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니카무라 유코)은 윤희(김희애)에게 이따금 편지를 쓴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 윤희에게 편지를 부칠 수는 없어서 언제나 처음 쓰는 것처럼 편지를 쓰게 된다고. 그때 <윤희에게>가 꼭 타임루프물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쥰이 과거부터 써냈던 수없이 많은 편지의 버전. 그러나 매 편지는 초고가 되어, 마치 루프물 주인공이 매번 처하는 똑같은 상황처럼 기로에 선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항상 미션은 싱겁게 끝이 났을 테다. 그러다 처음 마사코(키노 하나)에 의해 쥰의 편지가 부쳐지고, 그리하여 드디어 똑같은 루프를 벗어나 새로운 버전을 맞는 이야기. <윤희에게>는 쥰의 편지를 윤희가 받는,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이 만나는 것까지 성공하는 버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그렇다면 상상하게 된다. 쥰의 편지가 조금 더 이르게 부쳐졌다면 이야기는 다른 버전으로 존재할 수도 있었을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지는 않아도 되었을까. 그러나 다른 형태의 만남을 향한 상상이 의미가 없어지는 까닭은, 하나의 만남은 오직 그 만남으로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시간이 지났고. 너를 만났고. 그것만으로 가장 충분해지는 만남 앞에서는, 두 사람이 맞이했던 삶의 새로운 국면이나 마사코와 새봄(김소혜)의 도움 같은 필연적인 우연들까지 전부 다행스럽게 녹아내린다. 윤희와 쥰이, 쥰과 윤희가 만났다. 오직 그 사실만이 중요해지는 시계탑 앞 순간은 그래서 아주 아름답다.
2.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다는 윤희는 자기 인생에서 사랑을 지워버린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네들이 바라는 대로 살아주는 대신, 당신들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한 모습을 보아선 안 된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자기 인생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쥰을 떠난 선택이 무의미해졌을 테니까.
그러나 그 화살은 마지막으로 가족과 사회를 거쳐 윤희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 윤희를 향한 구조적 차별은 그것이 그가 스스로를 불행 안에 가두게 만들 때 가장 가혹해진다. 자기 자신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살아온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버린 얼굴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영화를 보며 그게 참 어려웠다. 윤희는 쥰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므로, 그의 삶 안에서는 그리움마저 죄책감의 질료가 되었겠지. 그러니 윤희는 쥰과 달리 편지마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움을 말하는 편지란, 윤희에게는 오직 답신으로만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
출근길에 오르지 않은 윤희가 기찻길 옆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이 돌아봄의 움직임은 돌이켜 보면 이후 영화를 내내 지탱하고 있었다. 그때 윤희가 돌아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곧이어 쥰의 음성이 흐른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앞서 마사코와 새봄은 윤희와 쥰의 재회를 저들도 모르는 사이 공모해버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또한 쥰이 주소까지 꼼꼼히 적어둔 편지를 썼고, 윤희가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어진 때가 왔기 때문에. 오타루로 떠난 여행은 그 자체로 윤희의 답신이기도 하다. 그리움을 그리움이라 정확히 말하기 위해 떠나야 했던 길목. 영화 내내 점점 차오르던 오타루의 달은, 두 사람이 재회하던 밤 마침내 가장 둥글게 뜬다.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마침내'라는 부사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순간이 있을까. 이제 윤희는 다음 문장을 써낼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면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면서.
<윤희에게>는 그렇게 윤희의 편지로 비로소 완성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영화다. 편지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편지는 언제나 받는 사람을 염두한 채 쓰이는 글이지만, 그것은 아주 쉽게 내 가장 내밀한 기록이 되어버린다. 편지에서 마음을 감추는 일은 그래서 아주 어렵다. 결국 편지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적어 내릴 수 없는 쓰기의 과정. 그래서 윤희의 편지는 윤희가 기찻길에서 돌아본 그것, 곧 그가 오랫동안 참으며 살아온 인생의 긴 시간을 아우른다. 그러한 돌아보기의 끝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앞을 향하는 다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당위적인 연결이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한 줄의 진심은 그러므로 가장 마지막에 적힐 수밖에.
3.
쥰의 편지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하게 된다. 영화 초반 새봄은 쥰의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엿본 새봄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사진첩을 찾아보고 삼촌과 아빠에게 엄마에 관해 물어본다. <윤희에게>는 이렇게 쥰의 편지를 거친 새봄이 윤희를 궁금해하며 비롯되는 영화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쌓아두며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걸 알게 된 새봄은 윤희를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모종의 서운함도 느낀다. 그래도 윤희의 과거로부터 전해온 편지를 몰래 읽으며, 새봄은 윤희에게 현재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경수(성유빈)까지 동원해 빨빨거리며 오타루를 헤집고 다니던 새봄의 당차고 귀여운 다정함. 그게 오래 머뭇거리던 윤희와 쥰 사이의 행간을 급격히 좁혀낸다는 사실이 어쩐지 아주 소중하고 놀라운 선물 같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새봄은 젊은 윤희의 성격을 닮은 아이. 윤희 같은 아이니까. (영화에서는 편집되었지만 시나리오에는 남아있는 쥰의 대사가 있다. 새봄에 관한 말이다. "지 엄마 어렸을 때 닮았으면 예쁘겠지.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겠지." 쥰과 만나던 때의 윤희, 그러니까 본래의 윤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명하게 나타내 주는 대사다.)
쥰의 편지란 어찌됐든, 그걸 읽는 사람은 누구든 이들의 예전 역사를 들춰보고 싶게 만드는 이상하고 아련한 물질. 편지는 마음을 가장 온전하게 옮겨내는 형태의 쓰기가 아닐까 쥰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영화에서 쥰이 편지를 읽는 음성은 그의 일상과 함께 흐른다. 쥰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는 꼭 편지지 위에 적힌 글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 앞에서, 안아달라는 것과 안아주는 것이 동의어가 되는 포옹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비밀을 다시 한번 지켜내기로 결심하면서, 일상의 구두점마다 달을 올려다보고 싶은 그 모든 마음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였을 것이다. "평생 잊지 않은 셈이 되겠네". 마사코 고모의 말이 정말 그 말 그대로 성립되어 가는 순간들.
영화를 보다 작게 알아챘다. 새봄이 윤희의 사진첩에서 몰래 빼갔던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쥰 역시 간직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보니 그 사진은 윤희가 찍어주었던 사진. 그러면서 쥰은 편지에 썼다. "너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어." 사진 속 쥰은, 쥰이 생각하는 가장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쥰이 윤희에게 썼던 모든 편지는 결국 그 사진에 대한 답신은 아니었을까. 20년 전에 윤희가 찍어준 사진은 이들 사이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적혔던 최초의 편지. 두 사람 모두 정성껏 간직하고 있던. 윤희가 다시 쥰을 만난다면 그는 다시 찍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잡지 않았던 카메라를 손에 들고 새봄과 경수를 찍어주던 윤희의 모습이 참 좋았다. 쥰을 찍어주던 윤희는, 카메라 앞에 섰던 쥰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가장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들의 편지는 이미 그때부터 서로에게 열렬히 발신되고 있었다. 영화 이후의 시간을 살며 그들은 앞으로 어떤 편지를 주고 받게 될까.
(추신)
영화 초반 새봄이 하고 있던 초록색 체크 목도리를 오타루에 가는 기차에서부터는 윤희가 하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같은 목도리를 쓴다는 건 엄청 비밀스럽게 따뜻한 일 같다. <윤희에게>는 그런 영화다. (20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