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후딱 먹고 시작해야 뙤약볕을 면한다
벌써 4월 말이다. 작년에는 4월 중순경에 이미 밭에 비닐 멀칭까지 끝냈었는데 올해는 좀 늦어졌다. 반장님이 지난주에야 트랙터로 밭에 이랑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화요일에 비 소식이 있어 비를 맞힌 뒤 수요일에 드디어 비닐 멀칭 작업을 했다.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일곱 시에 바로 밭으로 나갔다. 빨리 움직여야 뙤약볕을 면한다. 새벽부터 나가서 일하기 시작할 때가 진정한 농번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추 농사를 짓는다. 판매용은 아니고 양가 가족들과 나누어 먹을 정도이다. 작년에 야심 차게 300포기를 심었다가 8월 한복판 여름 뙤약볕에 고추 따느라 너무 고생을 했던 터라 올해는 100포기를 줄였다. 아침만 후딱 먹고 새벽같이 밭에 나가 고추를 땄지만 빨간 고추 개수가 많아질수록 낮 12시 전에 끝내기가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후덥지근한 더위와 작열하는 뙤약볕에 힘들어 죽겠는데 밥때까지 놓치면 진짜 최악이다. 그런 고로 올해는 숫자를 줄였다.
작년에 한번 해봤다고 올해는 비닐 멀칭이 수월했다. 너무 꼼꼼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비닐을 한쪽 끝에 고정하고 돌돌 풀어 반대편에 놓아둔 위 고랑에 가득한 흙을 퍼서 비닐 위에 대충 덮었다. 비가 온 뒤라 흙이 촉촉했다. 노지에 짓는 농사라 흙에 비를 맞히는 게 중요했다. 언제 또 비가 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뒤 고추를 심기 전까지 흙의 온도를 최대한 올려둬야 한다. 고추는 저온에 약하기 때문에 흙 온도도 중요하다. 그래서 늦어도 사월 중순경에 비닐 멀칭을 해두면 고추 심는 사월 말에서 오월 초까지 지온을 높일 수 있어서 좋다. 올해 우리 집은 뭐든 늦었다.
한참 비닐을 씌우는 데 반장님 어머님이 부녀회장님과 밭으로 나오셔서 우리 하는 일을 구경하셨다. 그 와중에 또 모종 사장님네가 고추 모종을 가져오셨다. 주문도 반장님 어머님을 통해 했던 터라 직접 뵌 건 처음이었다. 집 앞마당에 네 분이나 모였다. 쉬이 가실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때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차 한 잔 드실래요? 이것이 시골의 국룰이다.
오래간만에 사람이 모여 바글바글하니 좋다. 겨우내 쥐 죽은 듯 고요했던 온 마을에 털털털털 경운기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 말소리도 들린다. 다음 주에는 또 새벽부터 나가서 고추도 심어야 한다.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이제야 진짜로 한 해가 시작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