까. 누군가에겐 그냥 태어났듯 그냥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일까.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하나하나 만들며 걸어가는 것도 삶일까. 다만 유미코에게 남은 생채기가 아프다. 토메노와 남편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그의 그림자가 질기다. 아이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토메노의 말. 하지만 저 아이에게도 언젠가 그만의 아픔이 생겨날 것이다. 삶은 감내하는 것이고, 그게 싫다면 삶은 죽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뿐일까. 나는 정말 사람을,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불가해함을 잠잠히 보여주는 이 영화에 마음이 가나보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