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둘둘하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G Feb 13. 2022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4월의 주제 [빛].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올해 1월부터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읽고 있다. 한 달이면 여덟 권이고, 벌써 올해도 4개월이 지났으니 스물네 권 정도 된다. 고른 책들은 대개 좋았다. 신기했다. 영화는 다 보고 나서 재미없다고 생각한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는 걸로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종류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영화나 책을 보고 별점을 남긴다. 최악인 영화를 만났을 때 1, 2점 별점을 쉽게 준다. 책은 다르다. 똑같이 재미없어도 어쩐지 1, 2점을 주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주저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영화 별점을 남길 때는 배우가 어땠고, 그 장면 연출이 어땠으며, 이때 음악이 정말 기가 막히게 사용됐고 이런 것 등을 떠올리며 별점을 덧셈 뺄셈 한다. 반면 책의 별점을 남길 때는 저자는 왜 이런 구성을 만들었을까, 이렇게나 글로 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비록 재미없었지만 이 저자는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로 무엇을 얻었을까. 그럼 됐지 뭘. 생각한다.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생각이 녹아있는 반면, 책은 대개 한 두 명이 쓴다. 그래서 좀 과하게 이야기하면 저자 인생에 별점을 매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점을 남기기 썩 내키지 않다.


올해 이런 이유로 평점을 주는 게 의미 없게 느껴졌던 책들을 떠올려 본다. 다행히 전부 재밌어서 4, 5점의 높은 별점을 주긴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 안에만 담아두기에는 흘러넘쳐 글로 남길 수밖에 없던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자신의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보그가 되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청탁해 매일 쓴 글을 모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 좋아하는 일에 신나게 기꺼이 인생을 바친 과정을 담은 <케이팝 시대를 항해하는 콘서트 연출기> 같은 책들이 그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각각의 아주 개인적인 마음을 담은 책은 모두 새로운 이야기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위에 나열한 책들이 그랬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앞서 열거한 책 같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던 한 영화감독이 바닷속 세계에서 만난 어떤 문어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다. 그는 그 문어를 만나기 위해 매일같이 바다에 들어간다. 그의 일상은 마치 최애 아이돌의 직캠을 찍는 '홈마'와 비슷해 보인다. 최애의 모습은 하루하루 다른데 매일 봐야지. 그 심정 십분 이해 간다. 동굴 속에서 종이 다른 그를 며칠 간 경계하던 문어가 그에게 손(혹은 팔)을 처음 내밀 때, 자신을 한 편으로 생각하고 먹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는 문어와 교감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중요치 않다. 진실이라 믿음으로써 문어를 사랑한 영화감독 아저씨의 세계는 훨씬 넓어졌으니까 말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덕후의 사랑은 참으로 신비로워 애정 하는 대상의 세계까지 끌어안고야 만다. 그는 각종 과학 연구 자료를 공부하며 문어가 고지능 동물이라는 근거를 찾아 문어와 자신 사이에 벌어진 찰나의 교감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그의 행동 패턴을 일일이 분석해 대상에 대해 모조리 알고자 한다. 하나의 문어를 이해하고자 시작했던 일인데 어쩌다 보니 문어가 사는 서식처, 바다 생태계 그 자체까지 관심을 두게 된다. 문어를 너무 사랑해 바다 세계까지 품은 주인공은 정작 문어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문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언뜻 이러한 행동들은 그 대상에만 몰입해 자신을 지우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오히려 그는 다른 세계를 품음으로써 자신의 세계 역시 품을 방법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제목 그대로다. 그는 이제 최소 둘 이상의 세계를 품게 되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다.


어둠뿐인 것 같았던 인생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것들을 담은 모든 이야기는 그래서 경이롭다. 내가 '빛'을 발견했듯이, 내 이야기를 본 남들도 '빛'을 발견했으면 하는 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따뜻하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에는 별점의 덧셈 뺄셈이 의미가 없다. 아마 만든 이 자체도 남의 평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우리는 빛을 주제로 어떤 작품을 정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내가 고른 작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봤지만 이렇다 할 인생 영화, 책이 없었는데 올 한 해,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만났기에 그 이유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빛을 많이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글을 잘 못 써도 구성이 다소 엉성해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이견본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