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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 Apr 06. 2019

5. 방음 없는 고시원 사생활

얼굴 모르는 옆방 사람도 서울 유학생이었음을


원룸텔에서 말을 섞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월세도 계좌번호로 보냈으니 난방이 되지 않는 이상 원룸텔 총무와도 말 섞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 옆 방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았다. 미술학원에 다니던 그녀는 실기 시험을 앞둔 고3 입시 준비생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지만 그녀의 신상은 벽을 타고 고스란히 넘어왔다. 벽은 너무 얇았고, 기척은 무척 가까웠다.


방 구조는 Ctrl+C, Ctrl+V 한 것처럼 똑같았다. 방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방향에 작은 창문, 그 아래 붙박이 책상과 의자, 오른쪽에는 침대가 있었다. 침대는 붙박이 책상 아래로 끄트머리가 들어갔다. 방의 세로 폭이 겨우 싱글 침대 길이만 했던 땅딸막한 방이었다. 방문을 기준으로 그녀의 방은 왼쪽, 내 방은 오른쪽이었다. 학원에서 실기 준비를 하고 돌아온 그녀가 침대에 앉아 통화를 시작하면, 자기 전까지 책상 앞에 앉아 소일하던 나는 그녀의 통화 내용을 생생히 듣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놓인 벽만 치우면 바로 옆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방에 있는 동안에는 대화를 듣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


하루는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하는 날이 있었는데 은사님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실기 준비는 어떤지, 시험 날짜는 언제 언제인지, 학원에서 만난 애들은 어떤지, 처음 본 실기 시험은 어땠는지 등을 얘기했다. 웃긴 건 책상에서 밥을 먹던 내가 은연중에 그 대화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자신의 사적인 대화가 옆 방에 들린다는 걸 그녀가 알았다면 분명 소름 끼쳐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통화할 때 주의해달라거나 목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일상 대화도 방음하지 못하는 부실한 원룸텔 벽의 잘못이었으니까. 


그녀가 긴 통화를 끝낼 무렵에 나는 그녀의 힘든 입시가 잘 마무리되기를, 원하는 대학에 꼭 합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편 내가 방에서 통화할 일이 있을 땐 그 방을 면한 쪽은 피해 앉았다. 그러면서 내 방 침대가 놓인 벽 쪽으로는 다른 방이 붙어 있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과 방 사이에 낀 호수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양쪽으로 들려오는 기척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그게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2020년 3월에 나온 1인 가구 에세이집 《삶이 고이는 방, 호수》에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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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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