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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Oct 12. 2021

방탄소년단 <BE> 앨범 리뷰

보이는 것들을 덜어내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 채운

‘BE’. 홀로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단어와 함께 있을 때 뜻도, 보이는 모양새도 다양하게 변형 가능한 단어다. 방탄소년단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하기에 이만한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 제목만큼 앨범 패키지 디자인도 음악을 구성하는 사운드도 간결하다. 심미적, 퍼포먼스 적으로 진화와 발전뿐인 동시대 아이돌의 특징도, 어떤 한 구간을 무한 흥얼거리게 하는 리듬들도 걷어냈다. 마치 모래성을 쌓은 뒤 한 움큼씩 걷어내는 게임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운데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한 깃발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깃발은 ‘아미’의 심장에 아주 단단히 꽂혀 있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과거에 이미 지금의 케이팝 아이돌 팬덤의 설명할 길 없는 사랑의 형태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절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었다. ‘푼크툼’.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의도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스투디움’ 개념과 반대이다. 아이돌 팬덤이 다른 장르의 팬덤과 달리 재미있는 점은 만든 이의 의도를 파악해 해석하기보다는 대상이 나한테 꽂히는 그 순간의 ‘나’에 몰입한다는 점이다. 무대 위 단 1초든, 친근하게 보여주는 일상의 1초든 그 ‘찌름’ 당한 순간들이 모여 팬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입덕의 순간이 되고, 탈덕하지 않는 힘이 된다.


많은 아이돌 팬들은 무대 위 그 자체의 모습뿐만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일상이나 감정에 공감하며 ‘푼크툼’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외로 아이돌 가수가 부르는 ‘노래 가사’에서 ‘푼크툼’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방탄소년단은 이 부분을 해냈다. 팬데믹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직접적으로 닿을 수 없는 지금,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고 <BE> 같은 앨범을 만들수 있는 힘은 방탄소년단 가사가 지닌 ‘푼크툼’에 있다. 그동안의 앨범에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춤, 노래, 비주얼, 컨셉 등 보이는 것들을 덜어내자 가사가 지닌 힘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BE 앨범 표지

방탄소년단은 <BE> 앨범의 첫 트랙 ‘Life Goes On’에서 ‘이 음악을 빌려 너에게 나 전할게’라며 운을 뗀다. 이어지는 곡들에는 화자와 청자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을법한 요즘의 경험과 일상의 순간을 담는다. ‘나의 꿈을 담기에’ 너무 작지만 ‘기쁨도 슬픔도 어떤 감정도 그저 받아주’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지만 안아주는’ 좁은 방 안 같은 답답한 현재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안아보자고 말하며(‘내 방을 여행하는 법’),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시간을 가지며 ‘잠시’ 버티자고 한다(‘잠시’). 그 버티는 방식은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일 테다. 방탄소년단은 그 방식을 ‘BE’ 앨범과 이후 사운드 클라우드로 공개한 개인 곡들에 담았다. 계획을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각'과 ‘겁’만 커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무력감이 쌓이는 경험(‘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심연 속에 잠시 ‘잠식’되어 ‘우울’과 ‘불안’을 마주한 뒤 일단 잠에 들고 다음 날을 살자(‘Blue & Grey’, ‘Abyss’)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난 주문을 걸어’라며 애써 낙관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굳게’ 다지며 버티기도(‘Stay’) 한다. 그냥 ‘두 발을 구르’기만 하면 되는 쉽고 확실한 행복의 순간(‘Bicycle’)을 만들어 위로받는다.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수록된 모든 노래에 여러 선택지를 제시한다. 듣는 이들 각자에게 맞는 해결법과 버팀목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Dynamite’의 성공은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채워져 만들어 낸 가장 잘 ‘보이는' 결론 같은 곡이다.


<BE> 앨범 속 가사의 말하기 방식은 이미 방탄소년단이 꾸준히 해 왔던 것들이다. 방탄소년단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각종 인터뷰를 통해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밝혀왔다. 이를 그들의 본업인 ‘음악’과 ‘가사’에 녹여 표현하고 행동하며 실현했다는 점이 이 시대에 방탄소년단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BE> 앨범 이전에 이미 ‘LOVE YOURSELF’, ‘MAP OF THE SOUL’ 연작 앨범을 공유하고 투어를 돌면서 가사가 지닌 ‘찌름’, ‘푼크툼’이 지닌 힘을 온몸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 아티스트가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Love Myself’),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Persona’) 그림자를 들여다보며(’Shadow’) 진정한 나(’Ego’)를 찾길 바란다고 말한다. 방탄소년단 가사 속에는 유독 ‘너’, ‘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하며 너의 이야기를 묻는다. 그들은 이렇게 계속 ‘이 음악을 빌려 너에게 나를 전’할 테다. 그 진심이 전해지는 한 모래성 위에 꽂혀있는 깃발은 더욱더 단단해지기만 할 뿐이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것 같은 앨범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늘 해왔던 것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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