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 그분의 생각
오늘 회의를 해야 하는데, 회의실을 잡아야겠군.
점심에 밥 먹을 식당은 예약했나?
정수기 물통이 비었잖아.
복사기에 종이가 걸렸네.
막내야!!!
이 자식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꼭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말을 해야 하나?
피곤하다. 피곤해
# 그 녀석의 생각
내가 이 사람들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토익 보고 면접 봤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어느 조직이나 위계질서와 역할 분담이 있다.
그리고 직급과 역할(+ 책임)의 중요도는 비례한다.
회의실이나 식당 예약, 정수기 물통과 복사기 관리 따위의 일을 소홀히 하는 직원을
흔히 '개념 없는 직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라고 믿고 싶다.) 막내에게 그러한 일들을 지시한다.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아랫 직원들은 그런 관리자를 '꼰대'라고 부른다.
개념 없는 직원과 꼰대 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조직의 분위기는 망가지고 효율성은 떨어진다.
왜? 어느 순간 서로가 소통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짬밥 배부르게 먹은 부장이 회의실 예약이나 하고 있어야 할까?
물론 그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정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잡다구리한 일= 막내의 일'이라는 명제를 깨는 것에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이다.
사실 저런 류의 일에 대한 불만은
한 두 번의 사건을 통해 표출되지 않는다.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의 반복적인 일이 누적되면서,
도대체 이 팀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수차례 자문한 끝에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대부분의 반응은
'어쩌라고?'
'ㅇㅇ씨,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그럼 내가 할까?'라는 식이다.
하지만 만약 조직 내에서 누군가가 '함께'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우리 팀 막내는 서운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리라...
아침에 출근했는데,
과장님께서, 팀장님께서 물통을 갈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당신의 막내 직원은 놀라고 미안한 마음에
정수기 물통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에는
'이등병에게 뭔가를 시킬 때, 누군가와 함께 하라고 지시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혼자 뭔가를 하다가 사고를 칠까 봐 그런가?'라고 추측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막내로 지내다 보니,
그게 조금씩 이해가 된다.
뭔가를 - 특히나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을 혼자서 반복해서 하다 보면,
내가 하찮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럴 때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그리고 그가 함께 한다고 느끼면,
힘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막내 직원이
어디선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하찮은 일'일수록 너무 막내에게만 몰빵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