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혈압으로 주저앉은 나를 살린 중년 여성의 자매애
매일 땅굴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동안 하루 서너 시간을 지하철에 버린다. 타임푸어가 되어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일찍 잠들기는 쉽지 않았다. 퉁퉁 부은 눈으로 지하철역까지 뛰어가서 들르는 곳은 바로 편의점이다. 우유와 생수, 이 두 가지를 꼭 사서 지하철을 탄다. 일종의 생존 키트랄까. 지하철이 어디쯤 왔는지를 눈으로 쫓으면서 카드 승인을 기다리는 습관은 어느새 고칠 수 없는 버릇이 됐다.
6호선, 2호선, 9호선 급행을 타던 나는 환승할 때마다 산소가 희박해짐을 느꼈다. 급행은 항상 타기 전에 큰 숨 한 번 쉬고 오르는데, 여름에는 물이라도 챙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사람이 미어터지도록 들어찬 객실은 마치 뜸이 든지 한참 됐는데도 계속 취사 중인 밥솥 같다. 언제 터져버릴지 몰라 무섭다.
며칠째 수면 패턴이 망가진 어느 날에는 마실 물도 못 사고 잠에 취해 지하철에 올랐었다. 그런데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하품이 나는 거다. 졸려서 나는 하품이 아니었다. 식은땀을 꽤 많이 흘렸을 때는 이미 앞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아, 내려야 하는데 잠시만요.' 말하는 순간 하차 문은 눈앞에서 닫혔고 사람들을 헤칠 힘도 없이 너풀거리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아요?' '자리 좀 만들어주세요' 같은 소리가 꿈처럼 들리는 걸 듣고만 있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앉히고 다음 정류장에 내릴 수 있게 부축해준 사람은 어떤 중년 여성분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고작 열 살 정도 많은 언니였을지도 모른다. 역무원을 부르고, 내게 움직일 수 있겠냐고 말을 붙이는 동안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내게 지하철에서 만나는 타인이란 항상 무신경하게 밀치거나, 내 휴대폰을 들여다볼 게 신경 쓰여서 화면 밝기를 어둡게 하도록 만들거나, 이상한 냄새를 풍기거나, 내 삶에 전혀 개입되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나를 도와준 그 여성분과 말을 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무채색이던 그림체에 핏기가 드는 것 같았다. 이상하고 낯선 파괴감이었다. 칭칭 감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날에도 제발 아무도 모르기만을 바랐던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다니. 직후 옮긴 병원에서 링거 바늘을 꽂고는 친구와 통화하며 엉엉 울었다. 나도 같은 순간이 오면 그렇게 도울 거라고. '오구 그랬어' 하고 말하는 내 친구도 꼭 엄마 같았던 날이 있었다.
잠을 잘 자고 아침을 꼭 챙겨 먹으라지만 그 대신 나는 물과 우유를 챙긴다. 쓰러지더라도 부딪히지 않게 잘 쓰러져야 한다던 응급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그래 잘 쓰러지자. 그리고 웬만하면 쓰러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흔치 않은 일 같지만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으로 실려나가는 여성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꼭 나에게 하는 것처럼 속엣말을 한다. 부디 우리가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스트레스가 적기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이 비정한 지하철 생태계에서 부디 벗어날 수 있기를 하고 말이다. 2019년 릿터 16호 독자 수기 공모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글
*2019년 초 릿터 16호 독자 수기 공모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글입니다. 다시 읽어도 유효해서 공유합니다.
2019년 릿터 16호 독자 수기 공모에 응모했다가
ㅇㅇ 떨어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