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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린결말 Jul 18. 2022

토마토 바질 청이나 담는 월요일

굵은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한갓지고 좋구나 


굵은 비가 내리는 월요일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에 여유가 넘친다. 밭에 나가서 풀이라도 뽑아야 한다는 일말의 의무감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계 조사 아르바이트도 어제 다 마무리했기 때문에, 마음에 책임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아 가벼웁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글을 적어본다. 야, 비 오는 월요일에 네가 뭘 했는지를 굳이 시간을 들여서 내가 읽을 필요가 있냐? 싶은 그런 거. 일기 같은 거.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거. 그냥, 아무 힘도 없는 거.


일주일에 세 편은 쓰겠다던 다짐이 두 편에서 한 편으로 줄더니 다짐 따위 사라진 지 오래다. 다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브런치의 발행 버튼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브런치는, 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자주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말이지.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꾸준함 자체가 재능입니다. 그 재능 나도 갖고 싶다고요.


꾸준하지 못한 여러 이유가 있는데, 오늘은 가볍기로 했으니까 그런 생각일랑은 접어 버려야지. 대신 제목에 적은 것처럼 토마토 청 만든 이야기나 해야지.


썬드라이 토마토와 토마토 바질 청을 만들겠다고 남겨둔 방울토마토가 말라비틀어지는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손도 대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뚝딱 만들었다는 이야기.


바질 페스토 만들겠다고 키운 바질이 다 커서 이제 꽃대까지 올라왔는데,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방치되어 있다. 아침에 잠시 텃밭에 나가보니 애써 키운 -이라고 말하지만 지 혼자 알아서 큰 - 바질이 강한 빗줄기에 죄다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뭐, 이제 놀랍지도 않고.


아아, 그렇다면 페스토고 뭐고 일단 토마토 바질 청부터 만들어보자 하여 시작된 부엌일. 일단 씻은 토마토 물기를 닦고 반으로 잘라 종이 포일을 깐 오븐 팬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소금과 마른 허브를 솔솔 뿌리고 올리브유를 살살 발라 섭씨 100도의 오븐에 넣어 두 시간 즈음 돌렸다. 이건 썬드라이 토마토.



감칠맛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씻은 토마토에 칼로 십자 선을 내고 끓는 물에 넣어 15-20초쯤 데치고 건져서 찬물에 넣은 뒤 껍질을 하나하나 까준다. 거기에 설탕을 토마토 무게의 2/3 정도 넣고 레몬을 씻어 레몬즙을 내어 넣어주었다. 레시피에는 반 개를 짰다는데, 반절 잘라 쓰고 남은 레몬은 결국은 버리게 되길래 하나 다 짜서 넣어 주었다. 


레몬 제스트도 넣고 싶었으나 그 어떤 레시피에도 제스트는 들어 있지 않아서 참았다. 보통 레몬 껍질에서 레몬 맛과 향이 많이 나기 때문에 베이킹에서는 제스트가 많이 쓰이는데, 토마토 바질 청은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레몬 제스트가 어울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설탕과 레몬즙을 넣은 토마토를 살살 섞어 주면 설탕이 녹으면서 액체가 된다. 텃밭에 쓰러져 있던 바질을 두 줄기 끊어 와 깨끗이 씻고 물을 털어내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토마토 설탕물에 넣어주고 다시 잘 섞어 주면 끝. 


투명한 유리볼에 만들면 더 예쁠 텐데, 집에 스뎅 밖에 없는 사람... 
500ml짜리 병 두 개만큼 나왔다. 얼른 에이드로 만들어 먹어보고 싶구나.



열탕 소독한 병에 담아서 하루 정도 상온에 뒀다가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다고 한다. 사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일지 모르겠는데, 며칠 전 텃밭에서 내가 기른  맛없는 토마토를 먹어 없애느라 설탕에 재웠다가 먹었더니 너무 맛있는 거라. 그렇지. 역시 설탕이야 싶은 게.


설탕에 절였는데 맛없기가 더 힘들 것이다. 레몬즙은 살짝 상콤한 맛을 낼 테고, 바질은 토마토 단짝이니까.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고작 아침나절에 밭일을 좀 하거나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건데, 왜 이렇게 여유가 없다고 징징대는지. 회사 다닐 때는 어찌 살았나 싶다. 


에이, 그냥 게을러서 그런 거지 뭐. 쓰러진 바질, 대체 어떻게 할 거야.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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