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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 Mar 31. 2019

2. 전에 못 본 눈물 버튼

오지은, 서울살이는(2013.05.14)



어느 해인지 어느 계절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비가 오지 않고 춥지도 않던 어느 평일 저녁이었다. 버스 앞머리에 달린 전자시계의 숫자들이 흩어질 듯 불투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시각은 8시 무렵. 나는 그곳에서 느닷없이 눈물 버튼을 발견하고 만다. 버스 안에서 들은 어떤 노래 때문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마포 08번에 타고 있었다. 아마 퇴근 후 신촌 내 방에 들렀다가 다시 나오던 길이었을 거다. 그랜드마트에서부터 산울림소극장, 홍대 정문, 로데오거리를 지나던 길이었다. 즐겁지 않은 시기가 꽤 오래가던 때였다. 서툰 나 자신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늘 부족한 상태로 어딘가에 적응하느라 구석구석 지쳐 있었다. 꾹 다문 표정으로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는 버스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목적지도 없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홍대 정문 앞을 지나면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흘러가던 창밖이 멈췄고, 시야에 드는 것들이 따분해진 나는 멍한 귀를 열어뒀다. 마침 처음 듣는 노래가 버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서울살이는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



제목도 가수도 모를 노래에 눈물 버튼이 눌렸다. 담담한 목소리와 가사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눈시울이 화끈, 뜨거워졌다. 다시 창밖이 흘러가기 시작했고, 시선을 밖에 두면서도 귀는 거두지 않았다. 듣던 노래를 계속 듣자니 어느새 울기 시작했다. 콧물이 된 눈물을 멈추느라 찡해진 코끝에 한참을 집중해야만 했다.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눈물은 계속됐다. 그래도 귀는 닫지 않았다.


휴대폰 음악 검색 앱으로 찾은 그 노래는 오지은 씨의 <서울살이는>이었다. 묵묵히 견디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말하지 않은 가장 취약한 부분을 그 노래는 알고 있었다. 맘껏 울어버리라고 타게 된 버스였는지도 모른다. ‘너 지금 힘들지’하며 툭,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 화법에 뭔지 모를 서러움이 눈물과 함께 와르르 터지고 말았다.


그때까지 이런저런 노래를 들으면서도 오지은 씨의 노래는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당시 나는 누가 만든지도 모를 ‘홍대 여신’, ‘홍대 마녀’, ‘인디계의 국민 여동생’ 같은 프레임을 싫어했고,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이 씌운 프레임 속에 갇힌 여성 인디 뮤지션들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그 프레임의 진위를 판별하는 건 피곤했다. 누가 해주면 좋겠지만 내가 하기는 귀찮았다. 그저 그 프레임이 투사하는 이미지를 곧이곧대로 믿는 게 편했다. 게을렀다. 그 프레임을 싫어하지만 그냥 받아들임으로써 여성 음악가를 ‘홍대 여신’ 프레임으로 가두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그제야 우연한 계기로 노래를 듣곤 '오지은 씨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구나' 하며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프레임에 속았다는 기분이 억울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내게 <서울살이는>은 지역에서 올라와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을 해나가는 고달픔을 위로하는 노래이자, 편견을 깨고 좋은 뮤지션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곡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씩 꺼내 듣곤 했다. 그때처럼 울진 않지만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내 마음이 생각나곤 한다. 대체 어디가 눌려서 이토록 눈물이 나는 거냐며, 머릿속으로 눈물 버튼의 위치를 더듬어보던 내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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