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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10. 2022

03. 또라이의 이름

‘덕업 일치’ 꿈꾸던 직장인의 현실 직시 에세이




이직을 결정하는 데에는 커리어만큼 중요하게 고려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직장생활을 N년 정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한 명쯤은 있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퇴사만 하면 진짜 두 번 다신 보기 싫다. 여기가 회사만 아니면 진짜 한 대 쳤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사람. 아니 이런 경우는 ‘한 명쯤은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보다 지금까지 한 명만 겪었다면 럭키한 편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맞다.






나는 첫 직장에서부터 그런 사람을 경험했다. 이건 누군가가 읽을 글이니 그 사람의 인성이 어땠는지, 어떤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내가 인간의 존재 이유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는지 가타부타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금쯤 모두 각자의 머릿속에 엇비슷한 사람이 적어도 한 명씩은 떠오를 테고, 그런 사람들이 어떤 강도의 스트레스와 어떤 감정을 야기하는지는 이미 겪어 봤을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오죽하면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요상한 말까지 있을까.


이런 존재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는 데에 있다. 경험한 바로는 이건 단순히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말거나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왜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지?'

‘이런 문제를 겪으면서도 여길 떠나지 못하는 나는 사실 자신이 없는 거 아닐까?’


어처구니없게도 또라이를 인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화살표를 스스로에게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더 좀 먹기 전에 결국 퇴사를 택했고 이 무렵 깨달은 건 단 한 가지다. 다른 곳도 다 똑같다는 말로, 어딜 가나 또라이는 있다는 말로 애써 합리화하며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


이후 나는 온전히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는 지인들에게는 늘 똑같은 조언을 한다. 버티는 게 최선은 아니라고, 가장 좋은 해결책은 가능하면 빨리 탈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탈출을 해보니 또 우습다. 한창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에는 꿈에도 나왔던 그 또라이의 이름이 지금은 한 글자를 빼놓고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한 글자도 확실치는 않다. 나를 적당히 괴롭게 한 사람도 아니고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게 무서워 사무실 주위만 빙빙 돌게 만들었던 그 또라이의 이름이 말이다.








내가 유달리 무던해 미치도록 싫었던 사람의 이름도 기어이 잘 잊어버리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런 경험을 나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전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지금은 친구가 되어 버린 이들이 있다. 우리는 여느 직장인이 하듯 매일 출근과 동시에 오늘도 생존하여 출근했음을 알리는 매우 관습적인 톡을 주고받는데 그 단톡방에서 재미있는 얘기가 나왔다.


한 직장 같은 팀에서 고통을 분담하던 돈독한 인연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따금씩 그곳에서 경험했던 매우 안 좋았던 추억들을 굳이, 종종 다시 꺼내 회상하곤 하는데 그날 화두였던 어떤 직원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근데 진짜. 그 사람 이름 뭐지?'


평소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편인 내가 물었다.


'그러게, 기억이 안 나네.'


버금가게 기억력이 좋은 친구가 답했다.


‘거기서 일할 때 진짜 이상한 사람도 많았고 특이한 사람도 많았는데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 안 난다.'


누구보다도 사람 때문에 화딱지 나는 일이 빈번했던 마지막 친구가 대답했다.


어쩐지 마음이 허했다.


직장생활 7년 차.


꼭 이런 경험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에게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 됐다. 과거엔 또라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으면서 스트레스 받으며  또 기어코 견뎌내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눈을 살짝 흐리게 뜨고 짐짓 못 본 척, 못 들은 척을 하는 뻔뻔한 기술을 시전하고 있다. 그러다 흐린 눈을 뜨고 본 기준에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선을 상대가 넘는다면 그냥 한번 되새겨 본다.



저 사람... 어차피 나중엔
이름도 기억 안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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