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마흔한 번째 이야기
1492년 10월 12일, 에스파냐를 떠난 지 3개월 만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탐험가 콜럼버스는 길고 고된 항해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넣게도 했지만, 이사벨 여왕이 죽고 난 후에는 재산과 귀족 지위를 모두 빼앗기고 쓸쓸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에스파냐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콜럼버스는 눈을 감으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노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바티칸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과 함께 유럽의 3대 성당으로 알려진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콜럼버스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콜럼버스, 과연 그는 어떻게 이곳 세비야 대성당에 잠들게 되었을까?
유럽의 3대 성당답게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원래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던 곳이다. 13세기, 무어인들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되찾은 기독교인들이 모스크를 허물고 그 자리에 대형 성당을 짓기로 한다. 무려 10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지금의 세비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성당 한쪽에 우뚝 솟은 히랄다 탑은 과거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리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도 일요일마다 예배가 열리는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입장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평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일요일에는 오후 2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굳이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눈이 조금 일찍 떠졌다면, 스페인 광장이든 투우장이든 다른 곳을 먼저 구경하고 대성당을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입장료는 1인 9유로다.(오디오 가이드 대여료 3유로)
<참고> 세비야 대성당 관람시간
- 월 : 오전 11시 ~ 오후 3시 30분
- 화~토 : 오전 11시 ~ 오후 5시
- 일 : 오후 2시 30분 ~ 오후 6시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규모도 규모지만 온통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함에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시장통이 따로 없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깃발을 높이 흔들며 뭔가를 계속해서 설명하는 가이드,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날카로운 중국어가 귓가에 사정없이 때려 박힌다. 호불호를 떠나, 중국이란 나라는 정말이지 대단한 것 같다.
예전에 바티칸 대성당에서도 그랬는데, 세비야 대성당에도 성직자의 시신을 모셔놓은 곳이 많았다. 평온하게 누워있는 석상의 베개 수가 생전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설명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저 때는 사람들이 많아서 몰랐는데, 밤에 이곳에 혼자 있으면 꽤나 무서울 것 같다. 혹시라도 귀신이 나오면 어쩌지? 십자가를 들이대고 도망가기는커녕 성호를 그으며 다가올 텐데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박물관 같은 곳에서는 전문 가이드의 해설이 있고 없고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감동의 깊이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이곳, 세비야 대성당도 마찬가지다. 유럽에 널리고 널린 것이 성당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여느 성당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어도 내부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성당 한편에는 진귀한 보물과 그림 등 예술품을 모아서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성당 속 작은 박물관이랄까? 가만 돌이켜 보면, 그곳에 있는 물건들도 하나같이 아름답고 예술적 가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보는 둥 마는 둥 그냥 의무감에 건성으로 한 바퀴 돌았던 것 같다. 아마도 성당 자체가 크고 의미 있는 예술품이었기 때문에 다른 자잘한 것들이 눈에 안 들어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드넓은 세비야 성당의 수많은 구경거리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바로, 콜럼버스의 관이다. 그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딱 보면, '아! 이게 그거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온다. 게다가 이 앞에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사실 저 사진을 찍던 순간에도 앵글 아래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앞서 소개한 대로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후손들이 그의 유언을 따라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신대륙 땅, 쿠바에 그의 시신을 묻었다. 그러다가 쿠바가 스페인으로 독립한 뒤, 유골을 이곳,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왔는데,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다짐을 존중, 4명의 스페인 왕이 허공에 관을 들고 있는 방식으로 유골을 안치했다.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있는 4명의 왕은 과거 콜럼버스가 살아있을 때, 스페인 지역을 통치했던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왕국의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 쪽에서 관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국의 왕으로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뒤의 두 명은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라도 한다.
한때, 이 곳의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이 맞느냐를 두고 역사학자들 사이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결국 콜럼버스 가문의 후손과의 DNA 대조 작업까지 펼친 끝에 2006년 스페인 정부는 세비야 대성당의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이 맞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다만, 유골이 여러 번 옮겨졌다는 정황이 있는 만큼, 쿠바나 도미니카 공화국 등 중미 지역에도 콜럼버스의 유골 일부가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멍하니 서서 한동안 콜럼버스의 관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였을까? 갑자기 머리가 무거워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배까지 살살 고파오는 것을 보니, 죽을병에 걸린 것 같지는 않고 잠깐 나가서 맑은 공기를 좀 마셔야겠다. 그럼 이번 포스팅은 이쯤에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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