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환자와 역류성 식도염 환자의 눈물겨운 식단 관리
우리 집 둘째 고양이 몽이는 당뇨 환자다. 매일 아침저녁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인슐린은 병원에서 작은 공병에 2ml씩 소분해서 두 병을 받아와 두 달을 사용한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몽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프락토사민 수치를 점검한다. 여기는 깡시골이고 근처 동물병원은 주로 소나 돼지 같은 대동물을 다룬다. 이곳으로 오면서 군산의 동물병원 후기를 뒤져보고 길냥이를 데려가도 친절하며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병원을 선택했다. 월요일에 몽이의 인슐린 약을 새로 소분받아 오느라 군산에 갔고 그 김에 근처 롯데마트에 들러 오뚜기 쨔슐랭 한 팩을 구매했다.
5월의 라면은 쨔슐랭으로 정했다. 며칠 전 라면에 진심인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쨔슐랭 관련 게시글을 올리며 가라사대, ‘이건 짜파게티 이길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분 말이라면 믿어볼 만 하지 아암. 지난달에는 진라면 매운맛을 먹었다. 지지난달에는 스낵면. 그렇다. 우리는 라면을 한 달에 딱 한번 먹는다. 당뇨 환자는 둘째 몽이만이 아니다. 바깥양반도 당뇨 환자시다.
당뇨를 진단받고 처음부터 라면을 줄인 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라면을 좋아한다. 특히 오전 내내 밭일하고 들어와 밥 차릴 기운도 없을 때 라면이면 만고 땡이다. 한 달에 못해도 여섯 번은 먹었던 것 같다. 아닌가? 여덟 번인가? 그 정도로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랬는데 작년 3월 즈음 남편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확 치솟았다. 1,2월에 내가 군청 사무실로 출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편이 라면을 주야장천 먹어댔기 때문이었다. 반찬을 만들어놓아도 그거 차리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고. 라면 끓이는 게 더 귀찮지 않나? 당최 이해가 안 되지만.
나 또한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지병과 살고 있다. 두 해 전에 얻은 병이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고 살 좀 쪄보겠다고 식사량을 1.5배 늘렸던 때였다. 알고 보니 엄마도 달고 사시는 병이었다. 아, 결국은 유전자 때문이었구나, 언제 걸려도 걸렸겠다 체념하고 지낸다. 역류성 식도염은 완치가 없다. 어, 요즘 위 컨디션이 좀 괜찮은 거 같은데? 싶어서 커피를 마신다? 마시는 순간 위가 찌르르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 몇 시간 후로 계속 트림이 나오고 속이 더부룩해진다. 그래도 위의 고통보다 혀의 쾌락을 위해 가끔씩은 먹는다.
그렇게 작년 3월부터 ‘라면은 한 달에 한번’ 룰을 시행하고 있다. 아예 안 먹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두 번은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될 것 같아서 안되고. 첫째 달에는 실패했다. 스낵면 한 팩을 사뒀기 때문이다. 집에 먹지 않은 라면이 남아 있다면 응당 끓여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 뒤로 라면은 무조건 편의점에서 낱개로 구매한다. 대형 마트에는 낱개 라면이 없고, 하나로 마트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라면만 있다.
라면과 더불어 밀가루 음식도 절제에 들어갔다. 이곳에 온 뒤 시간이 팡팡 남아돌던 나는 베이킹에 한참 빠져 있었다. 아침에는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을 위해 이틀에 한번 브뢰첸도 구웠다. 막 구운 빵에서는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버터만 얹어 먹어도 천상의 맛이었는데. 남편의 당화혈색소 고공행진 이후로 브뢰첸을 위해 구입했던 반죽기는 창고에 처박아 버렸다. 각종 베이킹 도구들도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라면과 밀가루 음식 절제만으로도 다행히 수치는 안정권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쨔슐랭은 성공적이었다. 짜파게티는 조리 시 물을 얼마나 남겨야 하는지가 늘 고민이었는데 쨔슐랭은 400ml 물에 면을 넣고 졸아들 때까지 끓이면 된다(사실 짜파게티로도 이런 조리법이 가능하다.). 맛은 짜파게티와 흡사한 대신 면의 탄성은 쨔슐랭쪽이 더 좋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맛은 개취. 최고로 맛있게 익은 파김치와 먹었다. 파김치와 짜장라면의 궁합은 말하면 입 아프지 뭐. 혀에게 쾌락을 허락했으니 이제 위가 아플 시간. 트림을 꺼억 꺼억 해대며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